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NEWS & WORLD REPORT] 21세기를 바꿀 이노베이트

2001년엔 어떤 사람이 세상을 바꿀까. 인체의 신비를 밝혀 난치병을 치료하고, 차세대 IT(정보기술)을 구현하는 21세기 이노베이터(Innovator)들은 누구일까.


수술용 로봇을 만든 로브 영과 프레드릭 몰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는 새해를 맞아 '이노베이터 2001'이라는 특집을 마련했다. 이 잡지가 2001년의 이노베이터로 첫 손가락에 꼽은 사람은 수술용 로봇을 개발한 로브 영과 프레드릭 몰 박사.

48세 동갑내기인 이들이 발명한 로봇 '다빈치'는 세 개의 팔에 수술기구를 달고 조정실에 있는 의사의 지시대로 수술을 한다. 장점은 수술기구가 몸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만 있으면 수술의사의 손과는 달리 별도의 활동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절개 부위가 작아 고통도 별로 없으며 감염 가능성도 낮다. 입원기간도 짧고, 회복도 빠르다는 점에서 환자에게 유리하다. 또 정밀한 수술도 가능하다.

다빈치를 개발한 로브 영은 전자엔지니어 출신으로 휴렛패커드에서 로봇에 매달려온 로봇 마니아. 그를 의사인 프레드릭 몰 박사가 끌어들여 100만 달러짜리 다빈치를 만들었다. 1995년 SRI인터내셔널이 만든 초보적인 수술용 로봇을 보고 다빈치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는 게 몰 박사의 이야기다.

다빈치가 인체를 대상으로 첫 수술에 들어간 것은 1997년 3월이다. 이후 다빈치의 활용도는 엄청 넓어졌다.

독일 드레스덴 의과대학의 심장 전문가들은 심장수술 가운데 가장 어렵다는 관상동맥 바이패스 수술에까지 다빈치를 이용하고 있다. 또 배뇨작용을 조절하는 근육과 발기를 조정하는 신경을 다치지 않고 전립선암을 제거하는 수술에도 실험적으로 동원된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의과대학팀이 심장안에서 피의 흐름을 조절하는 승모판의 기능회복 수술에 다빈치를 활용했다. 승모판의 역할은 아주 중요한데 그 기능이 떨어지면 심장에 피가 고여 심장이 정지된다. 그렇게 죽는 사람도 매년 수천명에 이른다.

수술의들은 로봇의 도움을 얻는데 부정적이다. 그러나 로봇이용은 앞으로 얼마나 정밀한 수술을 원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몰 박사는 말한다. 다빈치와 같은 로봇은 이제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수술에서도 활용되기 시작했다.


체세포 배양 전문가 카테린 베르파이

체세포를 배양해 인체의 조직세포를 만드는 생명공학분야에서는 카테린 베르파이(43) 미네소타대학 교수가 선구자격이다. 학생시절 5종경기 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체육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던 그녀는 무릎 부상으로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접었으나 체세포 배양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됐다.

그녀의 전공은 성장한 체세포를 변형시켜 인체의 핵심 장기조직으로 키우는 것. 앞으로는 질병퇴치의 역사를 바꾸는 길이 될지 모른다. 인체의 어떤 부위에서 체세포를 채취해 그것으로 새로운 심장 조직을 만들어 죽은 심장 조직을 대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일까. 그것은 기존의 태아 체세표 활용에 따른 도덕적인 문제마저 피할 수 있다.

베르파이 교수의 연구는 어린이 유전병을 치료하기 위해 뼈와 연골조직을 제공하겠다는 한 소아과 의사의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그녀는 어른 뼈에서 추출한 체세포로 조직을 키울 것을 팀원에게 지시했다.

물론 어린이 면역체계와 반응할 수 있는 혈청을 제거하라고 했다. 그런데 배양결과, 뼈와 연골조직 외에 내피조직도 자라있었다. 그녀는 이 일을 계기로 체세포에 적절한 자극을 가하면 다른 종류의 조직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어떻게 그런 자극을 주는 환경을 만들 것인가에 있다. 베르파이 교수는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마치 요리법을 만들듯이 체세포 변형조작법을 개발해냈다. 2000년 여름에는 골수로부터 추출된 체세포로 신경, 폐, 심장세포로 변형시키는 방법도 찾아냈다.

그녀는 26번씩 실험을 거듭하면서 변형조작법의 실효성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녀는 곧 불치병 쥐에게 체세포를 이식해 그 세포가 병든 조직을 대체하고 궁극적으로는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지 실험할 예정이다.


장수의 꿈을 캐는 레오나르드 구아렌트

사람은 누구나 장수하기를 원한다. 그 비법은 없을까. 레오나르드 구아렌트(48) MIT 교수가 실마리를 찾아냈다. 이탈리아 이민 출신의 그는 '왜 적게 먹으면 더 오래 살까'라는 명제에 매달렸다. 적게 먹으면 오래 산다는 것은 쥐 실험에서 확인됐다.

