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게임 중독증] 통제만이 능사 아니다

엄연한 놀이문화… 균형감각 키워주는 게 중요

PC게임은 청소년 문화의 한 부분으로 급속하고 단단하게 자리잡았다. 10대 자녀를 둔 부모가 싫든 좋든 PC게임은 이미 돌이킬수 없는 대세가 됐다. PC게임의 긍정적·부정적 기능에 대한 논란도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사이에 PC게임의 급속한 확산은 기성세대에 당혹스럽게 와닿고 있다. 게임중독에 대한 우려도 그만큼 높아 지고 있다. 자녀의 게임 몰입을 우려하는 부모의 걱정은 다양하다.

서울 개원중 김정욱 교사(과학담당)의 학부모 상담사례를 보자. 육체 활동과 운동부족에 따른 건강 문제, 소설 등 다양한 문화 장르와의 지적 균형 문제, 부모와의 대화시간 부족, PC게임의 폭력성 등이 우려된다.

참교육학부모회 황경숙 상담실장이 말하는 부모들의 걱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가장 큰 걱정이유는 역시 학교공부를 등한히 한다는 것이다. 김 교사는 자녀에 대한 학부모의 기대가 게임문화를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운동장에서 게임으로 바뀐 놀이문화

김정욱 교사에 의하면 최근 3~4년새 학생들이 PC방에 출입하는 것은 일종의 유행이 됐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루 1-2시간 PC게임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놀이문화의 추세가 운동에서 게임으로 바뀌고 있다. 게임은 특히 남학생이 즐기는 경향이 강하다.

여학생은 PC방 출입을 별로 않을 뿐더러 집에서도 게임보다는 채팅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김교사는 "게임으로 인해 학생들이 학업에 지장을 받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PC게임에 특히 몰입하는 학생은 대체로 성적이 좋지 않다.

하지만 김 교사는 이것이 PC게임을 하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놀이문화의 종류가 바뀌었다 뿐이지 어떤 놀이라도 공부를 제쳐놓고 하면 성적이 좋을 리는 없다"는 것이다. 운동을 과도하게 하는 학생이 많지 않듯이 PC게임도 지나치게 즐기는 학생은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김교사는 일반적인 경우 부모들의 걱정이 지나친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PC게임광으로 분류되는 학생들이 이전보다 더 폭력적으로 변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그는 "PC게임의 폭력성이 영화나 TV의 폭력성보다 심한 것은 아니다"고 평가한다.

오히려 창조성과 경쟁본능을 자극하는 장점도 있다고 본다. 그는 PC게임을 새로 10대의 놀이문화로 보고 자리매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는 어떤 놀이든 지나치지 않고 다른 것과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 교사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PC게임 몰입을 통제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PC게임이 이뤄지는 교외에서 적절히 학생을 유도해야 하는데 결국 가장 큰 책임은 부모에게 돌아온다. 김 교사는 "부모가 자녀와 평등한 입장에서 게임시간을 타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방적으로 말리면 자녀들이 PC방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적절한 시간약속을 통해 집에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PC게임의 급속한 확산에 대해 한국 사회의 문화적 획일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게임을 모르면 급우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는 현실은 문화적 다양성 부재의 한 표현이라는 이야기다. '사이버 신인류'로 불린 컴퓨터 칼럼니스트 곽동수씨의 설명은 좀 다르다.

PC게임이 10대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부작용과 중독증을 낳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행의 배경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효과적 놀이수단일 수도"

미국에서도 10대의 게임중독증은 적지 않은 문제다. 해결책으로 미국에서는 오프라인 활동을 제시한다. 'PC게임을 제쳐두고 아빠와 뒷마당에서 농구를 해보라'. '배낭을 꾸려 가족과 등산·여행을 해보라', '워크맨을 끼고 시원스런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보라'는 등의 권고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을 보자. 밤늦게 과외를 마치고 돌아와 할 수 있는 여가활동이 뭐가 있는가. 곽동수씨는 "비용 대 효율의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10대에게 PC게임만큼 효과적인 놀이 수단도 없다"고 말한다.

일견 획일적으로 보이는 한국 10대의 PC게임 문화는 PC게임의 독특한 매력과 함께 취약한 놀이문화 기반이 맞물려 발생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PC게임의 유행은 과거 아이들을 안방에 묶어둔 TV의 출현을 떠올리게 한다. PC게임 관련 벤처사 '게임인큐' 유채호 사장의 이야기.

"게임을 하는 아이들과 말리는 부모가 매일 게임을 한다. 과거 공부않고 TV만 보는 자녀와 부모관계가 어땠나. 승자는 항상 자녀들이었다. 어차피 부모가 질 바에야 좋은 게임을 선별해주고 시간을 통제하는 편이 낫다.

무조건 PC게임을 막으면 아이가 장차 영상문화에 뒤질 수도 있다." PC게임의 중독성 우려에도 불구하고 10대는 이미 게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PC와 고속통신망, 각종 게임의 보급이 급속한 만큼 부모세대가 느끼는 불안감과 우려가 큰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을 인정한다면 이번엔 부모가 변할 차례다. 말리는 게 능사는 아니고, 말려서 될 일도 아니다. 아이들에게 균형과 중용을 가르치고, 이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를 만들 책임은 걱정하는 당사자인 부모에게 있다.


컴퓨터 전문가되는 첩경 아니다

PC게임을 잘하는 어린이는 장차 컴퓨터 전문가가 될까. 상당수의 부모들은 양자 사이에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컴퓨터 칼럼니스트 곽동수씨에 따르면 직접적 연관관계는 없다. 게임이 PC를 플렛폼으로 하지만 게임의 메커니즘과 PC의 메커니즘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PC를 잘 안다고 해서 게임을 잘하는 것이 아니듯 그 역도 성립하다는 이야기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부팅부터 시작해 PC의 각종 조작법을 익혀야 하지만 게임이 필요로 하는 PC조작 수준은 단순하다.

물론 이를 통해 어릴 때부터 PC와 접하면서 친숙해지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성인의 경우도 마찬가지. PC방에서 만난 한 30대는 "게임을 통해 컴퓨터에 대한 자신감을 키웠다"며 게임을 나쁘게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게임에 맛들이기 전에는 컴맹 수준이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문제는 대부분의 10대 게이머들이 게임 자체의 매력에 빠져 PC의 다른 면은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종 조사에 따르면 게임을 하다가 다른 인터넷 사이트로 전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PC조작법을 심화하고 다양한 인터넷 사이트를 서핑하는 것은 게임에 대한 열정보다는 또다른 지적 관심이나 필요에 달려있다. PC게임 벤처사 '게임인큐'의 유재호 사장도 "PC에 친숙해지는 가장 초보적 방법이 게임이긴 하지만 PC게임이 컴퓨터 전문가가 되는 첩경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게임광이 경험을 통해 게임 프로그래머가 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 유사장의 이야기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1/10 14:55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