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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의 영화세상] 2000년 한국영화

2000년 한국영화계를 돌아보자. 어느 곳보다 풍성했던 셈이다. 나라 꼴은 말이 아닌데, 왜 영화만 웃었을까. 직장을 잃고 거리로 쫓겨나고, 돈이 없어 물건이 팔리지 않는데 영화판에는 돈이 넘쳐 났다. 가난할수록, 불안할수록 투기가 횡행하는 것일까. 아니면 영화로나마 이 고달프고 희망 없는 현실을 잊고 싶어서일까.

누가 뭐래도 2000년은 '공동경비구역 JSA' 였다. 아직 지난해 '쉬리' 기록(서울 244만8,399명)을 깨지는 못했지만, 최다 극장 개봉에 개봉 첫 주말 최다, 최단기간 100만명 돌파 등 한국영화의 2년 연속 호황을 이끌었다. 여러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남북화해 분위기, 과거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소재. 그러나 문제는 역시 작품의 완성도였다. 이 정도의 재미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준비만 있으면 관객들은 열광한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명필름을 최고 제작사로, CJ엔터테인먼트를 최고 투자ㆍ 배급사로 올려 놓았다.

그 위력에 힘입어 한국영화는 1999년(32.8%)에 이어 2000년에도 시장점유율 30%이상(32.8%)을 기록했다. 그 주인공들 역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작비 40억원이 넘는 블록버스터들이었다. '비천무' '단적비연수' '리베라 메'가 3~ 5위를 차지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작품이 탄탄해서라기 보다는 물량공세를 펼친 덕분이다. 물론 '반칙왕' (2위, 81만7,000명)과 '동감' (7위, 32만6,000명)같은 비교적 작은 영화도 성공한 경우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큰 돈으로 크게 먹기 판이었다. 극단적인 빈익빈 부익부. 이를 두고 한 평론가는 '도박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분석했다.

새로 생긴 멀티플렉스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흥행작을 대여섯 상영관에 한꺼번에 거는 수익 최대화 작전. 그것도 모자라 가격차별화, 서비스차별화를 외치며 입장료를 7,000원으로 올렸다.

오직 '돈'뿐인 분위기에서 '춘향뎐'은 칸 영화제 장편경쟁에 올랐고, 이창동과 홍상수 감독은 '박하사탕' '오!수정' 으로 연속 칸에 나갔다. 그리고 둘은 카를로비바리, 도쿄영화제 등에서 상을 받아 우리 영화의 주가를 높였다.

사실 이 세 작품은 국내에서의 평가가 오히려 인색했다. '춘향뎐' 의 전통성과 실험성, '박하사탕' 의 역사성, '오!수정'의 일상성은 우리 영화의 영원한 지향점을 제시한 셈이다.

국내에 화제작이 나오고 해외영화제의 호평도 있었으니 해외수출이 느는 건 당연하다. 11개국 300만 달러에서 24개국 700만 달러로 늘었다. 극장들은 영화 통계의 기초가 될 시스템인 입장권 발매 통합전산망 사업 실시에 합의했고, 서울에 처음 시네마테크(스타식스 6관)도 생겼다.

스크린쿼터를 사수하려는 영화인들의 노력은 2000년에도 계속돼 국회결의안까지 유도했다. 시대 흐름에 따라 북한영화가 국내 상영되고, 우리 영화와 영화인들이 북한에 갔다. 그것이 곧 남북영화교류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명필름의 심재명에 이은, '글래디에이터' '아메리칸 뷰티' '치킨런'으로 미국 직배사의 10년 아성을 무너뜨리고 국내 외화흥행까지 1위를 한 이강복 CJ엔터테인먼트 대표, 최고 흥행 배우가 된 송강호, "나 돌아갈래"로 연기상을 6개나 받은 설경구에게 2000년은 잊지 못할 해이다.

행운은 누구에게나 한번은 온다던데. 그럼 2001년 한국영화에서는 누가 그 주인공이 될까.

이대현 문화부 차장 leelh@hk.co.kr

입력시간 2001/01/0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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