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그들만의 세계

'지금은 여성전용 시대.'

여성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넘쳐 나고 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전용이라면 사우나나 찜질방 등 여성이 즐겨찾는 몇몇 공간 뿐이었지만 지금은 어디에도 여성전용이 따라 붙는다.

여성전용 주차장, 지하철 여성전용칸, 여성전용 문화센터, 여성전용 포켓볼장, 여성전용 헬스클럽, 여성전용 금융상품은 이미 옛말이다.

요즘은 여성전용 신용카드, 여성전용 휴대전화, 여성전용 통신서비스, 여성전용 여행상품, 여성전용 원룸 등이 성업중이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도 여성만 쓸 수 있는 사이트 혹은 컨텐츠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여성전용 시대의 본격적 개막을 가져온 것은 신용카드. 1999년 9월 LG 캐피탈이 내놓은 LG 레이디 카드가 그 시작이다. 이 카드는 영화 관람료 할인, 놀이공원 무료 입장, 몇몇 프로야구 구단의 홈경기 입장료 할인 등의 혜택을 준다.

하지만 LG 레이디 카드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성형보험. 얼굴에 1츠 이상의 상해를 입을 경우 1,000만원 한도 내에서 치료비와 성형수술비를 보상해준다. 얼굴을 생명처럼 여기는 일부 여성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LG 레이디카드는 1년 만에 200만 회원 가입을 돌파, 대성공을 거두었고 교통카드 기능을 추가한 국민 이퀸즈 (e-Queens)카드, 백화점과 대형 할인매장의 2~3개월 무이자 할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삼성 지앤미(知&美) 카드, 미용실과 웨딩숍 이용시 할인 혜택을 주는 외환 아이닷미즈(I.miz) 카드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여성만을 위한 사업아이템 속속 등장

신용카드와 함께 여성전용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통신업체. SK 텔레콤은 지난해 3월 저녁시간 이전에 통화량이 많은 주부를 대상으로 자정부터 오후 4시까지 30% 할인혜택을 주는 '스피드 011 미즈'라는 특별요금제를 선보였다.

또 LG 텔레콤도 자정부터 오후 2시 사이에 통화할 경우 30분 무료통화와 3개 지정번호에 한해 45% 할인을 해주는 '아이 우먼' 요금제를 실시중이다. 한국통신 프리텔은 지난해 말 아예 여성전용 이동통신 브랜드를 개발했다.

"나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표어 아래 브랜드 이름을 드라마로 정했다. 사용실적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하는데 피부관리, 손톱관리, 다이어트 및 성형수술비 할인, 아기 봐주는 사람과 전문 파출부 파견, 미용과 요리 등 각종 문화강좌 참가 등 여성만을 위한 내용이다.

그런가 하면 여성전용 휴대전화도 등장했다. 삼성전자와 한국통신 프리텔이 공동으로 개발한 애니콜 드라마는 기획 초기단계부터 여성 고객을 겨냥해 만든 단말기. 자연주기법을 이용, 배란일을 알려주는 '핑크 스케줄', 칼로리 계산 및 비만도를 체크해주는 '칼로리와 비만' 등 여성의 구미를 당길 만한 내용을 채워넣었다.

또 휴대전화를 주로 핸드백에 넣고다니는 여성들을 위해 휴대폰을 꺼내지 않고도 수신상황을 알 수 있는 '수신 알림 리모트' 기능도 추가했다.

온라인 상의 여성전용 붐도 오프라인 못지 않다. 현재 여성전용을 표방한 인터넷 사이트는 무려 40여개. 하이텔, 유니텔, 나우누리 등 각 통신에도 여성만을 위한 서비스가 마련되어 있다.

여성전용 온라인 서비스의 종류는 크게 세 종류. 여성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모아놓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육아와 미용 등 한두개 분야를 특화한 전문 사이트, 사이버 공간에서 여자끼리 모여 수다를 떨 수 있도록 한 대화방이 있다.

여성전용 사이트들이 다루는 내용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패션, 결혼, 임신, 육아, 음식, 연애, 인테리어, 취업, 부업, 다이어트 등 여성이 일반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물론, 여성 관련 뉴스 제공, 사이버 여성 운동, 동호회, 성폭력 상담, 고부갈등 체험담 등등 점차 세분화, 구체화하는 추세다.


다양한 내용 선보이는 안터넷 사이트

아이지아(www.izia.com)에서는 여성 관련 뉴스를 제공하는 '아이지아 투데이'를 운영중이다.

평소 신문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는 뉴스나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여성 관련 기사들을 볼 수 있다. 화장과 미용에 관심이 많은 여성은 제일제당에서 얼마전 개설한 포털 사이트 엔프라니(www.enprani.com)를 들어갈 볼만 하다.

자신의 피부 타입을 알아 볼 수 있는 '스킨 타입 테스트'와 원하는 스타일의 화장을 시도해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 메이크 업'등의 코너가 있다. 취업 및 재교육에 관심이 많은 여성은 W21 닷넷(www.w21.net)으로 몰린다.

