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이야기 (7)] 신구문화(神狗文化)②

고마이누의 모습은 매우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다. 뿔이 달린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그리고 귀가 선 것도 있고 서지 않은 것도 있다. 특히 귀가 서지 않은 것은 흡사 사자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런 고마이누를 보고 어떤 분은 그 원형을 삽사리에게서 따온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꼭 그렇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런 형태는 고마이누를 더욱 더 강력하게 보이기 위해서 다른 수호영물인 사자나 해태의 이미지를 차용, 합성하여 형상화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마찬가지로 귀가 선 고마이누도 진돗개 또는 풍산개를 형상화한 것이 아닐 것이다.

고마이누는 어떤 한 견종의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라기 보다는 신구문화, 그 자체의 이미지적 형상화다.

그런데 이제까지 우리들은 고마이누가 신사에만 있는 줄 알았다. 1999년 겨울, 일본에서 사찰을 관광하던 필자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고마이누가 바로 사찰에도 있다는 것이다.

일본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거대한 불상을 모셨다고 자랑하는 동대사(東大寺)를 비롯한 나라(奈良)와 교토(京都)의 주요 사찰에 거의 빠짐이 없이 그 입구에 거대한 석상으로 수호동물의 형상이 서 있는데 이는 바로 고마이누였다.

이들이 틀림없는 고마이누인 것은 일본인들이 그렇게 부를 뿐만 아니라 이 수호동물의 대부분이 개를 나타내는 목걸이를 하고 있음으로써 사자라고 오인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사찰이라고 자랑하고 있으며, 고구려의 담징이 그린 벽화로 유명한 법륭사(法隆寺)에는 고마이누가 입구에 없었다. 아마도 법륭사가 건축될 당시에는 우리의 신구문화가 사찰에까지 전해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후일에 증축된 것으로 보이는 법당을 둘러싸고 있는 웅장한 사찰 건물의 지붕을 보던 필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모든 지붕의 추녀 끝에 고마이누들이 다양한 형태와 자세로 앉아 있었던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나가는 일본인을 붙들고 "저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다. 모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분명하게 고마이누라고 대답했다.

일반의 관심을 크게 끈 행사는 아니었지만 얼마 전에 세계애견협회(FCI)에서 후원하는 애견전람회를 서울에서 개최한 적이 있다. 전국 각지에서 출품된 아름다운 개들을 심사하기 위해 FCI에서는 심사위원을 파견하였는데 공교롭게도 그들은 모두 일본인이었다.

그들은 다른 분야에 비해 매우 후진적인 우리의 애견분야를 무척 경시하고 있었다. 모처럼 규모가 큰 전람회를 치르느라 눈코 뜰새없는 우리 담당자들을 향해 "선진 애견문화를 배울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출품된 개 수준이 너무 낮다"는 등 기고만장한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때 우리 전통의 신구문화와 고마이누의 유래를 이들에게 얘기해주자 오만한 기가 꺾이는 모습이 너무 역력했다. 순간적으로 당황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나마 많은 위안을 받은 기억이 있다.

본래 일본은 신(神)을 숭상하는 문화가 매우 발달된 곳이다. 어디를 가도 다양한 의미를 가진 신이 사당에, 혹은 길 옆이나 동네 어귀에 크고 작은 석상으로 모셔져 있으며 깨끗하게 정돈된 이들 신상 앞에는 언제나 꽃이 단정하게 놓여있다.

그런 일본의 생활문화 속에서 신사와 사찰은 민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양대 축이라 할만 하다. 많은 일본인이 신사와 사찰을 통해 정신적 위안을 얻고 여기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신구문화의 상징인 고마이누가 일본인의 주신(主神)으로서 이런 곳을 빠짐없이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후손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알려줄 수 있는 대단히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의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거의 일본 전역에서 볼 수 있는 고마이누를 보며 우리 북방견 문화의 대단한 영향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윤희본 한국견협회 회장

입력시간 2001/01/16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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