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잊혀질 수 없는 전쟁

조지 W 부시를 지지하는 일단의 유권자들은 지난 12월 초에 앨 고어 부통령의 플로리다주 수개표 청원에 대해 '진주만 기습공격같은 끔직한 것'이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었다. 미국인들은 1941년 12월7일 있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대해 "Remember Pearl Habor!"(진주만을 기억하자)라며 매년 상기한다.

새 천년 첫 해가 끝나는 12월31일,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왜 "Remember Korean War!"라고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클린턴 대통령은 퇴임을 앞두고 북한의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갖지 않음으로써 포용정책을 포기했다.

'No Gun RI(노근리) 사건'도 유감표명으로만 끝날 것 같다. 한국은, 한반도는, 한국전쟁은 또다시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 되는 것일까.

클린턴 대통령은 1997년 7월27일 워싱턴 DC의 한국전쟁 기념비 개막식에서 이렇게 치사했다. "미군 600만명이 동원되었고 1차 대전의 3배, 그리고 2차대전 만큼 길게 싸웠고 미군 3만6,629명이 죽었고 10만3,284명이 부상한 이 전쟁은 결코 잊을 수 없다."

그후 한국전쟁은 '잊을 수 없는 전쟁'이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전쟁발발 50주년을 맞고 보내는 새 천년 첫 해의 섣달에 이 전쟁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대통령을 가진, 88올림픽을 치른, 그리고 컴퓨터 수출국이라는 한국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베트남 전쟁 같은 '나쁜 전쟁'으로 규정되고 '잊혀진', 또는 '잊어버린 전쟁'이 되어간다"(부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 시카고 대학교수).

한국전쟁은 트루먼 대통령의 말대로 "약소국가인 남한에 가해진 침략행위에 대한 유엔의 경찰행위"라고 믿는 이는 없다. 한국전쟁에서 부산 교두보를 지키는데 소방대 역할을 한, '이리사냥개'라는 별명을 가진 24사간 27특별기동대(대장 마이클러스 대령, 전 8군사령관)의 포병 관측장교였던 에디슨 테리 소위도 보람을 느끼지 않는다.

상기하기보다 잊지 않으려는 측에 든다.

테리 소위는 지난 8월에 '부산 사수를 위한 전투'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냈다. 책이 나오자 아마존닷컴에서는 '숱한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거짓없이 쓴 당당한 전쟁 회고록'이라며 별 다섯개의 최고 평점을 주었다.

퍼듀 대학의 ROTC를 마친 테리는 일본 주둔 7사단 포병 장교로 있다가 한국에 참전하는 24사단의 27기동대에 배속된다. 부산에 수송선을 타고 도착한 것은 1950년 7월2일. 부산은 23세의 남부 죠지아 출신 테리 소위에게 '혼란이 가득찬 회색의 도시'였다. 일본에 이어 두번째 보는 외국풍경이었다.

부산에 도착한 이튿날 이들은 경북 의성에서 북한군을 기다렸다. 그는 대포소리가 105mm 포인지 155mm 포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총소리가 아군 것인지 적군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의성에서 사천으로, 마산으로, 진동리로, 대구 북쪽 상주ㆍ안동으로, 함안으로, 낙동강을 따라 9ㆍ15 인천상륙 때까지 부산 교두보 확보를 위한 진지전은 신무기로 등장한 155mm 포를 유도하는 관측장교로 큰 성과를 얻도록 했다.

더위와 모기, 먼지와 논밭의 진흙탕을 헤매며 해가 지면 공격해오는 인민군의 인해전술을 겪으며 23세의 미국 청년은 늘 이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내 생각이 너무 지나친 것인지 모른다. 언제나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과거 우리 군은 싸울 만한 것을 위해 싸웠다. 군인 개개인은 왜 싸우는지를 알았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다르다. 오직 워싱턴의 당국자들의 성명 속에 전쟁의 목적이 있다. 이를 지지하는 것은 정치인 뿐이다. 이 전쟁의 계곡에서 이런 성명은 공허한 것이다. 이번 전쟁이 워싱톤의 성명처럼 생명을 바쳐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군인은 얼마나 될까."

테리 소위는 1951년 6월 부상을 입고 본국으로 수송되어 6개월여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이 회고록을 썼다. 그리고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1998년까지 잊었다. 이사도중 발견한 원고를 다시 꺼내읽고 그는 이 전쟁이 잊혀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젊은 날의 고민은 한국을 지켰고 그리고 공산주의의 붕괴를 가져왔다. 테리 소위에게 한국전쟁은 청춘을 되살려주는, 기억해야 할 전쟁이 되었다.

박용배 세종대 겸임교수

입력시간 2001/01/0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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