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쌀] 양보다 질 승부, 다양한 기능의 브랜드 쌀 출시

흰 쌀밥을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소원인 시절이 있었다. BC 1000년경 쌀이 한반도의 주식으로 들어온 이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1970년대까지 죽 그랬다. 그 시절 쌀은 식량의 대명사이자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이밥에 고깃국'이니 '천석꾼', '만석꾼'이라는 말까지 있었을까. 당연히 쌀의 최고의 가치는 양, 즉 누가 쌀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국민은 물론이고 나라에서도 쌀에 대한 관심은 오직 증산(增産) 뿐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30여년이 지난 지금, 쌀에 관한 한 더이상 양은 중요하지 않다. 1970년 135.3kg이었던 1인당 연간 쌀 소비가 이제는 100kg 이하로 떨어졌다. '쌀값이 금값'이라는 것도 다 옛말이다.

쌀이 없어 밥을 못 먹는 사람은 없고, 누구나 큰 돈 들이지 않고 쌀을 사먹을 수 있다. 더욱이 2004년부터는 시장개방으로 인해 미국, 중국, 태국 등 외국으로부터 값싼 쌀이 대량으로 들어온다.


맛과 건강이 쌀 선택의 기준

이제 쌀에 대한 관심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어떤 쌀이 맛이 있느냐, 어떤 쌀이 몸에 좋으냐가 쌀을 고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1992년 쌀 품질 인증 시행과 함께 등장한 브랜드 쌀은 이러한 변화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첫번째 사례다.

품질인증제도는 토양 등 쌀의 생산조건과 파종, 모내기, 시비, 추수에 이르는 재배과정, 탈곡과 도정 등의 품질관리까지를 엄격히 심사, 높은 품질을 보장하는 것으로 쌀의 고급화에 한몫을 했다.

브랜드화를 통해 판로확대를 시도하던 각 지역의 쌀은 너도나도 품질인증 마크를 획득했고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지역 쌀의 브랜드화는 이제 쌀 유통시장에서 완전히 자리잡았다.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쌀중 대부분은 '이천 진상미', '옥천 한눈에 반한 쌀', '철원 오대미', '강화 양질미' 등 지역이름을 브랜드화한 것이다. 브랜드가 없는 이른바 '가마니 쌀'은 이제 백화점이나 할인점은 물론이고 양곡 도매시장 등에서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브랜드화한 지역미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특장점으로 소비자의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했던 이천미는 밥을 지으면 하얗다못해 푸른 빛이 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인 맛 좋은 쌀의 대명사. 브랜드화한 지역 쌀 중 가장 인지도가 높다. 옥천에서 생산되는 '한눈엔 반한 쌀'은 일본산인 '히도메보레'를 우리 입맛에 맞게 개발한 쌀.

1994년부터 백화점의 고급 소비자들을 집중 공략, 이름 알리기에 성공한 경우다. 지리산 자락에서 생산되는 산청미는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논에 메뚜기가 산다고 '메뚜기 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 강화 양질미는 마그네슘 토양과 일조시간이 길고 일교차가 큰 환경에서 자라 일반 쌀보다 영양이 풍부하다는 점을, 철원 오대미는 공해가 없는 비무장 지대에서 자랐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해발 400~500m의 화왕산 자락에서 재배한 화왕산 청결미는 다른 쌀에 비해 낟알이 굵다고 한다.


특정지역 쌀 인기가 유통 부작용 불러

지역 브랜드 쌀이 정착함에 따라 가격에도 차등화가 이루어져 같은 양이라도 브랜드마다 값이 다르다.

현대백화점 본점의 경우 20kg을 기준으로 서산 간척지에서 재배해 찰기가 다소 떨어지는 서산미는 4만6,500원, 같은 간척지라도 마니산 국립공원의 청정수와 유기질이 풍부한 토양에서 자란 강화미는 5만1,000원, 이름값이 센 이천미는 5만5,000원까지 한다.

