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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문화-정치] 보스와 주종관계, "DJ도 예외 아니다"

영호남 대결구도가 '호남 대 비호남'의 대결구도로 확대됐다는 말이 나돈다. 한국 정치의 지역구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말 자체로만 보면 영남과 호남 양 지역의 소(小)지역대결 구도가 한국 전체를 무대로 한 대(大)지역대결 구도로 확대됐다는 의미다.

영남지역을 발판으로 했던 과거의 역대 정권이 유력한 대권경쟁자였던 김대중 대통령과 그의 지역기반을 견제한 것이 소지역구도의 밑그림이다. 그렇다면 DJ가 대권을 장악한 현시점에서 대지역구도 운운하는 것은 왜 그럴까.

DJ 정권이 비호남 지역 전체를 견제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어정쩡하긴 하지만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를 보더라도 이건 말이 안된다. 호남 단독으로는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원론을 두고 봐도 역시 말이 안된다. 해답을 DJ의 측근 실세, 즉 가신(家臣)그룹에서 찾는 의견이 많다.

지난 연말 민주당은 정동영 최고위원의 청와대 발언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렀다. DJ가 연말 국정쇄신을 위해 민주당 최고위원과 총재특보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정 위원은 권노갑 당시 최고위원을 지목해 직격탄을 날렸다.

정 위원의 말. "우리 당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대통령의 몇몇 측근 중심의 사선(私線)에 의해 움직여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또다른 최고위원은 "몇 사람이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인사를 독식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물론 이 자리에는 권 전 최고위원도 있었다.

정 위원의 말은 파장이 컸다. 정 위원의 배후가 문제되면서 권노갑, 한화갑 최고위원간의 대립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이른바 '양갑(甲)의 전쟁'으로 비화하는 인상을 주었다.

양갑의 불화설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DJ 임기가 분수령을 넘어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레임덕 징후가 나타나는 계제였다. 여기서 나온 것이 동교동계 회동. 지난해 12월10일 동교동계 인사 11명은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만나 끈끈한 동지애를 재확인했다.

동교동계의 핵심인 권노갑, 한화갑 최고위원과 김옥두 전 사무총장을 위시해 계보 2세대인 배기선, 설훈, 정동채, 윤철상, 배기운 의원이 참석했다. 이밖에 최재승, 문희상, 전갑길 의원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들은 동교동계 2선 퇴진론에 대해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그 결정에 따른다'는 백의종군의 입장을 정리했다. 양갑의 불화도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봉합됐다.

이들은 초심으로 돌아가 DJ를 보필한다는 결의를 다졌지만 2선 퇴진론을 제기한 정동영 최고위원에 대한 적개심은 감추지 않았다. '키워준 게 누군데, 이럴수가'라는 다분히 암흑가적 냄새를 풍기는 분노가 나왔다.


이익집단으로 변질

이 사건은 DJ와 가신관계에 대한 3가지 객관적 사실을 시사한다. 첫째, 양갑을 필두로 한 동교동계의 실세, 다시 말해 가신집단이 실재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들은 DJ의 정권창출에 직접적인 공헌을 했다고 자부하고 있으며 이 사실에서 영향력의 정당성을 끌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가신집단이 이익집단으로 변질됐고 이에 따라 당내 비가신집단과 충돌을 빚고 있다는 사실이다.

DJ의 가신집단이 호남 대 비호남 대립구도를 초래했다고 비판받는 것은 왜일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인사와 정치과정에 대한 독점적 영향력이다. 민주당 정권의 버팀목으로서 동교동계는 지금까지 각종 라인을 통해 DJ의 국정운영을 보좌해왔다.

동교동계는 때때로 DJ의 의중을 하부로 전달하는 통로였다. 권 전 최고위원은 스스로도 "하루에도 수차례 대통령과 전화하는 날이 많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화갑 최고위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DJ의 국정수행 매개체로 기능하면서 동교동계는 정치과정을 왜곡시켰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DJ가 듣는 이야기는 가신의 이야기고, DJ의 의도는 가신을 통해 재해석됐다. 이 과정에서 가신집단의 파워는 극대화했다.

이같은 파워는 인사독점으로 나타나면서 지역구도를 고착시켰다. 권 전 최고위원이 좌장으로 있던 '일오회'는 정권창출 공신과 4ㆍ13총선 낙천자에게 자리를 찾아주는 기관이 됐다. '호남이 다 해먹는다'는 비판은 이와 무관치 않다.


공조직 뒷전, 곳곳서 폐해 돌출

경희대 정치학과 임성호 교수는 가신정치는 논공행상에 따른 지역구도의 재생산과 공조직 무력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특히 대통령에게 한 쪽(가신)의 의견만 반영됨에 따라 국정운영에 다양성이 결여되고, 공조직이 청와대 눈치를 살피는 폐해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가신집단의 정치적 자질에 대해서도 회의적 입장을 보였다. 가신들이 반독재투쟁은 잘 했을지 모르지만 국정운영은 그와 전혀 다르다는 이야기다.

가신정치의 폐해는 궁극적으로 DJ가 책임져야 한다. 그러면 DJ가 가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는 뭘까.

임 교수는 DJ가 수십년간 야당 지도자로 투쟁하면서 가신에 신세진 것이 너무 많았다는 데서 원인을 찾았다. "인물난도 인물난이지만 배곯고 감옥에 대신 가며 보좌한 공을 결코 잊지 못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아울러 DJ 특유의 리더십과 성향도 가신정치를 강화한 측면이 있다. 세종대 정치학과 김정원 교수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하려는 DJ의 태도가 가신정치를 온존ㆍ강화했다"고 말했다.

'내가 똑똑하니 충성스런 실행도구만 있으면 된다'는 아집은 충복만을 필요로 했고, 결국 권력이임을 통한 공조직 활성화는 뒷전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가신에 대한 의존도는 역대정권 중 DJ가 가장 높다"고 평가했다. 그는 가신이 사법기관에 압력을 행사함에 따라 사법기관을 친위화하고 무력화하는 폐단까지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실 가신정치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다. 정치자금과 공천을 놓고 계파의 보스와 정치인이 일종의 주종관계를 형성해온 것이 원인 중 하나다. 또 군부 독재정권 아래서 야당의 정치지도자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측면도 있다.

그러나 군부정권이 사라져도 그것은 바뀌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가 개혁의 기치 아래 가신정치를 정당화했다면, DJ 정부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분쇄'라는 이름 아래 가신정치를 강화했다는 분석도 있다.


Dj 가신정치, 개혁세력 등 돌리는 역효과

DJ의 가신정치는 오히려 개혁세력의 등을 돌리는 역효과를 낳았다. 개혁적 이념보다는 개인적 충성에 뿌리를 둔 가신집단과 진보적 개혁세력은 궁합이 맞는 짝이 아니다. 비판적 지지를 통해 DJ 정권창출에 일조한 재야세력과 지역적 기반을 챙겨야 하는 가신집단이 걸맞기는 어렵다.

참여연대 시민감시국 양세진 국장은 "가신정치에 대한 유혹은 권력의 절대화에 대한 유혹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권재창출 욕구는 가신정치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세종대 김정원 교수는 가신에 대한 의존과 정권 재창출은 연관관계가 있다며 "김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을 단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가신정치 철폐는 대통령의 결단과 용단에 달려 있다"며 통치의 핵을 동지가 아닌 국가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입력시간 2001/01/0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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