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 (41)] 니와(庭)

도쿄(東京) 신주쿠(新宿)에 있는 신주쿠교엔(新宿御苑)은 일본식과 영국식, 프랑스식 정원으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도심의 공원이다.

넓은 잔디밭 위에 벚나무 등이 늘어선 영국식 정원이나 장미꽃밭이 펼쳐진 프랑스식 정원 등은 잘 다듬은 곰솔과 자연석이 군데군데 놓이고 연못과 다리가 어울린 일본식 정원과 뚜렷이 구별된다.

베르사이유궁의 정원에서 보듯 프랑스식 정원이 기하학적 조형미를 펼쳐 보인다면 일본식 정원은 인공의 냄새를 되도록 감춘다. 그래서 얼핏 보면 자연 그대로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기자기하지만 어딘지 허망한 인공의 조형미를 느끼게 된다.

정원에 대한 일본인의 전통의식은 멀리 보이는 산과 바다, 섬, 흐르는 물 등 자연을 뜰 안에 있는 것처럼 즐기거나 자연을 축소해 뜰 안에 끌어들이는 흐름으로 나눠볼 수 있다.

전자를 자연을 빌린다는 뜻의 '샷케이'(借景)라는 말을 붙여 일본 특유의 인식인 것처럼 자랑하고 있으나 일찍이 중국의 도연명(陶淵明)이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꺾으며 문득 눈들어 남산을 본다"(採菊東?下 悠然見南山)고 읊었듯 동양 전통의 연속적 자연인식일 뿐이다.

오히려 일본적 특성은 자연을 본따고 축소하는 후자에서 보다 강하게 나타난다. 그 뿌리는 한반도를 거쳐 전래된 신선사상 등에서 찾을 수 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독특한 기법을 갈고 닦아 거의 완성된 형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본 고유의 조형미로 꼽을 만하다.

일본인의 정원이 샷케이에서 자연의 모방ㆍ축소로 넘어간 역사적 계기로는 흔히 1467년의 오닌노란(應仁の亂)을 든다.

가마쿠라 바쿠후(鎌倉幕府) 6대 쇼군(將軍)인 아시카가 요시노리(足利義敎)가 살해된 후 쇼군 자리를 두고 전국의 무사집단이 둘로 나뉘어 맞붙은 이 전쟁으로 도읍지인 교토(京都)는 거의 잿더미로 변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잿더미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더이상 자연을 빌려 감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서민들이 집 안팎을 구분해 안에서나마 작은 평화를 간직하려고 울타리를 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울타리에 의해 일본의 니와(庭)는 질적인 변화를 겪는다. 일본에서 니와(庭)와 소노(園)는 전혀 다른 공간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니와는 울타리가 없는 집앞의 평평한 뜰로, 타작을 비롯한 농사일이나 제사 등을 행사하는 공간이었다. 반면 소노는 울타리를 치고 야채나 과일, 화초를 재배하던 텃밭이었다.

울타리에 의해 니와는 소노의 화초 재배 기능을 통합한 새로운 공간이 됐다. 한참 세월이 흐른 메이지(明治)유신 이후에 니와와 소노를 합친 한자어 '데이엔'(庭園)이 쓰이기까지 일본인은 대개 정원을 그냥 니와라고 불렀다.

서민들은 이 니와에 지배층의 대정원을 본따 자연을 축소해 옮기는 작업에 매달렸다. 수목화초에 신령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에 뿌리한 집착이었으며 그런 전통은 오늘날 서민의 작은 마당에도 거의 예외없이 한평짜리 정원을 뜻하는 '쓰보니와'(坪庭)라는 안뜰을 배치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일본에서 정원에 대한 첫 기록은 626년에 숨진 섭정 소가노우마코(蘇我馬子)의 저택에 있던 정원에 대한 니혼쇼키(日本書紀)의 묘사다. 작은 연못을 파고 그 가운데 섬을 만들어 지배층 사이에서 대호평을 얻었다. 당시 불교와 신선 사상을 전한 백제인이 정원 축조기술도 함께 전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최근 아스카(明日香) 지역에서의 잇단 정원 유구 발굴로 그 형태가 한결 뚜렷해진 당시의 정원은 오늘날 일본의 대표적인 정원 양식인 쓰키야마린센(築山林泉)식의 원형이다.

바다를 상징하는 연못에 수미산(須彌山)을 상징하는 작은 섬, 십장생의 하나인 소나무를 심고 정교한 배수로를 만들어 언제든 물이 흐르도록 만들었다.

한편으로 비교적 작은 규모로 자연석을 조합해 심산유곡의 풍경을 표현하고 흰 모래를 까는 것으로 상상 속의 물의 흐름을 표현하는 생략과 여백을 살린 가레산스이(枯山水)식 정원은 14세기 선종의 침투와 함께 인기를 끌었다.

1450년에 세워진 교토 료안지(龍安寺)의 정원은 모래밭에 15개의 크고 작은 돌을 배치, 망망대해에 점점이 떠 있는 섬을 훌륭하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식 정원은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고 특히 복잡한 도시 공간의 작은 휴식터에는 안성맞춤이다. 쓰키야마식 정원의 원형을 전한 우리조차 예외가 아니어서 문화 흐름의 반전을 실감하게 한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입력시간 2001/01/09 18:34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