적정량의 60%를 먹은 쥐가 평균수명인 40개월보다 무려 16개월이나 더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고픔의 고통없이 섭취하는 칼로리를 제한해서 장수의 기쁨을 얻는 게 가능할까, 연구하는 중이다.

그는 우선 쥐의 장수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찾아 그 비밀을 풀려고 했다. 그러나 질병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세포를 늙게 만드는 유전자를 꼭 집어내는 것은 극히 어렵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세포와 같으면서 유전자 수가 6,200개에 불과한 이스트균에서 나이 먹는 유전자를 찾아냈다.

그가 이 연구에 뛰어든 것은 1990년대 초. 한 대학원생이 이스트균에서 나이 먹는 유전자를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나 1년동안 헛수고를 한 뒤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장수 연구를 시작했다.

9년만에 구아렌트 교수는 이스트균에서 노후와 관련이 있는 유전자, 즉 SIR 유전자를 찾아냈다.

그는 특히 SIR2 유전자의 역활에 주목했다. SIR2는 세포의 DNA를 나선형으로 둘러싸 죽어가는 유전자를 정지시킨다. 이 기능은 궁극적으로 세포핵에서, 세포가 죽어가는 과정을 더디게 만든다. SIR2가 충분하면 세포가 천천히 죽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SIR2를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 그의 연구팀은 아세틸 그룹이라는 접착성 화학물질을 제거하니까 SIR2가 활성화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 어느날 한 실험에서 신진대사에서 필요한 물질인 NAD를 SIR2와 결합시켰더니 아세틸 그룹이 사라졌다.

왜 적게 먹으면 오래 살까? 구아렌트 교수의 결론은 이렇다. 어떤 생물이 적게 먹으면 음식을 신진대사하는 데 필요한 NAD가 적게 소모돼 SIR2를 활성화시킬 NAD는 많아진다. SIR2가 활성화하면 세포속의 유전자를 정지시켜 세포를 더 오래 살게 만든다.

"이 이론이 다른 생물체에도 작용하는 지 알아보는 게 급선무"라고 구아렌트 교수는 말한다.

다른 생물체에도 적용된다면 배고픔의 고통을 겪지 않고 세포속의 유전자를 정지시켜 노화를 늦추는 SIR2 알약이 나올 수 있다.

이처럼 DNA와 유전자의 활동에 관한 연구는 여러 목적으로 계속될 것이다. 다만 DNA에 관한 기초 정보를 잘 가공하면 그 효용이 새로운 정보를 찾아내는 것에 못지않다.

이러한 점에 착안한 사람이 크리스티안 벅스(46) 박사다. 그는 암퇴치를 위해 전통적 방식보다는 DNA 데이타를 가공하는 방법을 동원한다.

바로 컴퓨터, IT, 생명공학의 결합인 바이오정보공학(bioinformatics)이다. 그는 유전자 정보나 개별 유전자간의 차별성, 그리고 단백질 구조 등을 일반화하고 분류해서 질병퇴치에 이용하려고 한다.


획기적인 전송기술 개발 톰 레이턴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IT(정보기술)의 발달도 필수적이다. 그중에서 정보를 전송하는 획기적 기술을 개발한 사람은 톰 레이턴 MIT교수다. 그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인터넷에 접속했을 때 나타나는 잼(정체) 현상을 수학적인 방식을 동원해 개선한 것이다.

그의 방식을 이용한 바네스앤노블즈(barnesandnoble.com)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상품주문이 폭주했지만 접속에 이상이 없었다. 기존의 인터넷보다 더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는 아카미 서비스를 차용했기 때문. 실제로 이 홈페이지 접속 대기시간이 기존의 4초에서 1.5초로 낮아졌다.

아카미 서비스가 바로 레이턴이 개발한 전송방식이다. 복합 알고리즘 혹은 수학적 과정을 컴퓨터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소프트웨어로 변형한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어려운 수학문제 풀기를 좋아했던 레이턴 박사는 1995년에 웹상의 가장 큰 숙제인 전송속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의 방식은 이렇다.

인터넷의 끝에 수천대 작은 컴퓨터를 설치한다. 그리고 그 컴퓨터에 접속 흐름을 지휘하는 지능을 부여한다.

보통 웹상에서는 정보가 적어도 3개 컴퓨터 네트워크를 거치면서 15~20번의 홉(뛰기)을 하면서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그러나 레이턴 방식은 웹상에서 수많은 다른 지점에 있는 수천개 웹사이트의 콘텐츠를 잡아내 저장한다.

그러면 홉이 거의 없어지고 속도는 빨라진다. 또 레이턴 방식은 길의 흐름을 점검해 가장 빠른 길을 택하든가, 잼을 피해가도록 한다.

