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의 세계] 인공암벽 스포츠 클라이밍

도봉산 매표소를 지나 20분 정도 걷다보면 왼편에 그리 크지않은 바위 하나가 눈에 띈다. 높이 3m에 폭은 7~8m 정도 될까.

봄, 여름, 가을이면 이 바위는 지나는 등산객에게 심심치 않은 눈요기 거리를 제공한다. 바위에 매달린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예술적 동작과 등반묘기에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등산객이 적지 않다.

바위 이름은 '볼더링 바위'. '볼더링'(bouldering)은 떨어져도 다치지 않을 정도의 낮은 바위에서 자일 등 안전장비없이 하는 암벽등반 연습을 말한다. 장비로는 강한 마찰력을 가진 암벽화와 초크만 있으면 족하다.

초크는 땀으로 인해 손가락이 바위에서 미끌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손에 바르는 백색 염화마그네슘 분말. 보통 주머니(초크백)에 넣어 허리 뒤에 달고 등반한다.


1990년대 초 국내도입, 대중화 단계로

볼더링 바위를 도심으로 옮겨놓으면 어떨까. 시간이 없어 자주 산에 갈 수 없는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이 아닐까. 인공암벽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산, 특히 암벽을 저잣거리로 끌어내린 것이 인공암벽이다.

여기서 등반하는 것이 인도어 클라이밍(Indoor climbing), 또는 스포츠 클라이밍. 1990년대 초 국내에 도입된 스포츠 클라이밍은 이제 대중화 단계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

서울 강북구 수유3동의 클라이밍 아카데미. 높이 3m에 10여평 넓이의 지하실 벽과 천장에 각종 홀드와 스탠스가 총총이 박혀있다. 홀드(hold)는 암벽등반시 손 잡을 곳, 스탠스(stance)는 발 디딜 곳을 이른다. 하지만 실제 등반에서는 손잡이와 발디딤의 구별이 없어 홀드로 통칭한다.

홀드를 잡고 디디며 벽과 천장에 붙어있는 사람이 거미를 연상시킨다. 끙끙거리며 힘을 쓰는 클라이머들의 거친 숨소리로 실내가 후끈하다.

프로급 클라이머의 동작은 아름답다. 미세한 근육까지 홀드와 스탠스로 집중된 모습은 인체의 아름다움이 어떤지를 드러낸다.

한단계 한단계 나아가면서 팔과 다리, 몸통이 취하는 자세는 인체의 균형미를 보여준다. 천장에 붙어 머리카락을 온통 바닥쪽으로 늘어뜨린 여성 클라이머의 날렵한 자태는 행위예술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프로급만 실내암벽을 찾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최근에 건강을 위해 인도어 클라이밍을 시작했다는 허진구(59ㆍ건축업)씨는 한마디로 "좋다"고 말했다.

겨울철에 할 만한 다른 운동이 없고, 과거 암벽등반을 해본 경험이 있어 시작했다고 한다. 허씨는 한번 오면 2~3시간 운동을 한다. 내친 김에 앞으로 계속할 생각을 굳힌 허씨는 자녀들에게도 권할 작정이다.

클라이밍 아카데미의 정승권 대표에 따르면 이곳에 등록한 회원은 약 50명. 남녀 비율이 8대2 정도다. 연령은 초등학교 2학년부터 환갑 넘은 사람까지 다양하다. 직장인, 가정주부, 학생 등 직업도 가지각색.

회원들은 암벽등반을 전혀 몰랐던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자연암벽에서 등반해본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유경험자들은 평소 이곳에서 근력과 밸런스 훈련을 함으로써 실제 암벽에서 등반 수준을 높이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김영욱(30)씨는 1998년 이곳에서 실내암벽을 시작했다. 1994년 제대 후 한솔산악회에서 산악활동을 시작한 김씨는 실내암벽 훈련을 통해 암벽등반 능력을 키워왔다. 그는 한때 하루 10시간 실내암벽에서 운동하기도 한 열정파.


근력 밸런스 훈련, 실제등반수준 높여줘

퇴근길에 들렀다는 박희삼(38)씨는 "일주일에 한두번 이곳을 찾아 1~2시간 매달렸다 귀가한다"고 말했다. 평소의 체력관리와 근력ㆍ암벽감각 유지를 위해서다. 스트레스 해소는 부수입으로 얻는다. 그는 실내암벽은 아직 초보지만 산악회 활동을 통해 자연암벽은 많이 해봤다.

박씨는 "이곳에서 평소 연습하면 자연암벽에서도 자신감이 붙는다"며 실내암벽을 예찬했다. 그는 앞으로 자녀들에게도 가르칠 생각이다.

