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우리의 멋과 맛을 찾아 연휴여행 6선

놀기만 할 것이 아니다. 설은 우리의 것을 다시한번 생각하는 날. 설 연휴가 주중에 어스름하게 걸쳐있고 또 불경기여서 한주일을 통째로 쉬는 곳도 많은 모양이다.

여행을 떠난다면 우리 고유의 것을 찾는 여행은 어떨까? 한국관광공사의 추천으로 우리의 토종이 큰 숨을 쉬고 있는 곳을 추천한다.

■ 가인마을 토봉단지(전남 장성군)

내장산은 단풍으로 유명한 산. 특히 백양사의 단풍은 크기가 작으면서 선명한 붉은 색으로 물들어 찾는 이들이 많다. 가을의 아름다움 못지 않게 겨울 설경도 빼어나 중무장을 한 겨울 산꾼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백양사 매표소를 지나면 왼쪽으로 작은 길이 하나 나있다. 알려지지 않은 등산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 그러나 그 길은 작은 부락 가인마을로 통하는 길이다.

백암산, 사자봉, 가인봉 사이에 숨어있는 듯이 들어서있는 가인마을에는 달랑 16가구 만이 산다. 주민의 생업은 꿀을 따는 것이다. 양봉이 아닌 토종벌이다. 한 가구에 보통 50여통의 벌집을 가꾼다. 전체 벌통 수는 700여 통. 주민들은 언제부터 이곳에서 벌을 키웠는지 알지못한다. 백양사의 사하촌 역할을 했던 마을이어서 그 역사도 상당히 오래 됐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가인마을의 토종꿀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무공해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방 10여리가 국립공원 구역이어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농약의 공포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이유다. 먹이도 풍부하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자락에는 단풍나무, 참나무, 서어나무, 밤나무 등이 빼곡하다. 벌은 꽃의 꿀뿐 아니라 나무의 수액도 채집해온다.

주민은 꿀을 백화점 같은 대형 유통기관에 납품하지 않는다. 아는 사람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판매한다. 물량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토종꿀의 가격은 1되에 8만~10만원 정도.

택배료는 주민들이 부담한다. 1년에 한 가구에서 꿀을 팔아 버는 돈은 약 350만원 정도. 마을에서는 토종꿀과 솔잎 가루를 섞어서 만든 솔잎차를 판다. 솔잎의 향기가 그대로 살아있는 솔잎차를 마시면 머리가 개운해진다. 진짜 산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든다. 마을 주민 한상문씨 (061)392-7740

■ 화순 복조리마을(전남 화순군)

설이 지나고 정월 대보름이 되면 집집마다 복조리를 매달았다. 만복이 집안에 깃들기를 기원한 것이다. 이제는 박물관에나 가야 복조리를 볼 수 있는 형편이다.

전남 화순군 북면 송단리 송단마을은 복조리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해발 810m의 백아산 기슭에 자리잡은 한적한 마을이다. 이 마을이 복조리마을로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는 복조리의 재료가 되는 산죽이 많이 자라기 때문이다.

송단마을의 주민은 약 30가구. 표고버섯을 키우고 깨와 콩, 팥 등을 농사짓는다. 겨울이 되고 한가해지면 마을 사람은 경로당을 겸한 복조리 공동작업장에 모인다. 보통 5, 6명은 항상 작업장에 있고 각자의 집에서도 복조리를 만든다.

복조리를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까다롭다. 추수가 끝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 말께부터 산죽을 베어 햇볕에 말린다. 다년생인 산죽의 가지 중 그해에 새로 난 것을 골라야 한다. 산죽의 굵기는 연필보다 조금 가는 0.7~0.8㎝ 정도. 말린 대나무는 네 갈래로 쪼갠 뒤 껍질을 벗기고 물에 반나절 정도 담근다. 물에 불어야 부드러워져 조리를 만들기 쉽다.

숙련공은 1시간에 6개 정도, 초심자는 4개 정도의 복조리를 만든다. 완성품은 도시의 상인이 와서 사간다. 기업체에서 직원들 선물용으로 대량 구입하기도 한다.

마을 주민의 단체 작업은 설날 직전에 모두 끝이 난다. 마을 진입로는 좁지만 경로당 주차장이 넓어서 큰 불편은 없다. 송단마을 이장댁(061-373-9514)으로 연락하면 복조리를 예약할 수 있다. 1쌍(2개)에 1,000원으로 비싸지 않다.

■봉화 닭실 한과마을(경북 봉화군)

이제 우리의 먹거리 세상은 인스턴트와 조미료가 평정했다. 아예 우리의 것은 없는 듯하다. 그 불쾌함을 떨치게 해 주는 마을이 바로 닭실 한과마을이다. 경북 봉화읍에서 춘양면으로 가다보면 커다란 누각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마을을 만난다.

500년을 한결같이 한과를 만들어온 닭실마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봉화읍 유곡1리다. '닭실'이란 풍수지리학상으로 볼 때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을 일컫는 말.

