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노회한 줄타기로 건재 과시

3金1李 대치정국, 당내진통 딛고 화려한 부활

'돌아온 JP.' 한동안 잊혀졌던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가 신년정국 뉴스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죽하면 불과 8개월 전 그를 "서쪽하늘의 지는 해"로 몰아세웠던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조차 "해는 다시 떠오른다"며 그를 '또다시 떠오르는 해'라며 추켜세웠을까. JP는 10일 이 위원의 말을 받아넘기듯 이렇게 말했다.

"칠십 넘은 이가 무슨 떠오르는 해란 말인가. 못다버린 과욕이 있다면 한번쯤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고 떠났으면 하는 것이지."

4ㆍ13총선의 참패로 55석의 의석이 17석으로 준 뒤 교섭단체도 못이룬 자민련과 함께 사실상 정치적 뇌사상태에 빠졌던 JP였다.

그런 그가 '3김(金)1이(李)'의 대치정국의 틈새를 비집고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강창희 의원을 제명하는 등 당내 진통이 있었지만 결국은 당을 확실한 친위체제로 재편하고 '3김1이'의 정국에서 확실한 한 주체로 자리잡았다.


"교섭단체 구성은 당연한 결과"

자민련이 총재인 이한동 총리와 김종호 총재대행체제 아래 발버둥쳐도 못이룬 '교섭단체와 캐스팅 보트'를 한순간에 달성한 JP다. 여론의 아우성은 애초부터 그에게 관심 밖이었다.

DJ는 의원이적 사태에 대해 "국민 앞에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정작 민주당 4인을 빌려 교섭단체를 이룬 JP는 '죄송'이란 말조차 생략했다. 그는 오히려 자신만만해 하며 측근에게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에서 의원들이 온 것은 지난 총선 때 과욕을 부려 충청도 등에서 우리 의석을 부당하게 차지한 민주당이 일부를 되돌려준 것일 뿐이다."

뿐만 아니다. JP는 대치정국의 와중에 이합집산의 원심력으로 작용하며 DJ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오가는 고도의 줄타기 정치를 보여주고 있다. DJ는 그를 붙잡기 위해 두번씩이나 민주당 의원을 '양자'로 보내는 의원꿔주기를 서슴지 않았다.

자민련 교섭단체를 한사코 반대하던 이회창 총재도 JP의 생일이던 지난 7일 주진우 비서실장을 신당동 JP 자택으로 보내 큰 절을 하게 했다. 하루 전 대통령인 DJ의 생일인 6일에는 청와대로 정태윤 비서실 차장을 보낸 이 총재였다.

이 와중에 JP는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예고하는 많은 말을 남겼다. 신년 휘호라며 지난해 말 쓴 '조반역리'(造反逆理ㆍ정해진 이치를 거스르는 것은 잘못)는 대표적 예. 그는 새해 들어서야 "강창희 의원의 반발을 미리 예상해 쓴 글"이라며 교섭단체 등록서류 날인을 거부한 강 의원의 저항을 '조반'으로 몰아붙이며 강 의원을 주저없이 제명했다.

"가만있는 뱀은 물지 않는다. 하지만 독사가 아닌 어떤 뱀도 자기를 보호할 독은 갖고 있다"는 말로는 이회창 총재를 섬뜩하게 했다. 지난 5일 신년 첫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그는 간담회의 대부분을 이 총재에 대한 비난에 쏟았다.

"자기보다 내가 더 정치 오래 했어. 더 어려운 고비를 넘겼고 별별 소리 다 들으면서도 참고 여기까지 왔어.자기가 뭘 안다고 그래. 벌써 뭐 다 된 것처럼 세상을 어지럽혀. 한번 해봐.깔아뭉개지나."

그러나 불과 이틀 뒤 그는 생일축하 난을 들고 자택을 찾은 한나라당 주진우 총재비서실장에게 "이 총재는 사리 깊은 분으로 알고 있다. 때가 되면 만나자"고 손을 내밀었다.

1년 만에 DJP공조를 복원,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를 고립시키고 한편으로는 이 총재를 향해 슬며시 손을 내미는 76세의 JP. 그의 복잡한 정치적 행보 이면에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고 싶다"던 '남은 욕심'이 숨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 그는 몇차례 언급에서 향후 구상의 조각들을 조금씩 드러냈다. "현정권은 우리(DJP)가 함께 출범시킨 만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책임이 있다", "DJ임기 중 틀림없이 공조한다", "차기 대선에서의 공조는 DJP간에 얘기하지 않았다" 등등.


JP의 남은 꿈은 킹메이커

그를 잘 아는 한 의원은 "JP는 거센 야당과 경제난 등 국정난맥상으로 위기에 몰린 DJ를 도우면서 총선참패 이후 실추한 정치력을 회복, 차기 대선에서는 승자를 결정짓는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에서 들어온 4명을 빼면 자신을 포함해 불과 16석에 불과한 취약한 원내기반, 76세의 '구 정치인'에 대한 대중의 식상함, 김용환ㆍ강창희 의원 등의 발언권이 커지면서 더욱 흔들리는 충청권의 지지기반 등 안팎의 어려움을 JP 자신의 정치력으로 이겨내겠다는 그림이다.

그렇다면 그는 평생 붙어다닌 '2인자'라는 벽을 넘을 생각은 없을까. 일부 추종자들은 "JP라고 차기 대선에 나오지 말란 법이 있는가. 나이가 무슨 문제인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JP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를 잘 아는 이는 한결같이 "JP의 남은 꿈은 킹 메이커"라고 입을 모은다. 1997년 대선에서 DJ의 손을 들어 공동정부를 출범시킨 그가 2002년 대선에서 또 한번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측근은 "2002년 대선에서 누군가를 지지한다면 지난번처럼 내각제 개헌을 약속하고도 유야무야되는 상황은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누구를 '킹'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여권은 신DJP공조 체제 출범을 계기로 내심 차기 대선까지 공조를 이어갔으면 하는 생각이 역력하다. 하지만 JP는 "8일 청와대 회동에서 차기 대선에서의 공조 여부는 전혀 얘기되지 않았다"고 못박았다. DJ도 이를 시인했다.

이와 관련, 자민련의 한 고위관계자는 "2002년 대선까지는 아직 2년 가까이 남았다. 서둘러 우리가 특정정파를 파트너로 택할 이유가 없다. JP는 자신과 가장 뜻이 통하는 후보와 제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DJP 공조복원은 나라가 어렵다는 JP의 상황판단이 컸지만 자민련과 JP를 고립화하려는 이회창 총재를 견제하는 정치적 의미도 무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동국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1/01/16 18:05


이동국 정치부 east@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