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性 상납은 최고의 뇌물"

잇단 '몸로비'사건에 형법조항 신설 논란

'금탄(金彈ㆍ돈)이 좋다 해도 육탄(肉彈ㆍ육체)만 못하다.'

중국 법학계와 언론에 싱훼이루(性賄賂ㆍ성회뢰)를 둘러싼 입법 논란이 한창이다. 싱훼이루는 부당이득을 얻거나 특정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영향력이 있는 인물에 미녀를 제공하는 이른바 '성뇌물'을 말한다. 한국에서 얼마전 '린다 김 사건'으로 인해 언론에 등장했던 '몸로비'라는 용어와 비슷한 것이다.

'몸로비 처벌법' 논란을 불러 일으킨 사람은 난징(南京)대 법대 진웨이둥(金衛東) 교수. 그는 지난해 12월6일 장쑤(江蘇)성에서 열린 '2000년 장쑤성 형법학토론회'에서 몸로비 처벌을 위한 형법의 개정을 주장했다.

몸로비가 만연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뇌물방지법으로는 처벌하기 어렵다는게 이유. 여기에 호응해 최고인민검찰원(대검)의 자오덩쥐(趙登擧) 부검찰장이 성뇌물죄를 형법조항에 신설할 필요성을 내비치면서 논란은 본격화했다.


역사 깊은 중국의 몸로비

중국에서 몸로비의 역사적 연원은 깊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를 낳은 춘추시대 오나라와 월나라간의 물리고 물리는 복수전에서 미녀 서시(西施)는 몸로비 도구로 이용된다.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서시를 상납해 부차를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 것이다.

후한 말을 배경으로 한 삼국연의에는 초선(貂蟬)이 등장한다. 양부인 왕충의 요청에 따라 초선은 군권을 쥐고 황실을 능멸하는 동탁과 그의 심복인 맹장 여포를 이간시켰다.

중국에서 '영웅은 미인을 사랑하고, 미인은 영웅을 망친다'(英雄愛美人, 美人誤英雄)는 말이 자연스러운 것은 이런 고사와 무관치 않다.

실제로 당나라와 청나라에서는 몸로비를 금하는 법을 실시한 바 있다. 중국에서 현대판 몸로비 처벌법이 핫이슈가 된 것은 만연한 부패 및 반부패 투쟁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특히 부패사건이 상당수 몸로비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언론에 보도된 몸로비 예를 보자.

△중국 남부의 한 성에서는 최고위급 간부가 한 여성의 거듭된 성상납을 받고 이 여성을 그 성의 홍콩 주재 사무실 책임자로 임명했다. 더욱이 이 여성의 동생은 누나와 간부의 정사장면을 비디오로 찍은 다음 이 간부를 협박해 수차례에 걸친 밀수사건을 눈감아 주도록 했다.

△후베이(湖北)성 한 지역에서는 매춘 전력이 있는 한 여성이 해당 지역 고위 당ㆍ정간부들과 차례로 잠자리를 같이 한 후 벼락출세를 했다. 관련분야 경험이 전혀 없는 이 여성이 졸지에 지구당 선전부 부부장 겸 신문출판국 부국장으로 임명된 것.

△광둥(廣東)성 국토청 부청장은 정을 통해 오던 젊은 여성을 공안국 부국장급인 정찰원 담당자가 되도록 손을 써주었다. 이 여성은 이전까지 한번도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1999년 경제특구인 광저우(廣州), 선전, 주하이(珠海)시가 색출해 발표한 102건의 공무원 부패, 수뢰사건은 모두 몸로비와 연관돼 있었다. 주기적으로 상대측이 보내온 여성과 동침하거나 아예 첩으로 삼는 대신 부당편의를 봐주는 형태였다.

△장쑤성의 한 기업인은 미녀들을 집단으로 고용해 고위관리들에게 조직적으로 성상납을 했다. 성상납을 받은 관리는 부청장급 1명, 현(縣) 처장급 3명, 과장급 20여명이었다. 이 기업인은 성상납을 통해 4년만에 12억위엔(1,680억원)이 넘는 불법대출을 받아 챙겼다.