레이턴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이 원천기술을 갖고 회사를 세웠다. 회사명은 아카미.

하와이에서 냉정한 지성을 뜻하는 말이다. 이 회사는 35억 달러의 시장을 갖고 있는 콘텐츠 분배 서비스 분야에서 선두주자로 자리를 잡았다. 그는 이제 웹상에서 보다 빠른 화상전송 방식을 개발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장애 예방백신 사무엘 데이비드

장애를 예방하는 방법은 없을까. 척추신경을 다쳐 하체를 쓰지못하는 장애자가 매년 수천명씩 나온다. 장애예방에 앞장서는 신경학자인 사무엘 데이비드(54). 그는 쥐 실험을 통해 다친 척추신경도 다시 자란다는 것을 알아냈다.

각종 사고로 인한 장애자를 수없이 치료해온 그는 1970년대 말부터 신경을 보호하는 덮개인 미엘린이라는 물질의 역할에 착안해 연구를 시작했다. 취리히 대학의 마틴 스왑 박사가 밝혀낸 미엘린의 기능은 두 가지다. 신경세포를 보호하면서 한편으론 새로운 신경 세포의 성장을 막는 기능이다.

태아 때 생겨나는 미엘린은 신경신호가 척추를 거쳐 특정부위에까지 제대로 전달되도록 도와주고, 그 신호가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도록 막아준다. 그래서 무릎을 굽히라는 명령이 발가락으로 가지 않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미엘린 속에서 신경세포의 성장을 막는 몇개의 물질을 발견했다. 그중 하나가 MAG이다. 데이비드는 MAG을 없애면 척추 신경세포가 자랄 것이라고 믿었다. 방식은 왁친접종. 왁친에 의해 형성된 항체는 미엘린(MAG)을 공격하고 신경세포는 자라게 된다.

그는 1999년 소의 미엘린으로 만든 왁친을 실험용 쥐에 주입했다. 곧 항체가 만들어졌고 이후 쥐의 척추에 상처를 냈지만 3주후 쥐들은 발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미엘린 왁친을 맞지 않은 쥐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문제는 있다. 이 방식은 다치기 전에 왁친을 주입해야만 효과가 있다. 일단 척추신경을 다친 사람에게는 도움이 안된다. 그래서 데이비드는 부상 후의 치료법을 개발했는데 효과는 아직 미미하다.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중요하다.


중독은 왜 일어나나, 노라 볼코우

사람은 왜 마약이나 알코올에 중독돼 결국 폐인이 되는가. 이 문제에 매달리고 있는 노라 볼코우 박사는 중독증 뒤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밝혀내는 중이다.

그녀는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후손이다. 망명한 트로츠키의 옛 집에서 살면서 동물에 대한 애정을 키워왔는데 어릴 때부터 인간과 동물간의 다른 행동방식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가 중독증의 실체 분석에 뛰어든 것은 1980년 한 과학잡지의 기사를 읽고나서다.

기사는 살아있는 뇌신경을 이미지화한 사진에 관한 것. "그것은 과학의 픽션처럼 보였다"고 볼코우 박사는 회고했다. 그녀는 1985년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기(PET)를 이용해 코카인에 의해 흥분을 느끼는 뇌의 변화과정을 밝혀냈다. 그것은 마치 뇌 충격을 받은 환자의 뇌와 같았다. 코카인이 뇌에 혈액공급을 방해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다. 코카인도 강력한 마약이었던 것이다.

오랜 연구를 통해 그녀는 뇌의 화학작용이 중독을 촉발하고 그 중독은 다시 뇌의 화학작용을 변화시킴으로써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해독약은 대부분 이 이론에 근거해 개발되고 있다.

그녀는 현재 즐거움이나 흥분과 관련이 있는 뇌 화학물질인 도파민의 정체를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다. 도파민은 아이들이 웃거나 시험에서 A학점을 받았을 때 많이 방출된다.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것이다.

이때 뇌의 사진을 찍어보면 중독된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활용가능한 도파민 수용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수용체는 도파민 신호를 뇌로 보내는데 수용체가 적을수록 도파민 신호가 약하고, 즐거움은 줄어든다.

마약이나 알코올 니코틴 등은 바로 도파민 수치를 높이는 성분을 갖고 있다.

그러나 뇌 화학물질 하나만으로는 중독되지 않는다. 적정 수준의 도파민을 생산할 수 없는 뇌가 또다른 환경과 만나면, 예를 들면 술을 마시면서 담배를 피는 것처럼 중독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도파민 수용체가 적어지면 그 뇌는 중독에 더 취약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상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없게 된다. 볼코우 박사가 도파민의 정체를 밝혀내 도파민의 수용체를 인위적으로 많게 만들 수 있으면 중독증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1/0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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