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 (40)] 이케바나(生け花)

꽃에 대한 사랑은 동서고금이 다를 바 없다. 그러니 꽃을 어딘가에 꽂아두고 즐기는, 넓은 의미의 꽃꽂이는 인류보편의 전통이자 생활습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꽃꽂이는 '이케바나'(生け花)라는 독특한 이름처럼 단순히 꽃을 꽂는 행위인 삽화(揷花)와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꽃을 살린다는 이름은 분명 일본식 멋부리기의 결과이지만 꽃과 풀, 나무 등의 자연물을 전혀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살려 내면서 고도의 작위(作爲)를 교묘하게 감추는 일본식 꽃꽂이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이름이기도 하다.

유파에 따라 다르다고는 하지만 크게 보아 이케바나는 있는 그대로를 중시하는 한국이나 중국의 전통 꽃꽂이와 달리 자연스러움을 만들어내고 이를 위한 기술과 형식, 절차를 강조한다.

군더더기를 모두 떼어버린 채 한두가지 소재의 선연한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소게츠류(松月流)는 물론이고 작은 정원이나 풀숲 한켠을 떼어 옮겨놓은 듯한 오하라류(大原流)까지도 이런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특성은 이케바나가 꽃을 보고 즐기는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서가 아니라 일찌감치 독립된 기능ㆍ예술로서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일본인과 꽃의 의미있는 만남은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인 꽃의 생명력에서 신의 존재를 느꼈던 데서 시작했다.

모든 자연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의 강한 전통을 거슬러올라가면 꽃을 '요리시로'(依代), 즉 신의 매개물로 여기는 일본인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식물의 요리시로 기능은 지금도 새해가 되면 소나무나 대나무를 문앞에 내거는 풍습에서 확인된다.

한편으로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쳐 불교가 전래되면서 부처님께 꽃을 공양하는 의식이 함께 들어 왔다. 꽃에서 직접 신을 존재를 느끼는 전통의식과 신에게 바치는 성스러운 공양ㆍ장식으로 보는 외래의식은 자연스럽게 결합했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했지만 이케바나의 바닥에는 언제나 이런 강한 종교의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종교적인 공양ㆍ장식과 달리 병에 꽂힌 꽃을 보며 아름다움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실내가 아니라 마루 난간이나 마당의 한켠 등이었다. 헤이안(平安ㆍ794~1192년) 시대에만 해도 실내에서 꽃을 즐기는 일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됐다.

가마쿠라(鎌倉?192~1333년) 시대 들어 방안에서 꽃을 즐겼다는 기록이 크게 늘어나고 여러가지 꽃을 함께 꽂아두고 즐겼다는 내용이 나타난다. 이케바나의 원형이 이때 싹텄다고 볼 수 있다.

본격적인 이케바나는 무로마치(室町?333~1573년) 시대 들어서였다. 전문가가 궁중이나 쇼군(將軍)의 집에서 이케바나를 만들었으며 꽃을 세운다는 뜻의 '다테하나'(立花)라고 불렸다. 전문가들은 다테하나의 형식 절차를 만들었고 다니가와류(谷川流) 등의 유파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비교적 자유로웠던 다테하나는 에도(江戶ㆍ1603~1867년)시대 들어 한자를 소리로 읽은 '릿카'(立花)라는 명칭이 정착하면서 형식성도 함께 강해졌다. 작품 전체에서 중심 가지를 비롯한 7개의 가지로 이뤄져야 한다는 규정은 칠지도(七枝刀)와의 연관성도 느껴진다.

한편으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꽃을 던지듯 적당히 꽂는 '나게이레하나'(抛入花)의 흐름도 꾸준히 이어졌다. 지배층의 전유물이던 이케바나가 부유층에서 시작해 일반인 사이로 번져간 것도 이때였다. 당시의 이케바나 열기가 얼마나 심했던가는 나무와 꽃을 마구 꺾는 자연파괴 풍조를 한탄하는 기록에서 엿볼 수 있다.

릿카와 나게이레하나의 흐름을 결합한 현재의 이케바나는 대체로 18세기 후반에 틀이 잡힌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케바나라는 멋스런 이름과 함께 각종의 유파가 전국에서 일어나 강습에 나섰다. 바쿠후(幕府)는 윤리교육을 위해 정책적으로 이케바나를 권장했다.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화려한 빛깔의 서양꽃들이 밀려들어오면서 이케바나는 화사함을 더해갔다. 지금도 서양꽃은 일절 쓰지 않는 고집스런 유파도 있지만 오늘날 이케바나의 중요한 특성의 하나를 이룬 화려함은 서양꽃들에 힘입은 바 크다.

전통의 그릇으로 외래를 녹인 일본의 이케바나를 대하면서 우리 전통의 소박한 모습과는 동떨어지고 이케바나 냄새를 풍기는 듯한 우리 꽃꽂이에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입력시간 2001/01/03 15:33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