△장시(江西)성의 한 사영기업 사장은 해당지역 경제담당 고위관리가 여자를 밝힌다는 사실을 알고 관광지인 주하이로 데려가 기생관광을 주선했다. 나중에는 미녀를 고용해 이 관리에게 성적 시중을 들게 함으로써 대규모 부당이득을 얻어냈다.


기업의 로비수단으로 조직적 활용

이들 예에서 보듯이 중국에서 몸로비는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성상납을 하는 여성 본인이 특혜를 얻는 경우도 있지만 기업인이 로비의 수단으로 여성을 조직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중국 검찰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몸로비와 이로 인한 부패사건은 크게 늘고 있다. 최근 적발된 각 성 부장급의 고위관리 비리는 상당수가 몸로비와 연관돼 있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는 '권색교역'(權色交易ㆍ권력과 미녀를 교환한다), '육체자원'(肉體資源)이라는 유행어까지 회자되고 있다. '승용차가 좋을수록(관직이 높을수록), 옆자리에 탄 여자도 미녀'라는 세간의 비아냥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상업적 성공이나 출세를 위한 성상납이 만연하면서 고위관리들이 미녀를 숨겨두고 있는 것은 일종의 상류사회 신분증이 됐다는 개탄도 나온다.

고위관리들이 성상납을 비롯한 각종 뇌물에 쉽게 무너지는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59세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의 관리는 60세가 되면 퇴직하거나, 공무원 사회에서의 역할이 크게 변하게 된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이들 공무원은 지위불안에 따른 공허감과 신체적 공허감이 찾아들면서 젊은 여성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된다.

아울러 한몫을 챙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에 집착하면서 비리에 빠지게 된다.

몸로비 처벌법 긍정론자들은 성상납이 부당이익을 노리고 이뤄진다는 점에서 뇌물과 똑같기 때문에 형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에서는 몸로비가 공무원 사회의 풍기와 사회기강에 뇌물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이들은 장차 형법을 개정해 몸로비 처벌조항을 신설하거나 최고인민법원이 법적 해석을 내려 처벌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중국의 뇌물 관련법에는 몸로비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없다. 현행관련법은 형법과 반부정당경쟁법(불공정거래 방지법). 형법은 '부당이득을 취하기 위해 국가공무원에 재물을 제공하는 것은 뇌물죄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재물에는 각종 명분의 수수료, 리베이트, 수속비 등이 포함되지만 성상납은 명시되지 않았다. 이에 비해 반부정당경쟁법은 '경영자가 재물이나 기타 수단을 이용해 뇌물을 주는 것은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적 해석을 통한 처벌 주당은 '기타 수단'을 성상납에도 적용하자는 것이다.


"인권침해다" 입법반대 의견도

반대론도 만만찮다. 반대론의 주된 논거는 몸로비가 사생활 문제와 구분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도덕적 측면이 강한 몸로비를 형법으로 과도하게 규제할 경우 사생활 및 인권침해의 소지가 크다는 이야기다. 반론은 법리와 실효성 차원에서도 제기된다.

뇌물죄는 재산이나 재산성 이익을 제공해야 성립하는데 몸로비는 재산이 아닌 육체가 제공되기 때문에 처벌하기 어렵다는 것.

양형 문제도 있다. 공여된 액수가 크면 형량도 높은 게 형법인데 육체에 어떻게 액수를 매기느냐는 이야기다. 성관계를 맺은 당사자 및 여성을 고용한 제3자 사이에 범죄주체를 확정하기가 곤란하고, 처벌을 위한 증거확보도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입법 반대론자들은 형법보다는 당기율법 등 기존 규정을 이용해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중국에서 몸로비와 돈로비가 만연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구조적인 데 있다. 개혁ㆍ개방으로 시장경제가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각종 허가권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큰 정부는 필연적으로 관료주의와 부패를 부르게 된다는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몸로비 처벌법 신설을 둘러싼 논란은 중국이 시장경제와 인권향상을 향한 노정에서 겪고 있는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1/09 20:51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