옥천 한눈에 반한 쌀은 3kg이 1만3,400원, 20kg로 환산하면 8만9,000원이 넘고 섭씨 5도의 기온에서 항온항습기를 이용해 재배했다는 보성미는 5kg에 2만6,500원, 20kg로 치면 10만6,000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러한 지역 쌀의 브랜드화는 질 좋은 쌀을 찾는 소비자의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준 반면 유통상의 문제점도 낳고 있다. 양곡 도매시장의 한 상인은 "시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주나 이천 지역의 햅쌀은 수도권 인구가 한달 먹을 분량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천쌀은 일년 내내 끊이지 않고 공급된다. 타지역 쌀이라도 도정만 이천에서 하면 이천 쌀로 포장되어 팔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농업기술의 발달과 함께 쌀의 품질도 평준화되어 일반 소비자가 특정 지역의 쌀 맛을 구별하기는 힘들다.

또 같은 이천미라도 품질에 차이가 있고, 일반적으로 품질이 떨어진다고 인식되고 있는 호남미 중에서도 상등품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지역 이름에 따라 가격 차이가 생긴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최근 등장한 것이 지역 이름 없이 만들어진 순수한 브랜드 쌀.

특정지역의 쌀만을 고집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세운 기준에 따라 일관된 맛을 유지하도록 만든 쌀이다. 친환경식품 유통 벤처 기업인 '쌀 맛 나는 세상'에서는 쌀의 품질에 따라 '정성', '행복', '황금', '놀부', '흥부', '살림' 등 6개의 브랜드 쌀을 판매한다.

매번 다른 지역의 쌀을 대량으로 구입한 후 샘플 측정을 통해 찰기와 윤도, 수분함량의 정도에 따라 브랜드를 나눈다.

'쌀 맛 나는 세상'의 이건 이사는 "식미측정기를 이용, 8,000여명의 소비자의 입맛을 수치화, 데이터 베이스로 만들어 둔 것이 브랜드 별로 일관된 맛을 내는 비결"이라고 설명한다.

'㈜행복한 세상'에서도 '이화에 월백하고' 등 10개의 브랜드 쌀을 판매하고 있다. 이같은 순수 브랜드 쌀의 등장은 이제 쌀도 무조건 있어야 하는 생필품에서 벗어나, 상표를 보고 고르는 기호식품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관된 맛으로 브랜드화

지역미의 브랜드화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이른바 건강미도 소비자의 달라진 욕구를 반영한다.

일반 쌀과 색이나 모양, 재배방식이 다르고 영양이 강화된 건강미 중에는 검은 빛이 돌고 고소한 맛을 내는 흑향미(검은 쌀)와 붉은 빛이 도는 자광미(붉은 쌀), 밥을 지으면 구수한 향기가 나는 향미 등이 제법 인기를 얻었다.

또 일반미에 비해 쌀이 통통하며 도정 후에도 쌀눈이 잘 빠지지 않는 다마금도 일체의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해 밥 맛이 고소하다는 소문이 나 20kg에 10만원을 넘는 고가임에도 소비자로부터 적지않은 사랑을 받았다. 이밖에 논에 청둥오리를 풀어놓아 병충해를 일으키는 각종 곤충을 잡아먹게 하고 오리의 배설물을 농약 대신 사용해 재배한 '오리쌀'도 눈길을 끈 바 있다.

건강미는 최근 들어 기능성 쌀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기능성 쌀이란 일반 쌀에 특수물질을 입히거나 특수물질을 첨가해 특정한 효과를 내도록 한 쌀. 무농약 쌀이나 유기농 쌀 보다 한걸음 진전된, 건강지향적 쌀이다. 다소 낯선 이름에 비해 종류는 꽤 여러가지다.

쌀 표면에 첨가물질을 입힌 기능성 쌀 중에는 인삼 쌀과 동충하초 쌀이 가장 대표적이다.

인삼 쌀은 인삼 성분을 추출, 백미에 코팅한 것. 생쌀인 상태에서도 인삼 냄새가 강하고 밥을 지어도 인삼의 씁쓸한 맛이 난다.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인삼의 효능을 어느정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동충하초 쌀 역시 동충하초의 버섯 부분을 특수 가공, 추출해 쌀에 코팅해 만든다. 밥을 지으면 동충하초의 노리끼한 빛이 나고 항암작용, 면역증강 작용, 항균 작용, 신장 보호 등 동충하초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단, 코팅미는 쌀을 씻는 과정에서 코팅이 벗겨지면 효과가 절감될 수 있으므로 씻지 말고 밥을 지어야 한다. 일반미를 불린 후 백미의 5~10% 정도를 붓고 일반 쌀과 같이 밥물을 맞춘다.


