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막말 추태 '갈수록 가관'

행주에 걸레까지…
갈데까지 간 막가파식 욕 공방

새해 벽두부터 정국이 막가파식 막말 공방전으로 치닫고 있다. 자민련을 원내교섭단체로 만들기 위한 민주당의 '의원 임대'와 여야 영수회담 결렬, 안기부(현 국정원) 예산의 불법 총선자금 유용 사건이 꼬리를 물고 터져나오면서 정치판은 죽기 아니면 살기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정치와 정치인, 정당의 품위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오죽하면 '파렴치범과 짐승이 총집합한 걸레 집단=정치판'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물론 당사자인 정치인들이 나름대로 할 말도 많고 또 대단히 섭섭해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정치인들은 화를 낼 자격이 없을 것 같다.


정치권은 동물농장에 범죄집단?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1월7일 논평에서 민주당의 '의원 꿔주기'를 놓고 동물학자로 변신했다. "DJP공조는 수나귀와 암말 사이에서 태어난 생식능력 없는 노새처럼 정권재창출에 실패할 게 자명하다." 같은 날 한나라당 하순봉 의원은 정치자금 문제를 놓고 민주당 박상천 최고위원과 격돌한 자리에서 언어의 묘미를 보여주었다.

"우리(한나라당)가 행주라면 그쪽(민주당)은 걸레다." 다수 시청자가 보고 있는 SBS TV '시사포럼'의 공개석상이었다.

민주당측도 지지 않았다. 김현미 부대변인은 7일 한나라당 강삼재 부총재가 "1996년 신한국당에 유입된 총선자금이 안기부 예산인줄 몰랐다"고 주장하자 수사관을 자임했다. "장물을 넘겨준 사람도, 분배받았다는 사람도 줄을 섰는데 장물아비 혼자 부인하고 있다."

정말 이쯤 되면 정치권도 화낼 면목이 없을 것이다. 수나귀, 암말, 노새, 걸레, 행주, 장물아비가 다 나왔으니 난장판도 이만저만한 난장판이 아니다. 동물농장에 가정용품, 강ㆍ절도 커넥션 등 가능한 레퍼토리가 모두 동원된 '종합 난장판'이다.

여야의 공방은 공식, 비공식 채널이 모두 동원돼 총체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공식 채널의 대표적인 수단은 정당 대변인의 논평. 대변인 논평은 정당의 입장을 밝히고 여론의 지지를 구하는 행위다. 하지만 여기서도 막말과 험구는 걸러지지 않고 있다.

대변인 논평의 강도는 안기부 예산전용으로 수세에 몰린 한나라당이 한수 위다. 한나라당은 권철현 대변인과 장광근 수석부대변인 명의로 하루에도 수차례 논평을 쏟아내며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다.


걸러지지 않는 막말과 험구

한나라당은 안기부 예산 전용이 표면화한 배경을 집중 부각시키는 전술을 택하고 있다. 장광근 부대변인은 안기부 자금 유입 수사를 두고 "청와대 기획, 민주당 연출, 검찰 주연의 정치쇼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민주당 장기집권을 위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흠집내기가 수사의 본질"이란 이야기다. 장 부대변인은 이어 14일 '민주당, 전당직자의 정치공작원화?'란 제목의 논평을 통해 민주당측의 일거수 일투족을 붙들고 늘어졌다.

박상규 민주당 사무총장이 "(안기부 자금을)받은 의원의 문제가 아니라 강삼재 의원이 문제"라고 말한 데 대한 역공이다.

민주당의 공격은 안기부 자금 수사의 약효를 극대화하는 데 맞춰져있다. 김영환 대변인은 "안기부 예산의 선거자금 지원은 역대 선거부정 사건 중 금자탑"이라며 한나라당을 비난했다. 김현미 부대변인은 "도둑의 세계도 대마불사(大馬不死)인가"라고 말해 한나라당을 아예 도둑으로 몰아부쳤다.

김 부대변인은 "좀도둑은 감옥에 가는 반면, 국가예산 1,000억원 이상을 빼다 쓴 정치인은 발 뻗고 자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뒤이어 김영환 대변인은 "부반장과 줄반장이 교무실에서 벌서고 있는데 반장만 나 몰라라 하는 희대의 정치 코미디"라며 이회창 총재를 직접 겨냥했다. 한나라당을 학급에, 당시 신한국당 선대위원장이었던 이 총재를 반장에 비유해 공격한 것이다.

DJP 연대를 통해 여권에 가담한 자민련도 설전에 가세했다. 유운영 자민련 부대변인은 안기부 예산전용 수사에 반발, 한나라당이 열고 있는 지방순회 규탄대회를 맹렬히 비난했다.

그간 한나라당으로부터 받은 수모가 더해진 때문인지 한나라당의 존재가치조차 부정했다. "국가를 망친 정당이 국민에게 석고대죄하지 못할 망정 망국병인 지역감정을 촉발시키려 한다. 한나라당은 이제 더이상 이 나라에 존재해선 안된다."


비꼬고, 뭉개고, 몰아부치고.

고위 당직자나 의원들이 내놓는 비공식 논평은 강도가 더 높다. 민주당의 추미애 의원은 안기부 예산 전용에 대해 "안기부와 신한국당은 부패 정치인을 출산시키는 인큐베이터였다"고 비꼬았다.

한나라당 김기배 사무총장은 민주당 장재식 의원의 자민련 입당을 놓고 "후안무치한 매관매직 행위"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장 의원이 장관 자리를 사전에 약속받고 당적을 바꿨다는 비난이다.

여야 공방전이 가열된 것은 영수회담 결렬로 여야 협력의 여지가 사라진 탓도 있지만, 근본원인은 차기대권을 겨냥한 힘겨루기에 있다.

한나라당은 원내다수란 이점을 십분 활용해 김대중 정부의 레임덕을 조기화, 최대화하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가능한 집권당을 약체화시킨 가운데 대선정국을 맞겠다는 심산이다. 한나라당이 의원 꿔주기를 통한 DJP 공조를 거세게 공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과거의 신한국당과 연결된 한나라당의 태생적 약점을 공격하는 공격적 방어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도덕성을 공략함으로써 야당의 예봉을 꺾고 DJP 연대에 따른 비판을 희석시키자는 것이다.

여야의 공방전은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포지티브(positive) 전법이 아니라 상대방의 흠집을 공격하는 전형적인 네거티브(negative)의 성격을 띠고 있다. 상대방 말꼬리 잡기와 원색적 언어로 일관된 공방전은 도대체 청취대상이 누구인지 헷갈리게 하고 있다.

논평과 정치적 담론의 주요 청취자인 국민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저질담론은 정치권 전체를 희화화해 국민의 정치염증을 고조시키고 있다.


저질공방에 국민들은 정치염증

참여연대 양세진 부장은 "국민과 유권자를 의식하지 않는 안하무인격 정치공방에 불쾌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여야간 저질 공방에 대해 "대권을 염두에 둔 정략의 소산"이라고 규정하며 "브레이크를 걸 세력은 유권자 뿐"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이 국민을 계속 무시한다면 다가올 지방선거와 대선, 총선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럴까. 정치권의 행태에 분노하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지역주의, 연고주의, 돈에 굴복해온 것이 선거패턴 아니었던가. '정치수준은 국민의식 수준의 반영'이라는 명제는 여야간 저급공방을 설명하는데 유효할 지 모른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1/16 17:59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