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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의 세계] 새를 찾는 사람들

'그(새)들에겐 작은 숨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섬세함, 그리고 망망대해 건너 수천 마일을 날아오는 강인함이 함께 배어 있습니다.'

새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새가 좋아서, 새를 보고 싶어서, 새와 함께 있고 싶어서, 이곳 저곳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새를 갖거나 품고자 하지 않는다. 그냥 멀리서 바라만 보기만 한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행여 긴 여행을 마친 새들의 휴식을 방해할까 두려워 숨을 죽인 채 까치발로 주위를 맴돌기만 한다. 새가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행복하다.

지난 12월19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화진포. 바다 갈매기들이 노니는 호수 위를 바라보던 4명의 젊은이들이 한순간 갑자기 움직임이 바빠졌다.

한 여학생은 성급히 새 도감(圖鑑)을 펼쳐들었고, 나머지 3명은 호수 한곳에 망원경과 필드스코프(고정식 망원경)를 고정시킨 채 한 무리의 새떼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호수면의 한 귀퉁이에 17마리의 새가 한가로이 앉아 고개를 숙인 자세로 모여있었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다고 짐작한 이들은 더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 관찰이 용이한 호수가로 접근했다. 여대생 3명과 남학생 한명으로 구성된 탐조팀은 키를 넘는 갈대 숲과 인근 논밭을 헤치며 정신없이 새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이들 여학생은 옷이 흙더미와 나뭇가지로 뒤범벅이되고, 신발은 진흙이 잔뜩 달라 붙어 마치 촌부처럼 보이는 것도 아랑곳 않고 호수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새는 생명과 자유의 상징

새떼 200m 전방 갈대 숲에 도착한 일행은 숨죽인 채 필드스코프를 설치하며 관찰을 시작했다. 잠시 팀원 중 한명이 나지막이, 그렇지만 매우 흥분된 어조로 소리를 쳤다. "혹고니다, 혹고니!" 흰색 깃털에 부리 기부(눈 앞부분) 부분에 검은 색 혹이 나 있는 분명한 혹고니였다.

오리과 고니류에 속하는 천연기념물 201호인 겨울 철새로 국내에서 동해안에만 볼 수 있는 희귀조다. 시베리아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한해 우리나라에 40~50마리 정도만 내려오는 철새로 고니류 중에서는 가장 보기 드문 종이다.

그 동안 말로만 듣던 혹고니를 처음 눈앞에서 접한 탐조팀은 흥분과 희열로 가득했다. 이를 지켜보던 취재진이 '새 몇 마리 본 것에 저토록 좋아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에게 '새로운 새를 본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탐조팀은 무려 2시간 넘게 혹고니를 지켜보다 날이 저물자 짧은 겨울 해를 못내 아쉬워 하면 철수했다.

새는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는 동물 중 하나다. 산이나 들, 강, 바다 등 주변 어디서나 조금만 관심을 두면 접할 수 있는 흔한 존재이지만 새를 좋아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더구나 새를 찾아 나설 정도의 애정과 열성을 가진 마니아는 그리 흔치 않다. 너무 흔하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마니아들에게 새는 '생명과 자연의 상징이자 자유에의 열망'과 같다. 연약한 체격이지만 창공을 비상해 대륙을 횡단하며 자연 그대로 야생의 삶을 영위해가는 상징적인 존재다.

그래서 마니아들은 대부분 여행가나 방랑객이 된다. 철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새를 보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 다닌다. 한겨울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도 4~5시간을 꼼짝 않고 서 있기가 일쑤다. 심지어는 무인도에 무단침입하는 탐조 여행도 흔히 있는 일이다.


2~3년 헤매도 200종이상 만나기 어려워

새에 빠진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은 종수(種數) 세기다.

자신이 관찰한 모든 새의 종류를 기록, 정리하는 작업이다. 국내에는 철새와 텃세를 합쳐 총 450여종의 새가 있다. 새 마니아 중 100여종 이상의 새를 직접 보고 확인한 사람도 흔치 않다.

'새는 언제든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일반인의 경우 평생 50종 이상을 본 사람도 별로 없다.

마니아들도 처음 1년간 아무리 열심히 새를 보려 다닌다 해도 100종을 넘기 힘들다. 그야말로 2~3년간 가업이나 학업을 포기한 채 미쳐 돌아다녀도 200종 이상 보기가 만만치 않다.

마니아들이 산으로, 바다로, 섬으로, 호수로, 정처없는 탐조유랑을 떠나는 것은 바로 한 마리의 희귀새를 보기 위한 그들만의 절절한 노력이다.

단지 새를 봤다고 해서 그것을 자신의 종수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본 장소와 날짜, 그리고 그 새 자체의 특성을 완벽히 파악해 어디서라도 곧바로 그 새를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국내에서는 300종 이상을 본 전문가가 손에 꼽을 정도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새 마니아'라는 칭호를 붙일 수 있는 사람은 채 600명이 안된다. 그중 대부분이 전국대학연합 야생조류연구회(이하 야조회)에 속해 있는 재학생들과 OB들이고 나머지는 한국조류협회 관계자들, 그리고 개인적으로 새 사진 찍기나 조류 생태 연구를 하는 전문가들 뿐이다.

이들의 새에 대한 집착은 가히 놀라울 정도다. 야조회 회장인 황성진(21ㆍ이화여대 생물과3)씨의 올 겨울 탐조 일정을 보면 그들의 방랑벽(?)을 짐작할 수 있다.

