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시대] 지하철 위에 떠 있는 서울

시민들의 발에서
문화ㆍ생활 공간으로

상서로운 여름비가 내리던 1974년 8월15일 오전 10시30분경 서울 청량리 지하철 역사. 오전 11시 정각에 열릴 역사적인 서울 지하철 개통식에 참석한 정부 요인들과 외교 사절들은 갑자기 날아든 비보에 아연 실색했다.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거행되고 있던 제29회 광복절 경축식에서 문세광이 쏜 총탄을 육영수 여사가 머리에 맞고 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생사가 불투명하다는 전갈이 날아든 것이다.

당초 개통식을 주관하려던 박정희 대통령은 긴급 수술을 받는 육 여사에게로 달려가는 바람에 불참했고, 호기심과 들뜬 마음으로 '전철 시대' 개막을 고대했던 시민들은 불안감으로 지하철의 첫 출범을 지켜봐야 했다.

이날은 경인(京仁) 경수(京水) 경원(京元) 전철도 동시 개통돼 총 108.14km에 달하는 서울 수도권의 전철화가 이룩되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우리의 지하철은 우울한 분위기에서 첫 발을 내디뎌야 했다. 당시의 공식 명칭은 서울지하철 종로선(鍾路線). 지하로 개통된 노선은 서울역에서 청량리역까지 단 9개의 역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육 여사 총격 사망이라는 비보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서울역, 종각역, 청량리역 등에선 전철을 타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섰을 정도로 지하철은 큰 관심을 끌었다.


기본요금 30원에서 600원으로

'신기한 땅속 기차'로 출발한 국내 지하철이 27년이 흐른 지금은 시민의 발이자 문화ㆍ생활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만큼 지하철은 그간 비약적인 양적ㆍ질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1974년 출범 당시 단 한 개 노선에 전동차수 60량, 9개 역에 불과했던 것이 지금은 8개 노선에 전동차수 3,508량(400 편성), 263개 역으로 늘었다.

개통 당시 30원이던 기본 요금도 20배 비싼 600원으로 인상됐다. 1974년 개통 당시 하루 평균 약 22만명, 연간 약 8,000만명에 그쳤던 수송 인원도 지금은 하루 557만명, 연간 20억명으로 25배 이상 증가했다.

서울시 인구 4명중 1명이 매일 지하철을 왕복으로 이용하고 있는 꼴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다른 대중교통 수단과의 수송 분담율은 지난해 35.3%를 차지해 1997년부터 줄곧 버스(28.3%) 택시(8.8%) 승용차(19.1%)를 제치고 1위를 고수했다.

더구나 지난해 12월15일 6호선 완전 개통을 끝으로 수도권 8개 노선 전철망이 완료됨에 따라 2002년 이후 지하철 수송 분담율은 40% 수준에 달할 전망이다.

지하철이 이처럼 빠르게 서민의 발로 자리잡게 된 것은 무엇보다 '저렴하면서도 빠른 운송 수단'으로 인식되었기 때문. 다른 교통 수단의 효율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 것도 한 이유다.

지하철 1호선 개통되던 1974년 17만대에 불과했던 국내 자동차 보유 대수가 지금은 65배가 넘는 1,200만대를 돌파하면서 서울의 지상 교통은 거의 포화 상태에 달해 있다. 도심이건 변두리건 러시아워가 따로 없을 정도로 혼잡도가 심각하다. 행여 눈이나 비, 또는 학생 시위나 작은 야외 행사 하나만 있어도 지상 교통은 마비가 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다소의 불편은 따르지만 빠르고 정확한 교통 수단인 지하철이 각광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지하철의 약점이었던 노선 편협성도 2기 지하철인 5~8호선 완전 개통과 함께 서울은 물론이고 웬만한 수도권 밀집 거주 지역은 거의 빠짐없이 커버할 수 있을 만큼 노선이 확대됐다.


시민생활패턴에 대변혁 불러와

실제로 지하철은 시민들의 생활 패턴 자체를 변화시켰다. 몇몇 거점 지하철 역을 중심으로 역세권이라는 신흥 상권이 형성되면서 새로운 부심들이 생겨났다. 이미 10여년전부터 아파트나 상가 같은 부동산은 지하철역과의 근접도에 따라 가격대가 형성되고 있다.

강남 종각 잠실 을지로입구 고속터미널 같은 지하 상가들은 지하철로 인해 평당 1,000만원이 넘는 황금 최고의 상권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또 수원 인천 일산 분당 평촌 안산 의정부 같은 수도권 인근 도시들이 지하철로 출퇴근이 가능해지면서 서울의 베드타운화 된 것도 새로운 변화다.

경기도 일산에서 종로로 출근하는 최모(36)씨는 "예전엔 강서구 등촌동에서 좌석버스로 회사까지 1시간20분이 걸렸는데 일산으로 이사를 가 지하철을 타니 오히려 출근 시간이 1시간대로 단축됐다"며 "교통비도 싸고 막히는 일도 없어 너무 편리하다"고 말했다.

지하철이 대중 교통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면서 이용객들을 위한 지하철 공사측의 서비스도 달라지고 있다. 1986년부터 전역에 승차권 발권 및 개찰, 개ㆍ집표, 수입금 관리 등을 전산화한 역무 자동화가 시작됐고, 최근에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을 위한 전용 엘리베이터 설치하는 역들이 늘고 있다.