역시 퇴근길에 들른 백호기(36)씨는 실내암벽 6년째다. 일주일에 두번꼴로 시간나면 들른다.

자연암벽을 위한 보조운동 차원에서다. 그는 주말이면 북한산 인수봉, 도봉산 선인봉, 선운산, 간현암 등 한국 암벽등반의 메카를 부지런히 찾아다닌다. 백씨는 "암벽등반이 어려운 겨울철 실내암벽에서 부지런히 운동한 뒤 봄철 실제 바위에 붙어보면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 클라이밍은 등산에서 파생돼 나왔지만 등산과는 다르다. 등산은 일반적으로 높이를 추구하지만 스포츠 클라이밍은 같은 장소를 반복해 오르내림으로써 신체단련을 꾀한다.

스포츠 클라이밍의 대상이 반드시 인공암벽일 필요는 없다. 자연암벽이라도 높은 난이도를 가진 짧은 루트를 돌파하거나 반복해 등반하는 것도 포함된다.

하지만 역시 스포츠 클라이밍은 인공암벽이 제격이다. 인공암벽은 설치장소에 따라 실내와 실외(야외)로 나뉜다. 야외 인공암벽은 건물의 구속을 받지 않아 대부분 고도가 높다.

야외 인공암벽에서는 자연히 자일과 안전벨트 등 확보장비를 사용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확보해줄 파트너가 필요하다.


동호인 2만여명, 전국규모대회도

국내의 실ㆍ내외 인공암벽은 약 200여개에 달한다.(자세한 내용은 웹사이트 www.sportclimbing.co.kr이나 www.discovery.co.kr 참조) 인공암벽을 즐기는 동호인은 2만여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 중 80%가 자연암벽 등반 경험자다.

동호인을 위한 등반대회도 있다. 전국 규모의 큰 대회가 연 5회 정도 열린다. 소규모 동호인 클럽 내에서 개최하는 대회는 부지기수.

서울 강남구 포항제철 본사 사옥에 있는 포스코 실내인공암장은 국내 최고고도를 자랑한다.

지하 6층 지하실에서 1층까지 솟아오른 인공암벽의 높이는 25m이고 오버행(90% 이상 기울어진 벽)을 포함한 실제 등반거리는 27m에 이른다. 동호인에게 무료개방된 터라 각양각색의 사람이 자일을 함께 매면서 친근해지는 곳이다.

박종필(33ㆍ무역협회)씨는 퇴근 후 매주 3차례 이곳에 들러 2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벌써 만3년이 됐다. 직장 때문에 자연바위는 두달에 한번꼴 밖에 갈 수 없어 이곳에서 대리만족을 한다. 박씨는 인공암벽에서 땀을 흘리고나면 직장 스트레스가 싹 가신다고 말했다.

특히 주말에는 운동 뒤 맥주를 한잔 하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처음엔 다른 사람에게 배웠지만 지금은 수준급으로 동호인을 지도하고 있다.

처음엔 부인이 위험하다며 걱정했지만 이젠 자연암벽보다 더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반대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일을 맨 채 박씨의 확보를 받아 27m를 돌파한 뒤 하강한 권종렬(44)씨는 프리랜서 사진작가다. 지난해 3월 인공암벽을 시작했지만 그의 등반경력은 26년을 헤아린다.

현재 다솜산악회 회장인 그가 자연암벽에서 젊은이들에게 안밀리기 위해 찾아낸 곳이 인공암벽이다. 평소 부지런히 연습해 자연바위에서 젊은이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겠다는 것. 겨울에는 화요일만, 나머지 계절에는 거의 매일 이곳에서 1시간반 정도 매달린다.


"자연 암벽서 못느끼는 짜릿함이 있죠"

권씨는 "실내암벽 등반이 매우 짜릿하다"며 "자연암장에서 못느끼는 푸근함과 운동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실내암벽이 자연암벽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실내암벽에서 단련하면 완력이 위주인 자연암벽 코스에서는 빛을 발한다.

하지만 자연암벽의 슬랩이나 미세한 페이스 코스에서는 별로 유용성이 없다. 슬랩은 홀드가 없는 비교적 완만한 바위를, 페이스는 보다 각도가 높은 바위를 말한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홀드가 확실한 실내암벽에서 잘한다고 해서 슬랩이나 페이스를 잘 한다는 보장은 없다.

포스코 실내암장의 회원은 20여명. 직장인과 주부 등 여회원도 8명이다. 중동고 교사인 조남일(35)씨는 동료교사 3명과 함께 팀을 맞췄다. 전혀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지 두달 남짓이지만 이미 운동효과를 느끼고 있다.

