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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만 말끔해진 'SOFA 수리'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이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1991년 1차 개정 이후 10년 만에 새로 단장한 SOFA의 겉모습은 일견 화려하다. 환경조항이 처음으로 신설되고 형사 분야의 독소조항도 많이 고쳐졌다. 또 미군 부대 근무자의 해고요건이 강화되는 등 노무조항도 사실상 30여년만에 대폭 손질됐다.

미군 부대에 반입되는 동ㆍ식물에 대한 공동검역 실시도 이번 개정안에 처음 포함되는 조항이다. 정부의 SOFA 개정 협상 의지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던 시민ㆍ사회단체와 학계도 SOFA의 외형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는 점을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각론과 개정의 실익 측면에 있어서의 평가는 양극을 달린다.


시민단체 "개정불구 불평등 여전" 혹평

우리측 협상대표단을 이끌었던 송민순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은 지난 12월28일 기자회견에서 "한ㆍ미 SOFA가 그 동안 불편한 소파(sofa)여서 앉아있기 어렵다고 했는데 이번 개정을 통해 큰 불편 없이 오랫동안 앉아있을 수 있는 소파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반면 시민단체와 학계의 평가는 차갑다. 이들은 개정된 SOFA가 겉만 화려할 뿐 선언적이고 포괄적인 내용들로 채워져 여전히 불편한 소파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미군만 앉기 편한 소파가 됐다는 혹평도 나온다.

이같은 평가의 차이는 SOFA에 대한 기본인식이 다른 데서 비롯된다. 미군 주둔에 따른 SOFA의 현실적 필요성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정부측과는 달리 시민단체는 SOFA는 미군의 권리보장을 극대화한 불평등 문서라는데서 비판의 출발점을 삼고 있다.

따라서 SOFA의 불평등하고 독소적 조항에 대한 전면개정만이 미국에 의한 우리의 사법주권 침해를 회복하는 길이라는 것이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우리 대표단의 미국 측에 대한 협상력을 높여주는 힘이 되는 동시에 부담으로 작용했던 게 사실이다. 한쪽에는 최소한의 양보만으로 한국측의 SOFA 개정요구를 무마하려는 미국이 버티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민주권적 권리의 전면 회복을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는 상황에서 협상대표단의 입지는 상당히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SOFA 개정이 클린턴 행정부의 임기 내에 매듭지어지지 않을 경우 보수적 색채가 훨씬 강한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같은 상황은 결국 주권적ㆍ상징적 조치는 확보하되 미측의 실질적 요구에는 양보하는 '절반 만의 승리'를 가져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명분과 실리 사이의 봉합이 극명하게 드러난 분야가 형사재판 관할권이다. 정부측은 협상 후 배포한 자료를 통해 '기소시 신병인도 조항'은 "주권적ㆍ상징적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기소 이전에 범행증거를 확보해야 하고 기소 후에는 우리 당국에 의한 피의자 신문도 사실상 어려워 기소시 신병을 넘겨받더라도 절차적 실익은 없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게다가 1년에 1, 2 명의 미군 피의자를 구금하기 위해 '특별한 시설'을 유지, 관리해야 하는 비효율을 감안하면 신병인도 문제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환경 등 다른 분야에서의 실리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하지만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미군 피의자를 형확정 후에야 우리 당국에 구금할 수 있는 데 대한 국민의 공분은 실리적 접근만으로 SOFA를 다룰 수 없게 하는 측면이 있다.

기소시 신병인도 문제는 눈에 보이는 이해득실을 떠나 우리의 사법주권을 우리가 행사하는 최소한의 잣대이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기소시 신병인도는 우리의 주권적 권리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따내야 할 선결 과제였다"고 말했다.


기소시 신병인도 위해 너무 많은 양보

우리 정부의 입장을 간파한 미국 측은 역으로 신병인도 시기 문제를 협상에 활용하는 작전을 폈다. 미측은 기소시 신병인도에 대한 우리측 요구에 순순히 동의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까다로운 조건을 달았던 것이다.

경미한 사건에 대한 재판권을 포기하고 주한 미군사령관이 법집행 절차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즉시 피의자를 미측에 인도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그 대표적 예다. 결국 최종 협상 과정에서 미측은 우리 측의 완강한 태도에 주장을 굽혔지만 미군 피의자에 대한 법적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는 조항을 반대급부로 챙기는 실익을 거두었다는 평가다.

정부는 협상 결과 한ㆍ미 SOFA가 미ㆍ일 SOFA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번 협상에서 살인과 '죄질이 나쁜 강간범'을 우리측이 체포했을 경우 미측에 신병을 인도하지 않고 계속 구금할 수 있는 '체포시 계속구금권'을 확보한 것은 예상 밖의 개가였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기소시 신병인도를 받기 위해 미측에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며 "정부가 협상의 외형적 결과만을 과장해서 홍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기소시 신병을 인도받을 수 있는 범죄의 대상을 살인, 강간, 유괴, 마약거래 및 생산, 방화 등 12개 범죄로만 한정한 데다 미군 피의자의 법적 권리를 지나치게 확대했다는 게 비판의 골자다.

또 우리측이 체포후 계속구금권을 행사할 경우 변호사 출두 때까지 미군 피의자를 신문하지 않고 변호사가 없는 상황에서 확보한 증언과 증거를 재판 때 사용하지 않도록 한 것은 내국인과의 형평성 측면에서 부당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계속구금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강간범죄에 '죄질이 나쁘다'는 단서를 단 것은 미측의 입장을 지나치게 반영한 결과이어서 논란의 불씨를 제공하고 있다.


법적구속력 떨어지는 환경관련조항

환경분야에서도 마찬가지 지적이 가능하다. 협상 초기 미측이 환경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없다는 완강한 태도를 보였던 점을 감안하면 환경 관련 조항을 SOFA의 테두리에 포함시킨 것 자체가 큰 진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설된 환경 조항은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상호 인정하고 한국의 법령을 존중한다"는 선언적ㆍ원칙적 내용이어서 법적 구속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높다.

최승환 경희대 교수는 "선언적 문구로 미국의 환경오염 행위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환경피해에 대한 배상을 적절히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미군 기지내의 환경오염으로 기지 밖에 피해를 초래했을 경우 독일이 즉시 피해를 산정, 신속히 통보하면 미군이 지체없이 피해를 배상하는 독일보충협정에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정부 측은 현행 SOFA 23조의 청구권 조항에 의거, 미군 오염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이 마련돼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야단체에서는 국가배상 절차를 통한 피해구제는 절차가 번거롭고 실제 손해액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는 데도 제약이 따른다는 입장을 보였다.

환경분야의 구체적 내용을 SOFA 본문이 아니라 '특별양해각서'에 규정한 것도 법적 효력과 관련해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특별양해각서도 본문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본문에 수용함으로써 미측의 태도 변화 가능성을 확실하게 차단했어야 했다는게 시민단체의 입장이다.

다만 시민단체들도 환경피해의 공동조사를 위해 미군기지 출입절차를 마련키로 한 것은 손해배상을 위한 인과관계 규명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하고 있다.

최 교수는 "1967년 제정된 SOFA가 고무신이었고 1991년 1차 개정 SOFA가 고무신에 덧칠을 한 것이라면 이번 개정 SOFA는 운동화에 해당한다"며 "아무리 좋은 운동화를 신었더라도 뛸 의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듯 향후 SOFA 집행과정에서 국민의 의지를 관철시켜려는 정부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승일 정치부 차장 ksi8101@hk.co.kr

입력시간 2001/01/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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