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향계] 돌파구 안 보이는 냉동정국

정국혼란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연말년시의 의원 이적사태, 새해 벽두의 여야 영수회담 결렬, 안기부 선거자금 사건을 둘러싼 격돌 등 정국을 얼어붙게 하는 사건이 꼬리를 물면서 여야 긴장은 높아만 가고 있다.

그러나 혼란을 수습하려는 움직임은 전혀 없고 상대방에 대한 거친 공격만 난무, 정국 경색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짐작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한나라당 대여전면전 선언, 가파른 대치

이번 주간에도 안기부 선거자금 사건을 둘러싸고 여야 간에 가파른 대치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검찰이 사무처 당직자들을 강제연행한 것을 야당파괴로 규정, 대여 전면전을 선언했다.

검찰은 "안기부 선거자금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한나라당 강삼재 의원이 검찰출두를 거부해 주변인사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사전통보도 없이 야당 당직자들을 강제연행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이회창 총재는 16일 신년회견을 통해 '야당말살을 위한 표적수사'를 중단하지 않을 경우 정권퇴진 운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한나라당은 전국 시도별로 규탄대회를 계속하는 한편 소속의원의 국회 농성도 계획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이번 사건을 국가예산을 집권당 선거자금으로 불법전용한 국기문란행위로 규정, 한나라당과 강삼재 의원의 수사협조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안기부 선거자금 사건 공방에 있어 중요한 포인트는 문제가 된 안기부 자금의 출처다. 검찰은 안기부가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4ㆍ11 총선 때 신한국당에 지원한 1,192억원 전액이 1995년 안기부 예산에서 나왔다고 못박고 있다.

검찰은 그 근거로 이 돈이 김기섭 당시 안기부 운영차장과 안기부 지출관, 재경원 재무관이 서명한 국고수표로 지출됐다는 점을 들고있다. 또 허위로 작성한 지출 결의서도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한 1995년도 안기부 예산내역에 따르면 문제의 돈이 안기부 예산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검찰 주장이 맞다면 안기부의 운영이 마비돼 내부에서 큰 혼란이 일어났을 것이며 강삼재 의원의 계좌에도 국고수표가 단 한장도 들어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안기부가 지원한 자금이 국가예산이 아니라 기업 등에서 조성한 정치자금이라면 이 사건을 둘러싼 공방양상은 크게 달라지게 된다.

한나라당은 적어도 국가예산을 선거자금으로 갖다 썼다는 비난을 상당부분 희석시킬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희석하기 위해 딴 소리를 하고 있다"면서 "이 사건의 본질은 안보예산 도둑질"이라고 못박았다.

자금의 성격을 둘러싸고 한나라당과 김영삼 전 대통령 사이에도 미묘한 갈등이 일고있다.

그 자금이 안기부 예산이 아니라면 결국 당시 청와대측이 조성한 정치자금이거나 1992년 대선자금의 잔금 또는 당선축하금 등일 개연성이 있으며 이 경우 김 전 대통령측에 직접 화살이 돌아간다. 한나라당측이 이런 개연성을 흘리자 김 전 대통령측은 "한나라당이 적전분열을 일으키고 있다"며 발끈했다.


강삼재의원 체포동의안 표결처리에 부담

강삼재 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는 당분간은 힘들 것 같다. 국회 여건이 그렇게 돼 있다. 우선 이만섭 국회의장이 아시아ㆍ태평양 의회 포럼(APPF) 참석을 위해 출국, 22일 귀국할 예정이다.

이 의장은 출국하면서 한나라당 소속인 홍사덕 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긴 상태여서 체포동의안의 본회의 기습상정 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여야의원 다수가 20일의 부시 미 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기 때문에 여권으로서는 체포동의안의 가결 정족수 확보가 어렵다. 이 때문에 강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는 2월로 넘어갈 수 밖에 없으나 민주당과 자민련이 한나라당의 강력한 저지선을 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상황이 전개된다 해도 여권으로서는 가결을 자신할 수 없다. 동의안을 가결시키기 위해서는 137석이 필요한데 민주당(115석)과 자민련(20석) 의석은 135석으로 2석이 부족하다.

키는 한국신당(1석) 민국당(2석) 무소속(2석)의 5석인데 이들을 여권 편으로 만들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여권 일각에서는 1999년 세풍사건 때 서상목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사태를 떠올리며 내심 강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를 부담스러워하는 인사도 있다.

안기부 선거자금을 둘러싼 공방 속에 한때 여야 대결의 핵심 이슈였던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 국정조사와 공적자금 국정조사는 여론의 관심을 끌지못한 채 넘어가고 있다.

한빛은행 불법 대출 사건 국정조사는 15일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과 신용보증기금 전 영동지점장 이운영씨가 증인으로 출석, 대질을 벌였으나 실체 규명에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이계성 정치부 차장

입력시간 2001/01/1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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