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델레스 공항의 한국 어린이

워싱턴 DC의 덜레스 국제공항에는 세계 각국의 비행기가 다 내린다. 일본, 유럽을 비롯, 중동 및 중남미의 조그만 나라들로부터 온 비행기에서 온갖 인종이 다 쏟아져나온다. 대한항공은 물론 수많은 한국인을 쏟아놓는다.

최근 공항에 나가보면 색다른 '미국 붐'을 엿볼 수 있다. 열살이나 채 넘었을까 하는 어린이 혼자 커다란 가방 하나를 달랑 들고서 입국하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띈다. 예전에는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이 아이들은 마중나온 친지들과 반가운 웃음을 나누며 공항을 떠난다. 얼마 안 있어 시작될 미국 학교의 생활에 희망을 가지고서 말이다.

미국 중심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미국 붐이 가히 열광적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영어 공부에 목숨을 걸고 있으며,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영어를 더 가르치려는 우리 부모의 열성은 조기유학 붐을 일으키고 있다. 정식 유학은 아니더라도 방학을 틈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도 주변에서 많이 보인다.

또한 부모가 공무원이나 회사의 주재원으로 미국에 파견되었다가 귀국할 때는 아이만 남겨놓고 돌아가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모두가 다 자기 자식들은 영어를 조금이라도 더 익혀 부모가 당했던 설움을 겪게하지 않으려고 하는 바램에서다.

어린 나이에 외국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바람직할 수도 있다. 글로벌화한 인터넷시대에 세계 각국의 다른 또래의 어린이들은 어떻게 놀며 생각하고 또 살아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앞으로의 세대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큰 자산이 될 것이다.

특히 좁은 국토에서 한정된 자원만을 가지고 다투는 식의 선점식 교육에 염증난 학생에게 새로운 바람을 쐬게 하여줄 필요가 있다. 더이상 계층간의 위화감 조성이라는 등 구시대적 이유로 무조건 조기유학을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부자가 가난한 자보다는 사회적으로 유리한 고지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전제다. 그래야 훌륭한 재원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내 교육기관들이 더 훌륭한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하여 노력할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 교육시장에도 국제 경쟁을 도입함으로써 교육의 질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열살 전후의 자녀를 미국에 공부시키려 보내는 부모와 그 자녀에게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먼저 미국에서의 공부가 쉬워보여서 미국에 온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그것은 국내에서 실패한 사람의 도피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국내 교육제도의 국제경쟁 도입(?)이라는 조기유학의 취지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그것은 잘못된 기대이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 학교교육의 양과 질은 적어도 필자가 경험한 바에 비추어보면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다루는 것보다 훨씬 폭이 넓고 깊다. 예를 들어 금년 달력의 2월과 3월을 그려놓고 2월3일과 3월3일의 요일이 같은 이유를 설명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실제로 "2월의 모든 날이 3월의 같은 날과 모두 요일이 같은데 왜 그런지에 대하여 말해보라"고 하는 것이 3학년 아이의 수학과제다. 초등교육에서는 단순한 단답형이나 사지선다식 문제에 익숙해 있었던 필자로서는 이런 문제를 풀어나가는 아이에게 외경어린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한국에서 유학온 어린 학생들은 언어의 장벽 또한 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형태는 다르지만 미국 학교에도 엄청난 경쟁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처럼 경쟁의 지향점이 단세포적이지는 않지만 오히려 이렇게 다방면에서 뛰어날 것을 요구하는 미국 학교가 학업에서만 1등을 요구하는데서 자라온 우리 학생에게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보다 많은 학생이 보다 젊을 때 외국을 배우기 위해 미국에 와서 공부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국내 교육제도의 중압감을 벗어나 좀더 쉽게 공부하기 위하여 미국으로 오는 것이라면 잘못된 생각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학생의 공부가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1/01/1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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