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빛 발한 재주와 끼, 막올린 천원바둑

일본에 와서 문제가 된 건 오청원에게 과연 몇 단을 인정하느냐는 것이었다. 여전히 토박이 정신에 투철한 기사들은 굴러온 돌격인 오청원이 기껏해야 초단밖에 더 되겠냐고 비아냥거리는 회수가 잦았지만 스승인 세고에 선생만이 오청원에게 3단 실력은 충분하다고 주장하여 3단격(格)으로 간주하고 정식 단위 인정시험을 치른다.

첫 상대는 그 해 정기 승단시합에서 1위를 차지한 시노하라 4단. 그와의 대국에서 오청원은 흑을 들고 불계승을 거둔다. 제2국은 슈샤이 명인과의 2점 바둑이었다. 이 시합이 말하자면 본시험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슈사이 명인은 지금으로 치면 굵직한 타이틀을 전부 보유한 실력에다 9단 이상의 단위처럼 권위로도 최고의 존재였던 살아있는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슈사이 명인은 몸집이 아주 작아 35Kg에도 미치지 못했으니 바둑판앞에 앉아 있으면 10세 안팎의 소년으로 착각하기 쉬운 타입이다.

오청원은 여기서도 당당히 4집승을 거둔다. 이에 관한 슈샤이의 강평. "흑의 태도는 장중견실(莊重堅實)의 극치이며 가히 최후까지 우세를 지속하고 보무당당(步武堂堂)해 백에게 파고들 틈을 주지 않은 2점바둑으로서 쾌심의 걸작이었다."

명인에게 2점바둑을 이긴 후 다시 무라지마 4단에게는 흑으로 5집을 이겨 3연승. 비로소 오청원은 정식 3단을 인정받게 된다.

3단을 인정받고 난 다음 오청원이 일본 바둑계로 곧장 뛰어든 건 아니다. 그는 평소에도 몸이 약해 장시간 두는 바둑은 힘들어 했는데, 주변의 도움으로 건강진단을 받게 된다.

행운당이라는 병원에서의 진단결과. "가슴에 결핵의 자연 치유 흔적이 있어 재발될 우려가 있다. 선천적으로 몸도 허약하다. 따라서 기사의 목숨을 건 승단시합에는 1년 정도 참가하지 않아야 한다."

이 대목이다. 과연 승단시합이 목숨을 건 대회일까. 지금의 관점으로는 도대체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다. 요즘이야 단위의 절대적 권위는 무참히 깨진 시대이므로 승단대회가 가장 가치가 적은 듯 오히려 이해하는 시절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돈이 생기는 시합이 드물었을 뿐 아니라 단위의 권위가 극도로 충만한 시대였다. 그리고 단위의 높고 낮음으로 그 신분의 높낮이도 결정된다고 할 만큼 중시되던 시합이다. 아직도 일본에서는 승단시합을 대수합(大手合)이라고 부른다.

가장 크게 생각했던 대회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일본으로 건너간 첫해엔 오청원은 잡지나 신문바둑을 두었다. 지금으로 치면 이벤트 바둑이라고 보면 된다. 잡지사에서 주최하여 그 기보를 연재하기로 약속한 그런 임시 대회 말이다. 전적은 12승 7패 2무.

일본무대 첫해부터 오청원의 재주와 끼는 빛을 발한다. 시사신보사에서 주최한 승발전에서 일곱 번째 선수로 참가한 오청원은 기다니 4단과 대국하게 된다. 기다니는 한국의 조남철 김인을 비롯하여 오다케 다케미야 고바야시 그리고 조치훈까지, 일본바둑의 영웅들 모두를 길러낸 일본바둑의 대모(代母)와 같다. 그리고 훗날 오청원과 함께 바둑계의 폭풍을 몰고 온다.

그러나 이 기다니와의 만남은 수월치 않았다. 자존심 강한 오청원이 도저히 이길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던 것. 그러다 궁리해낸 것이 흉내바둑이다.

흉내바둑이란 무엇인가. 오청원은 흑을 들고 첫수를 천원에 갖다 놓는다. 바둑판의 정중앙 말이다. 그 다음은 바둑판이 천원을 중심으로 점대칭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상대가 두는 대로 저쪽 반대편에서 그대로 따라두는 것이다.

오청원이 이렇게 흉내바둑을 둔 것은 철저히 연구정신의 발로였다. 과연 이렇게 두면 백이 이길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부터 품었던 사람이다. <계속>

[뉴스화제]



ㆍ루이 박지은 세계최강여류 다툰다

과연 '루이의 벽'을 넘을 여류가 있을까. 작년 조혜연에 이어 올해는 박지은이 세계최강 루이에게 도전장을 던진다.

1월11일 벌어진 제2회 흥창배 세계여류바둑선수권 준결승에서 박지은은 한국의 윤영선을 꺾고 결승에 올랐고, 2연패를 노리는 루이는 중국의 장쉔을 꺾고 결승에 올랐다.

이로써 작년에 이어 또다시 한국기원 소속기사끼리 결승을 치르게 되었는데, 박지은은 '여자 유창혁'으로 불리는 강견이어서 대접전을 예고하고 있다. 결승전은 2월에 치러진다.

ㆍ한화갑의원 한국기원 총재 취임

한국바둑의 총본산 한국기원 6대 총재에 한화갑 민주당 최고위원이 취임했다.

1월11일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치러진 총재 취임식에서 한 총재는 "무한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다"면서 "한국바둑계가 세계화하는데 앞장서고,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꼭 해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화갑 총재는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도 맡고 있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1/01/1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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