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21세기 한국 정치 '훈훈한 미담'으로 시작

21세기 한국 정치판은 '추위를 녹이는 훈훈한 미담'으로 시작됐다. 대(代)가 끊길 처지에 놓인 '작은 집'을 위해 '큰 집'에서 '양자'를 보내주는 전통이 정치판에서 재현됐으니 이 얼마나 갸륵한 일인가.

민주당의 배기선, 송석찬, 송영진 의원이 구랍 30일 자민련 입당 선언한 일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머릿수 하나가 아쉬운 소수 여당이 하나도 아닌 셋씩이나 양자를 보냈으니 새해에는 뭔가 정치판이 달라지긴 달라질 모양이다.

정말 달라질까. 한나라당은 상생정치 포기에 DJ정권 타도, JP 정계퇴진을 외치고 있다. 쇼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민련 일부 의원은 '양자 수용거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관전하는 국민도 조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정치염증을 넘어 내놓은 자식 취급하듯 정치판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꼼수도 심한 꼼수다. 대국자와 관전자를 바보로 보지 않고는 이런 수가 나올 수 없다.

더구나 민주당과 자민련 지도부가 3인의 결행 사실을 사전에 몰랐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자민련에 의원 3명을 보태 교섭단체로 만든다고 집권당의 정치력이 커질까.

자민련이 명실공히 민주당의 2중대가 되면 여권 의석은 과반수에서 1석 모자라는 136석이 된다. 군소정당이나 무소속, 한나라당 비주류 중 일부를 끌어 들이면 정국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당의 생각인 모양이다.

하지만 4ㆍ13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여권은 또다시 명분을 잃었다. 민의가 선택한 양당체제를 숫자놀음을 통해 인위적 3당체제로 왜곡한 부담은 앞으로 집권당의 정치력을 계속 위축시킬 게 뻔하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1/03 16:58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