그간 고질적인 불만 사항이었던 환풍과 냉방 시설을 교체하고, 역내 화장실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등 각종 편의 시설 보강에 주력하고 있다. 서울지하철공사는 지난해 전동차 370여량과 노후 2개 역사에 대한 냉방기 교체를 완료하는 한편 2005년까지 노후 역사와 차량에 대한 냉방시설 교체를 완료할 계획이다.

환승역을 중심으로 유실물 센터와 지하철 정보센터를 운영해 승객의 불편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3년 전부터는 몇몇 지하 역사 내에 해당 구청의 현장 민원실을 입주시켜 시민들에게 각종 증명서류와 민원 상담 등의 편의도 제공하고 있다.


이벤트열차 등 문화활성화에 기여

최근 들어서는 편의시설 보강 수준에서 벗어나 문화ㆍ예술 행사쪽으로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다.

1995년 서울시도시철도공사가 천호역에서 개최한 수경음악회를 기점으로 각종 행사가 열려 지하철은 이제 단순히 지하역사 아닌 하나의 지역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1일부터 시청역(1호선) 충무로역(4호선) 잠실역(2호선) 종로3가역(3호선) 등10개 역사에서는 현대 무용, 클래식음악회, 마임, 성악, 인형극, 민속공연,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예술 장르의 무료 공연이 벌어져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런 문화ㆍ예술 행사는 역사 뿐 아니라 전동차 내부까지 확대되고 있다. 서울시도시철도공사는 지난해 8월1일부터 2개월간 7호선 내부에 임옥상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달리는 도시철도 문화 예술관' 행사를 실시했다.

이 행사 열차는 러시아워를 피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운행했는데도 무려 55만명이 승차, 평시 운행 대비 100%가 넘는 탑승률을 보이는 성황을 이뤘다. 또 5호선에 설치된 '산타 열차'와 6호선에 마련된 '디지털 문화열차' 등도 어린이들의 현장 실습 교육장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1월 11일 초등학생 9명과 함께 디지털 문화열차를 탄 왕수진(35ㆍ여) 교사는 "방학 자율 과제 학습을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이벤트 열차를 탔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 놀랐다"며 "아이들에게 지하철이 단순히 교통수단 뿐 아니라 놀이공간이나 문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시켜 줄 수 있어 교육적 효과도 높았다"고 말했다.


시설 세계수준, 서비스는 개선점 많아

출범 27년째를 맞는 서울 지하철은 기반 시설과 장비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최신형 전동차를 갖추고 있으며, 화장실 승강장 등 역사 내부 청결도도 선진국을 웃도는 편이다. 질서와 치안도 비교적 양호해 유럽이나 뉴욕 지하철처럼 강력 범죄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또 일본 지하철 당국의 골치꺼리인 여성 성추행 문제도 러시아워대에 혼잡도가 심해지는 한 두 구간을 제외하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서울시 어디서든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노선망이 깔려 있어 지하철의 생활화가 가능할 정도다.

하지만 공사 운영이나 인적 서비스 문제에 있어서는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다. 우선 서울시의 지하철 운영이 3곳으로 나눠져 인력과 효율성 저하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현재 서울시 지하철은 1~4호선을 담당하는 서울시지하철공사와 5~8호선을 책임지는 서울시도시철도공사, 그리고 국철 부분을 맡고 있는 철도청으로 분리돼 있다.

유사 업무를 2개 공사와 정부가 나눠서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 주관의 지하철이 이처럼 세 조각난 이유는 외견상으론 '경영 합리화'라고 하지만 실은 노조 문제가 주된 이유였다. 1기(1~4호선) 지하철을 관장하던 서울시지하철공사는 1990년대 중반까지 공공 노조 중에서도 가장 막강한 결집력과 영향력을 지닌 최강성 노조였다.

서울시와 정부는 2기 지하철 본격 출범을 앞두고 지하철공사 노조 규모가 커지는 것을 우려, 1995년 서울시 주도하에 서울시도시철도공사라는 공기업을 따라 출범시켰다. 여기에 몇몇 구간이 국철과 연결되면서 철도청까지 개입되기에 이른 것이다.


통합운영으로 경영효율성 높여야

현재 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는 완전 별개의 독립 사업체로 운영되고 있다. 1~4호선을 맡고 있는 지하철공사는 주요 노선이 몰려있어 승객 숫자는 많지만 운영 효율성면에서는 자동화 시설을 갖춘 도시철도공사가 다소 앞선다.

지하철공사 차량은 한 편성에 10량에 기관사 2명이 탑승하지만, 도시철도 차량은 8량 편성에 기관사 1명만이 탑승한다.

하지만 양 공사는 막대한 건설비 투자로 만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서울시가 지하철에 투자한 총 출자금은 6조7,478억원에 달한다. 지하철공사는 1월 현재 2조7,000억원의 부채를 지고 있어 매달 이자 160억원 등 585억원의 원리금을 갚고 있다. 도시철도공사도 2조원에 달하는 만성 부채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도시철도공사 한 관계자는 "사실 지하철은 막대한 외자를 끌어들여 엄청난 이자를 물면서도 정부 물가안정 대책 등으로 요금 인상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라며 "만성적인 적자 해결을 위해선 우선 세개로 쪼개진 지하철 운영을 통합해 인적 효율성과 경영 합리화를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1/16 18:42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