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행정부와 한반도] "일방적 대북지원은 없다"

'클린턴 포용정책' 궤도수정·속도조절로 '메스' 댈 듯

"국익을 증진할 협정을 북한과 맺을 방법을 준비하고 나의 평양 행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시간이 임기 중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구랍 28일 성명을 발표, 평양행 포기를 공식화했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 북한의 미사일 개발 계획에 대해 확실히 종지부를 찍는 것으로 8년 임기의 대미를 장식하려던 개인적 열망을 접는 순간이었다.

그의 평양행 포기 선언은 동시에 1994년 제네바 북ㆍ미 핵 합의 이후 민주당 행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 왔던 대북 유화정책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오는 20일이면 대북 강경책을 표방하는 조지 부시 행정부의 출범이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성명에서 "대북 포용정책은 가능성이 큰 만큼 지금까지 이룩한 것을 토대로 더욱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해 부시 새 행정부에 대해 대북 포용 정책의 승계를 강력히 주문했다.


클린턴, 대북정책 승계 주문

하지만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 정책을 강도 높게 비난해온 공화당이 대북 관계에서 클린턴 행정부의 유화정책을 그대로 계승하리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일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지명자 등 부시 새 행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핵심 참모들의 면면을 보면 보다 확실해진다. 이들이 표방하는 노선은 '힘을 통한 평화 유지'이다.

이들은 특히 북한에 대해 엄격한 '군사적 억지' 와 북한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 확고한 대북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외교교섭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억지와 봉쇄에 의한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 하에서는 북한을 포용해 국제사회에 편입시키려고 노력한 클린턴 행정부의 포용정책은 비판적 재평가가 불가피하며, 북한에 대한 접근방식도 변화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물론 부시 새 행정부가 클린턴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대안으로 대북 봉쇄 정책을 실행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북ㆍ미간 화해의 물꼬를 틀어 막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왔으며, 화해의 기류를 냉각시키는 것 자체가 공화당의 정책 목표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부시의 외교진용이 강성 인물들로 채워지긴 했으나 클린턴 행정부가 북ㆍ미 관계의 진전을 위해 지금까지 깔아 놓은 레일을 떼어내긴 힘들 것"이라며 "북한과 미국이 관계 정상화라는 종착역을 향해 레일 위를 달리는 것은 대세"라고 말했다.


부시행정부, 비판적 재평가 예상

그러나 기관사가 바뀐 이상 궤도의 수정과 속도 조절은 충분히 예견된다. 한 외교 전문가는 "부시 새 정부가 기존 대북 개입정책을 포기하진 않겠지만 일방적 대북 지원정책에 대해 재고하고, 철저한 상호주의를 북한에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북ㆍ미 관계의 경색과 한ㆍ미간 냉기류를 물고 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점에서 1994년 제네바 핵 합의에 대한 이행문제는 향후 북ㆍ미 관계의 진전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공화당의 외교안보팀은 제네바 핵합의를 대표적인 외교치적으로 내세우는 클린턴 행정부와는 달리 이에 대한 비판을 대북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들은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시키기 위해 경수로와 중유를 제공하는 것은 '협박'을 보상으로 대응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는 '포린 어페어즈' 1ㆍ2월 호에 기고한 '미국의 국익증진을 위해'라는 논문을 통해 "제네바 합의는 북한에 핵 개발을 포기하도록 뇌물을 준 것이지만 (핵개발 저지를 위한)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인식이 제네바 핵합의 이행 과정에 제동을 거는 식으로 반영되면 경수로 건설 지연에 대한 보상으로 오히려 전력공급 등을 요구하고 있는 북한과는 마찰로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이다.

물론 공화당이 주도한 의회가 클린턴 행정부의 중유 공급자금 요청을 승인해온 데다 제네바 핵 합의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 북한의 심각한 반발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 정부가 한반도에너지 개발 기구 (KEDO)에서 탈퇴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공화당 외교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아미티지 보고서(1998년)가 이미 지적한 대로 미국의 새 행정부가 ▦핵 개발에 대한 투명성 ▦국제원자력기구 (IAEA)에 의한 핵사찰 조기 실시를 북한측에 요구할 경우 양측의 관계개선 움직임은 급속히 냉각될 수 있다.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해 클린턴 행정부와 북한이 이룬 합의사항이 계속 유지될 지도 의문이다.

완전한 사전 합의가 도출되지 않아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북ㆍ미는 2000년의 콸라룸푸르 회담 후 물밑 접촉을 통해 인공 위성 3기를 대리 발사하는 조건으로 북한 미사일의 개발ㆍ수출을 규제하는 문제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부시 새 행정부는 미사일 개발ㆍ수출 포기에 대한 보다 확실한 검증을 북한측에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핵개발 투명성 요구로 급속냉각 우려

외교안보 분야의 중책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방부 차관보는 구랍 31일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합의의 이행을 검증할 수 있을 지 여부에 대해 차기 정권은 클린턴 정부 이상으로 회의적"이라고 밝혀 검증수단이 담보되지 않은 채 교섭을 계속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특히 공화당 일각에서는 인공위성 대리 발사 지원 과정에서 군사적으로 유용한 기술이 북한으로 이전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분위기는 대북 경제지원 등 미사일 발사유예에 대한 대가의 이행에도 차질을 가져와 북ㆍ미 관계가 교착 국면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무엇보다 국가미사일방어(NMD) 체계 수립을 위한 부시 새 행정부의 집념은 동아시아에 불안의 전조를 드리우면서 한반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부시 당선자는 구랍 28일 1998년 '미사일방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클린턴 행정부에 NMD 구축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던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을 차기 국방장관에 지명함으로써 NMD 체제의 신속한 구축 의도를 분명히 했다.

이 같은 미국의 정책은 NMD 구축에 반대하고 있는 러시아 중국과의 외교적 갈등이 조기에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은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가 아니라 전략적 경쟁자로 간주하고 있다. 중국은 부시 정부가 일본과의 동맹을

강조하고 NMD를 개발하면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의 통제능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NMD가 북한이나 이란의 미사일 위협이라는 표면적 이유보다는 궁극적으로 중국, 러시아 등을 겨냥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차기 미 행정부가 극단적으로는 북한 미사일 문제를 NMD 추진을 위한 명분으로 활용할 가능성까지도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북ㆍ미 관계를 대결구도로 몰고 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과의 조화로운 협력하에서 대북 포용정책을 이끌고 가려는 김대중 정부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외교 전문가는 "북ㆍ미 관계는 북한의 극적인 태도변화가 없는 한 6개월~1년여의 조정기를 거친 후에도 한동안 표류하거나 NMD를 둘러싼 미ㆍ중, 미ㆍ러간 갈등의 와중에서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승일 정치부 차장

입력시간 2001/01/0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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