18일 겨울 방학과 동시에 3박4일간의 동해안 석호 탐조여행을 시작한 황씨는 21~23일 충남 서산, 23~26일 금강, 28일~내달 4일까지 제주, 1월10일~15일까지 낙동강, 그리고 2월3일~4일 한강 등 두 달간의 모든 일정이 빽빽이 잡혀있다.

더구나 이 행사 중간중간에도 황씨는 개인적으로 탐조 여행을 떠날 계획이어서 거의 대부분의 날을 새와 보내게 된다. 이것은 비단 황씨의 경우 뿐아니라 상당수 탐조 마니아들에 해당된다.


새와 함께 평생을 벗하는 사람

이들 중에는 아예 '새와 평생을 벗 하겠다'며 직업으로까지 나선 사람도 있다.

야조회의 대부 격인 박종길(30)씨는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 어릴 때부터 새에 대한 관심이 각별했던 박씨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야조회에 가입, 본격적인 탐조에 나섰다.

경영학부 출신인 박씨는 학문적인 새 연구를 위해 고려대 자연대 대학원에 입학해 석사학위를 딴 뒤 현재는 설악산 국립공원에서 생태자원조사 업무를 맡고 있다.

박씨는 현재까지 340종을 기록,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많은 종을 경험했다. 박씨는 올해 1월15일 조류계 원로인 박진영 환경부 생태연구원, 그리고 김혜림(21ㆍ이화여대3) 야조회 학술장과 함께 강원도 신남에서 국내 미기록종인 작은 바다오리를 발견, 촬영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 기록은 올해 새 도감에도 새롭게 추가됐다. 박씨는 올초에는 남쪽에서 바다를 올라오는 여름 철새들이 제일 처음 만나는 무인도인 전남 칠박도에서 일주일간 탐조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탐조 여행이나 조류 조사는 주로 산 강 바다 섬 같은 외딴 곳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최소 3~5명을 팀으로 해서 이뤄진다. 팀원은 각자 업무를 맡게 되는데 필드스코프나 망원경으로 새를 찾는 작업에서 사진 촬영, 조사 기록 담당, 도감 확인 등의 업무를 나눠서 한다.

탐조에는 필드스코프, 망원경, 줌기능 사진기, 조류 도감, 기록지 등의 장비를 갖추어야 한다. 탐조에 있어 원색 옷을 입거나 떠드는 행위는 절대금지다.

새는 색맹에 가깝지만 원색은 알아보기 때문에 가급적 화려한 옷은 입지 않는 게 관례다. 또한 새들은 후각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근거리에 새가 있을 경우 바람을 등진 채 접근하면 안되고 반드시 바람을 가슴에 안은 상태에서 접근해야 한다.

대부분의 조류는 직감적으로 200m가 넘는 곳에 위험 상대가 있어야 경계를 풀기 때문에 너무 근접하다가는 낭패하기 십상이다.


인간의 꿈과 이상을 대변해주는 새

마니아들이 새에 빠지는 이유는 대개 이렇다. 우선 새가 먹이 사슬 구도에서는 하부 구조에 속하는 약한 존재이지만 하늘을 날아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어 '인간의 꿈과 이상을 대변해 준다'고 생각한다.

우아한 자태와 독특한 목소리, 그리고 연약한 듯 하면서도 바다 건너 대륙을 횡단할 수 있을 정도의 강인함과 협동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마니아들은 수천 마일 건너와 잠시 기착한 철새를 어느 장소에서 만난다는 '특별한 인연'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여기에 다른 동물과는 비교가 안되는 9,500종에 달하는 엄청난 종수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탐조가 가진 특징이다.

그리고 그 어느 동물보다 새끼들에게 희생적인 모성을 가진 동물이라는 점도 마니아들에게 경외의 대상이다.

새 마니아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바로 우리나라의 조류 보호 정책이다. 우리나라는 지역적으로 다수의 새 종을 접할 수 있는 천혜의 요지다.

한반도에서 사는 까치나 참새 같은 텃새 외에도 시베리아에서 추위를 피해 내려오는 큰기러기 고니 황새 두루미 같은 겨울철새와 동남아에서 더위를 피해 올라오는 뻐꾹이 큰유리새 꾀꼬리 같은 여름철새, 그리고 한반도를 스쳐 지나가는 솔딱새 같은 나그네새 등 다수의 종을 모두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이렇다 할 새 연구기관 하나 없다. 유럽이나 일본 미국에서는 크게 번성한 조류학이라는 학문 자체도 없다.

기껏해야 대학 생물학과에서 부분적으로 연구되고 있을 뿐이다. 정부 내에서도 국내 조류 현황 파악이나 보호ㆍ관찰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 파트가 없다. 기껏해야 한국조류보호협회에서 철에 따라 먹이 뿌려주기나, 다친 새를 치료해 주는 것이 조류 행정의 전부다.

야조회의 경우도 민간 동호회이다 보니 그저 보고 즐기는 취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내 어느 지역에 어느 때쯤, 어떤 철새들이 있는지 정도의 기초적인 연구 조사 보고서 조차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새들 서식에 천혜의 장소인 갯벌 하구언 간척지 같은 습지가 제대로 보호될 리 만무하다.

또 날로 성행하는 밀렵도 막지 못하고 수수방관하는 바람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새들 중 상당수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국내 유일한 조류 서적인 새 도감도 한 민간기업의 후원으로 어렵게 나오고 있다.

새는 가장 환경에 민감한 동물이다. 새가 죽는 환경은 곧 인간의 죽음을 예고한다. 우리가 새를 새의 눈으로 바라 볼 정도의 마니아가 되지는 않더라도 환경의 바로미터인 새를 최소한 우리 곁에서 사라지게 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입력시간 2000/12/2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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