처음엔 매주 한번 꼴로 왔지만 최근 두번으로 늘렸다. 조씨에게 실내암벽은 취미생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직 실력이 안돼 정상까지 올라보지는 못했다. 27m 정상까지 돌파해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 그의 당면 목표다.


"암벽등반은 집중력을 높여줘요"

■청각장애인 클라이머 이조경씨

타이즈 차림의 미끈한 몸매로 실내암벽에 매달린 이조경(30ㆍ사진)씨. 그녀가 청각장애인이란 사실을 알면 안타까움과 놀라움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이씨가 실내암벽에서 닦은 기량으로 선인봉 등 높은 자연암벽을 등반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더 놀라게 된다.

실제 암벽등반에서는 선등자와 후등자간에 갖가지 육성신호가 오간다. 출발신호에서부터 문제가 생겼을 때의 대처요령 등은 물론이고 선등자와 후등자가 서로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신호는 오가야 한다.

클라이밍 아카데미의 채미선(29) 관장에 따르면 이씨는 훈련을 통해서 이같은 문제를 극복했으며 현재 수준급 등반능력을 갖고 있다.

이씨의 실내암벽 경험은 3년째. 그녀는 "산이 좋고 집중할 수 있어서 실내암벽과 자연암벽을 등반한다"고 말했다. "실내암벽에 매달리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분이 좋다"고 한다.

그녀는 실내암벽은 높이가 낮고 안전하지만 자연암벽은 높아서 겁이 난다고 말했다.

아울러 안전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은 물론이고 자일 파트너간 호흡도 맞춰야 하는데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함을 느낀다.

이씨의 근무지는 가톨릭 농아선교회 사무실. 그녀는 "꾸준히 하면 좋을텐데 매일 와서 운동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씨는 등반을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며 독특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실내암벽은 충분한 워밍업부터

■한국 스포츠클라이밍 선구자 정승권씨

대부분의 실내암벽에서 추락해서 부상할 일은 없다. 하지만 실내암벽에서도 부상은 나온다. 충분한 워밍업없이 무리하게 매달리다 근육을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라이밍 아카데미의 정승권(41ㆍ사진) 대표는 "실내암벽에서는 충분한 워밍업을 통해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해야 부상없이 효과적인 운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한국 스포츠클라이밍의 선구자 그룹에 속한다. 1991년 클라이밍 아카데미를 개설해 실내암벽 대중화에 앞장섰다. 그는 지금까지 각종 등반대회에서 화려한 입상경력을 갖고 있다. 그의 등반능력은 실내암벽보다는 자연속에서 더 뛰어나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와 안나푸르나, 매킨리 등을 등정했고 미국 암벽등반의 메카인 요세미티 지역을 여러 차례 등반했다. 빙벽등반에서는 한국의 최장 빙폭인 토왕성 폭포(200m)를 단독으로 자일없이 4차례 오른 '무서운 사나이'다.

그는 실내암벽의 장점으로 3가지를 들었다. 무엇보다 안전하고, 둘째 누구나 언제든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셋째는 정적이지만 전신의 극심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운동이다. 평소 쓰지 않는 특정 부위의 근육까지 움직임으로써 전신을 고루고루 발달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씨는 실내암벽을 지속적으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3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욕심은 금물이고 충분한 워밍업이 중요하다.

1시간 중 50분은 예비운동과 스트레칭을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둘째, 지루함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운동계획표를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험자에게 많이 물어보아야 한다. 실내암벽에 대한 책자가 거의 없고 번역서는 더욱 없기 때문이다.

실내암벽을 잘하기 위해서는 손가락과 어깨근육, 광배근 등을 특히 발달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웨이트를 달고 턱걸이하기. 바벨이나 역기를 들고 손목 감아올리기 등이 좋다. 하지만 트레이닝을 한답시고 무작정하면 역효과가 난다.

정씨는 프로그램을 짜서 반복운동을 하도록 권고했다. 예를 들어 턱걸이를 한다면 힘을 90% 이상 소모할 때까지 한차례 한 뒤 충분히 쉬었다가 다시 반복하기를 3세트 이상 해야 한다는 것.

아울러 근력과 지구력 배양운동을 따로따로 나눠서 반복하는 것이 좋다.

40대에 들어서면 근력운동만을 통한 등반능력 향상속도는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정씨는 따라서 근력운동과 함께 저지방 고칼로리 음식물 섭취, 단전호흡 등을 통한 생체리듬 관리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금주, 금연, 커피 안마시기 등 수도승에 가까운 금욕생활을 함으로써 체력을 관리하고 있다"며 자신의 비결을 소개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김명원 사진부 기자

입력시간 2001/01/03 18:50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