인삼, 동충하초, 버섯, 녹차쌀 등 다양

최근에는 인삼이나 동충하초 같은 천연물질 외에도 키토산이나 DHA, 칼슘 등의 영양소를 첨가한 쌀도 판매되고 있다.

한국농업㈜는 대형 탱크에 쌀을 넣고 압력을 가해 팽창시킨 다음 키토산, 미네랄, 카테킨, 사포닌, 아미노산 등 각종 영양소가 담긴 액체를 분사하고 해 다시 그 쌀을 냉각, 건조시키는 방식으로 여러가지 기능성 쌀을 만들고 있다. '해청원'이라는 쌀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농업 심재근 부사장은 "쌀 한톨 한톨에 강제로 영양소를 투여, 함유농도를 극대화시켰다"고 설명한다.

이중 녹차의 주성분인 카테킨은 암 예방과 콜레스테롤 저하, 혈압과 혈당 상승 억제 등과 같은 효능이 있고, 꽃게 껍질에서 추출한 키토올리고 당의 활성물질인 키토산은 간기능 강화와 당뇨, 고혈압 예방, 노화방지 등의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밖에 버섯의 균사체를 백미나 현미에 배양해 만든 쌀도 있다. 버섯과 쌀의 종류에 따라 현미 아가리쿠스 쌀, 현미 영지 쌀, 상황 버섯 쌀 등이 있다.

버섯 성분이 첨가된 만큼 일반적으로 버섯의 효능으로 알려진 영양보충, 식욕증진, 소화증진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판매자의 주장이다. 밥을 할 때는 일반 잡곡과 같은 방식으로 조리하는데 밥물을 부은 다음 버섯 쌀을 약 20% 정도 섞으면 된다. 밥을 지으면 버섯의 고소한 맛이 난다.

최근 들어서는 씻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기능성 쌀도 등장했다. 한국식품개발연구원 에서 개발, '씻어 나온 쌀'이라는 이름으로 시판되고 있는 이 쌀은 기계를 이용, 알카리 이온수로 쌀을 미리 씻어 만든 제품이다. 따라서 밥을 할 때 쌀을 씻을 필요가 전혀 없다.

물을 평소보다 반컵 정도 더 부어 밥을 지으면 된다. 간편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환경보호와 쌀의 효능을 살리는 효과가 더 크다.

쌀을 씻을 때 나오는 쌀뜨물은 BOD가 높은 생활 하수의 주범. 씻어 만든 쌀은 일반 가정에서 나오는 쌀뜨물의 양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기계에서 나온 쌀뜨물은 건조시켜 다른 식품의 소재로 활용되므로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쌀의 표면에 붙어있는 호분층과 잡균이 기계 세척 시 깨끗하게 제거되므로 밥을 지으면 찰기나 윤기가 좋고, 쌀벌레가 잘 생기지 않는다.

또 쌀을 씻는데 드는 물을 절감할 수 있다. 평균적으로 쌀을 씻을 때는 쌀의 질량 16배에 해당하는 물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쌀 소비량이 연간 480만톤이므로 1년에 1억톤 가까운 물을 절약할 수 있다.


특화된 쌀시장 "비중 커질 것"

이러한 기능성 쌀은 일반미 보다 10~20% 더 비싸다. 또 일반미와 섞어 먹기 때문에 대부분 300g~500g 정도의 소량 포장으로 생산된다. 기능성 쌀은 현재 약 10조원에 달하는 전체 쌀 시장 중 약 100억원 정도의 틈새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주소비층은 당뇨병 등으로 식이요법을 해야 하는 환자가 있는 가구나 가족의 건강에 관심이 지대한 일부 주부들. 하지만 성장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한국농업 심재근 사장은 "이제 배고파 밥을 먹던 시대는 지났다. 한끼를 먹더라도, 조금 비싸도 내 몸에 좋은 쌀을 찾는 게 일반적 추세"라고 지적한다. 농협 양곡부의 김주양 과장도 "건강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기능성 쌀이 앞으로 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1/17 09:31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