여성의 취업 창업 진로 등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 사이버 교육원에 등록하면 '인재 뱅크'를 통해 취업을 지원받을 수 있다.

또 여성 기업인과 여성창업을 지원하는 벤처 컨소시엄 '위 윈'도 운영되고 있다.

여성전용 원룸 주택 사이트도 있다. 베스트하우스 114(www.besthouse114.com)가 그것. 이 사이트에서는 강남구, 서초구 등 강남 지역과 고양, 김포 등 수도권 일대에 여성만 입주할 수 있는 원룸을 검색할 수 있다.

'여자만의 인터넷 천국'을 표방하는 우먼(www.woman.co.kr)은 공통 분모가 있는 여성끼리 남의 눈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소모임 코너인 통통 클럽에는 맏딸들의 모임, 위 아래로 치인 둘째들의 모임, 술 좋아하는 여자의 모임, 20대 주부의 모임 등 다양한 모임이 결성되어 있다.

또 여성전용 포털 사이트인 우먼 플러스(www.womenplus.com)의 '아나바다' 코너를 이용하면 회원끼리 서로 필요한 물품들을 교환할 수 있다. 이밖에 주부를 대상으로 한 주부닷컴(www.zubu.com), 아줌마(www.azooma.com), 미즈방(www.mizbang.co.kr), 전문직 종사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 클럽(www.sabiz.com), 임신과 육아 관련 정보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베베타운(www.bebetown.com) 등 보다 전문적인 사이트도 있다.

온라인 상의 여성전용 서비스 붐은 여성 네티즌의 수적인 증가에서 가장 직접적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국광고단체연합회의 '2000년 상반기 인터넷 사용자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인터넷 사용자 중 여성의 비율은 46.5%. 1999년 하반기의 29.3%에서 50% 이상 증가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사이버 세상에 늦게 뛰어든 사람이 많은 탓에 증가 속도는 남성 네티즌보다 훨씬 빠르다. 조사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사람 수로는 2000년 5월 현재 250만명(인터넷 메트릭스)에서 521만명(인터넷 정보보호센터)에 달한다.


여성 씀씀이 급속도로 확대

하지만 보다 근본적 원인은 여성의 경제력 상승에 있다. 인터넷에 익숙한 비교적 젊은 나이의 여성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왕성한 구매력을 지닌 계층으로 이들의 씀씀이는 급속도로 확대되어왔다.

인터넷업체로서는 절대 놓칠 수 없는 계층이다. 따라서 이들 인터넷업체의 궁극적인 목적은 잠재적 소비자인 여성 네티즌을 실제 구매자로 바꾸어놓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여성 네티즌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향후 인터넷 사업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가장 확실한 변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벌써 인터넷업체의 여성 소비자 공략은 은근하지만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개의 여성 전용 사이트들은 개설 초기에는 여성의 관심을 끌만한 내용으로 사이트를 운영한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회원을 확보하고 나면 어느 틈엔가 자체 쇼핑몰을 연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터넷 서핑에 소극적이어서 한번 들어간 사이트에 오래 머문다는 점, 그리고 소비성향이 강하다는 점을 노리는 것이다.

이들 중 2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아이지아(www.izia.com)는 소비자의 상품평가를 올리고 있고, 룰루(www.lulu.co.kr)은 회원끼리 입던 옷이나 잘 사용하지 않는 액세서리 등을 직접 교환할 수 있는 벼룩시장을 열고 있으며 이브 클럽(www.eveclub.com)에서는 온라인 상으로 옷을 고른 다음 상하의를 각각 매치시켜보는 '믹스 앤 매치'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저마다 소비자들을 잡기 위한 코너다.


"여성시장 계속 켜질 것"

오프라인도 사정은 마찬가지. 30년 전만 해도 집안의 큰돈 사용은 모두 남성의 재가를 받아야 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가정의 구매결정권이 여성에게 넘어가기 시작한지는 이미 오래다. 또 예전에는 남자이 벌어오는 돈에 의지해 사는 여자이 대부분이었으나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여성도 경제력을 지니게 되었다. 자신이 번 돈으로 자신이 갖고 싶은 물건을 구매하려는 여성은 무시못할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업체들은 여성을 위한 상품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고 여성 고객을 겨냥한 '우먼 마케팅'을 펼치지 않을 수 없는 것. 특히 구매수단이 신용카드나 앞으로 구매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이동통신이나 휴대전화 등을 여성 고객 잡기에 사활을 걸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들어서는 여성 고객을 놓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손을 잡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유니텔은 지난해 한국화장품과 제휴, 한국화장품을 사는 여성 고객 10만명을 대상으로 2년간 유니텔 요금을 30% 할인해주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순화 박사는 "여성의 구매 결정권자로서의 힘이나 여성 시장은 계속 커질 것"이라며 "이에 따라 여성의 감성에 맞는 상품, 나아가 눈에 보이는 것보다 이미지나 감성 그 자체를 중시하는 마케팅이 더욱 활성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성전용 시대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남성전용 사이트

아무리 여성전용 시대라지만 남성전용도 있다. 오프라인에도 있고 온라인에도 있다. 오프라인의 남성전용은 대개 기존에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것들. 남성전용 화장품, 남성전용 액세서리, 남성전용 미용실, 남성전용 피부관리실 등이다.

