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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용산구 한강진 나루터

'강나루를 건너서/ 밀발길을//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삼백리//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의 시 '나그네'다.

강나루! 서울의 한강에는 나루터가 몇곳이나 있었을까. 불과 70~80여년 전만 해도 나룻배로 나그네와 짐 그리고 가죽을 싣고 한강을 건너던 광나루를 비롯해 삼밭나루(三田渡), 두미포(豆尾浦) 나루, 한강진(漢江鎭) 나루, 동재기나루(銅雀津), 노들나루(鷺梁津), 삼개(麻浦)나루, 양화진(梁花津), 염창(鹽倉)나루와 행주나루 등 10여곳이 있었다.

그러나 한강 위에 현대식 다리가 놓이기 시작하면서 그런 정경은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오래다. 그런데 한강에 유람선이 떠면서 새로 생겨난 나루터가 여의나루, 거북선 나루(이촌동), 둑섬나루와 잠실나루가 생겼다.

옛날 나루터는 한강을 건너기 위한 나루, 즉 한강의 흐름에 횡적(橫的)이었던데 반해 오늘날 유람선용 나루는 한강을 따라 오가는 종적(從的)인 나루일 뿐이다.

옛날에도 한강의 물흐름을 따라 소금과 세미를 운반하던 종적인 나루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소금과 건어물을 실은 배가 북한강은 화천 일제까지, 또 남한강은 영월 정선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구한말 영국의 여류 여행가 비숍여사도 사람 힘으로 노를 젓는 나룻배를 타고 단양 영춘을 지나 영월까지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심산유곡(深山幽谷)의 절경에 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나루터! 이 나루터에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고, 물산과 먹거리가 가득 쌓이니 언제나 시끌벅쩍해 늘 파시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루터가 있는 곳에는 의례히 술집이 있었고, 술집이 있으니 여인네의 노래소리가 끊이질 않았을 뿐더러, 요염을 떠는 아낙네의 자지러진 웃음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던 것이다.

먼길 떠나는 나그네의 단봇짐을 부여잡고 이별의 한숨과 눈물 또한 그칠 날이 없었던 한강의 나루터는 도대체 어디 쯤일까. 그 가운데 한강진(漢江鎭)나루는 오늘날 한남동 단국대학교 정문 어귀와 순천향병원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형이 마치 오메가 모양으로 되어 있어 배를 갖다 대기에는 천혜의 나루터였다.

게다가 목멱산(南山)자락 고개 너머에는 조선조 때 수도방위와 왕실호위를 맡아보던 어영청(御營廳)의 분영인 남소영(南小營)이 있었는지라 나루터 이름도 한강진(漢江鎭)나루였고, 고개 이름(오늘날 약수동과 한남동 사이에 있는 고개)도 '배를 타러가는 고개'라는 뜻의 '배터고개'라 불렀다.

이 '배터고개'가 '배티고개-버티고개'로 될 것이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는 6호선 지하철 역이름도 버티고개역이요, 한강진역이라 이름하였다.

한강진나루는 옛날 한남동(순천향병원 앞)에서 사평나루(沙坪津:강남구 신사동)를 잇는, 군사적으로나 물류면으로 매우 중요한 나루터였다.

특히 삼남지방(경기ㆍ충청, 호남, 영남)의 물산과 많은 보부상, 선비, 나그네 할 것 없이 강남의 역삼동과 양재역, 말죽거리에서 몸을 풀고 건너오고 갔던 영고성쇠(영고성쇠)로 얼룩진 나루터였다.

그러나 근대화의 물결에 철길이 나루터 앞을 가로막고 철마가 종적으로 내닫고, 또 한남대교가 놓이면서 다리 위로 자동차의 물결이 횡적으로 달리고 있다.

한강진나루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도 나루터 자리엔 많은 사람과 물류가 흐르고 있으니 역시 나루터는 나루터인가 보다. 세월은 가고 나루터는 말이 없다.

이홍환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입력시간 2000/12/26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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