이들은 남성전용 상품은 이미 확실한 틈새시장을 형성했으며 남성전용 미용실의 경우 '블루 클럽' 등 전국적으로 61개의 체인을 갖춘 곳도 있다. 남성전용 액세서리 브랜드인 '놈'은 웬만한 백화점의 주요 매장을 차지할 만큼 성업 중이다.

오프라인에 비하면 온라인의 남성 전용 사이트는 이제 걸음마 단계. 지난해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남성전용 사이트는 10여개. 오프라인에서의 여성전용이 남성 위주의 시장에서 틈새를 파고든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전용이 월등한 온라인에서 틈새 시장을 겨냥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남성전용 사이트의 주요 주제는 섹스, 대머리, 다이어트, 성인병, 패션 등. 관심사가 상품 구매와 연결되어 있기는 여성전용 사이트와 마찬가지다.

뱃살닷컴(www.batsal.com)은 다이어트에 관심 있는 남성을 대상으로 '뱃살빼기 한달 작전'과 같은 이벤트 외에 섹스와 대머리 클리닉 코너 등을 운용하고 있다.

엑스사이즈(www.xsize.co.kr)는 체격이 너무 작거나 커 몸에 맞는 옷을 구하기 힘든 남성에게 다양한 사이즈의 옷을 팔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온리포맨(www.onlyforman.co.kr)에서는 젊은 남성을 겨냥해 남성전용 화장품을 판매한다.

남성 전문 성형외과인 옴므가 개설한 닥터포맨(www.dr4man.com)에서는 음경 확대, 조루 치료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 랄라맨(www.lalaman.com)과 맨즈(www.manz.co.kr)처럼 여성전용 포털 사이트 룰루와 쉬즈와 짝을 이루는 사이트도 있다.


여성전용 사이트에 올라있는 은밀한 얘기들

남자도 그렇지만 여자도 끼리끼리 모이면 보다 자유롭고 솔직해진다. 이성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간의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특히 속얘기를 제대로 다하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던 주부에게는 인터넷에서 만나는 같은 여자들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가상의 공간에서 여자끼리 만나서 하는 얘기들은 과연 무엇일까.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여성전용 클럽에 올라있는 여자들의 글을 통해 그들의 관심사와 고민, 세상 사는 이야기를 엿보기로 한다.

"난 요즘 섹스가 싫다. 뭐 누구처럼 진저리나게 싫은 건 아니지만 남편이 그냥 자주길 바라고 그냥 자는 날은 너무 편하다. 그렇다고 신랑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냥 섹스가 지겨울 뿐. 우리 신랑도 그럴까? 우리 신랑은 내가 성에 대해 되게 솔직하게 말하는 줄 한다. 그런데 아니다. 나도 요즘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병인가?"(choeun4)

"우리 시어머니는 빈틈이 없는 분이다. 신경도 예민하고 그래서 아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나는 비위가 강한 편이고 건드리지 않으면 화를 잘 내지 않는데 오늘은 동서 문제로 시어머니에게 한마디 했다.

중간에 껴서 말 못하는 심정 이해하나요? 그리고 버릇도 잡아야 하는.. 언제쯤이면 우리 어머니 기세가 꺾일까. 며느리의 자유를 인정하는 멋진 시어머니가 됐으면 좋겠다." (kilhana)

"아들이 감기에 걸렸다. 열 나고 콧물 나고 기침까지 한다. 식음을 전폐했다. 안 그래도 살도 없는 게 너무 불쌍하다. 불면 날아갈 듯 하다. 참 속상하다. 별별 것을 다해줘도 아무것도 안 먹는다. 엄마 노릇하기 너무 힘들다." (17142)

"남편이 나를 무시했을 때 쓰는 방법입니다. 일단 처음에는 뚱 하게 있다가 할 얘기가 준비되면 비장한 목소리로 말을 꺼냅니다. 말 할 틈을 주면 안됩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밀어붙이는 겁니다.

대신 소리지르거나 히스테리컬한 소리로 말해서는 안되고 조곤조곤 얘기해야 듣습니다. 가끔 그런 모습 보여야 남편이 다시 봅니다.

울음이 나와도 수건 준비해 놓고 눈물 닦아가며 할 말 다하세요. 지금 안 고치면 평생 가슴아픈 채로 살아야 합니다. 모진 마음 먹고 얘기하세요. 대화가 최고입니다." (rudfP)

"2000년이라고 요란하게 떠들더니 벌써 한해가 간다. 이제 마흔 한살로 접어들면 빠르게 줄달음 친다는데 자연스런 그 현상이 왜 두려운 걸까. 아이가 커 감사하게 생각하면서도 아이의 생각이 커짐을 느낄 때마다 내 아이가 이만큼 컸구나 하며 잠시 나를 돌아보게 된다." (cool61)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1/03 18:05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