'금계포란'이라고도 한다. 마을에서 한과를 만든 것은 조선 중종때. 당시 재상을 지냈던 충재 권벌(1478~1584)의 종택이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부터다. 종택에서는 충재의 불천위제사를 지금까지 지내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한과를 만드는 전통이 생겼다.

제사음식 중에서 가장 정성이 들어가는 음식이 바로 한과다. 모두 나름대로의 색깔을 지녀야 하고 맛도 좋아야 한다.

마을 아낙은 1992년 생활개선부를 만들고 회관에 모여 한과를 외지인에게 팔기 시작했다. 이 마을의 한과가 유명한 이유는 순수한 토종 재료만을 쓰고 모두 수작업을 통해 만들기 때문이다. 중국산 곡물이 범람하지만 그들은 꼭 토종만을 고집한다. 모양을 내는데 쓰는 깨만 해도 국산이다. 그래야 노란 색깔이 제대로 나온다고 한다. 남아서 묵혔다가 파는 경우도 없다. 모두 주문 생산이다.

현재 부녀회 생활개선부 회원은 18명. 음력 7월처럼 날씨가 무더울 때만 빼고는 어김없이 한과를 만든다. 추석이나 설 명절 때는 손이 모자랄 정도다. 찹쌀 반죽에 멥쌀 가루를 입히고 식용유로 튀기고 조청을 입히고 깨를 박는 아낙들. 닭실마을에 가면 입구에서부터 고소한 한과 냄새가 흘러나온다. 부녀회관(054)673-9541

■ 하동 짚신마을(경남 하동군)

아름다운 강 섬진강이 굽이치는 경남 하동군 하동읍의 신기리. 마을에는 특별히 경작할 땅이 없었다. 강에 나가 재첩을 잡거나 남쪽 바다까지 나가서 파래나 김을 뜯었다.

그러나 광양제철소가 들어서면서 바다마저 잃었다. 도리가 없어진 주민은 짚신 틀 앞에 앉았다. 60가구 주민 중에서 57가구가 짚신을 만든다. 계절도 없다.

농한기, 농번기의 구분도 없다.

재료인 볏짚은 인근 농가에서 사온다. 벼를 벤 후 닷새 가량 좋은 볕에 말려야 튼튼하고 실하다. 행여 비라도 맞으면 썩어버려 쓸 수가 없다. 짚신은 손이 많이 가는 물건. 한 켤레의 집신이 만들어지기까지 모두 7가지의 작업을 거쳐야 한다. 다 만들어진 짚신은 10켤레씩 묵는다. 이를 1죽이라 한다. 1죽씩 쌓아올려 25죽(250켤레)가 되면 1묶음이다. 외지로 팔려나가는 최소 단위다.

요즘 세상에 누가 짚신을 사갈까.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무속행사. 그 밖에 농악놀이, 풍어제 같은 전통행사에 요긴하게 쓰인다. 장의사에서도 찾는다.

짚신 한 켤레의 가격은 도매가로 약 500원. 품에 비해 턱없이 싼 가격이다. 1인당 하루 5,000원 벌이가 고작이다. 이것도 돈이 된다고 2, 3년 전부터 중국산 짚신이 밀려들어왔다. 볏짚값도 안 나올 판이다. 부녀회장(055)883-0602

■양양 송천 떡마을(강원 양양군)

오대산의 서남쪽 능선을 파고드는 구룡령은 첩첩산골 홍천군 내면(창촌리)과 바닷가 양양을 연결하는 긴 고개다. 그 고개 끄트머리에 양지바른 마을이 있다. 약 500m 의 마을 길을 들어서면 소문난 떡집, 민속떡집 등 떡집 간판이 보인다. 30가구가 사는 이 마을에서 떡을 만드는 집은 절반인 15가구. 떡메를 휘둘러 알토란 같은 부자가 된 마을이다.

송천리가 떡마을로 이름을 날린 것은 20여년전. 가난에서 벗어나 보려는 마을 아낙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약간의 쌀농사와 감자 옥수수 농사가 이 마을 소득의 전부였던 시절. 마을 여인들은 점봉산의 산나물이며 송이버섯을 따다가 팔았다. 겨울이면 눈으로 뒤덮인 마을에서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속초에 나가 명태나 게 가공공장에도 다녔다.

그러다가 한두 사람이 떡을 만들어 오색약수터며 신흥사 등지로 팔러다녔다. 기계가 없으니 완전히 수작업이었다. 말하자면 전통 제조법이다. 그것이 적중했다. 마을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설악산 계곡의 맑은 물을 먹고 자란 곡식과 먼지 하나 없는 정갈한 산골 공기가 합세했다.

알음알음으로 떡 주문이 밀려들었고 요즘은 동해 바닷가에 들르는 여행사에서 단체로 떡 제조과정을 관람하고 떡도 사간다. 인근 군부대나 관청에서도 행사가 있을 때에는 큰 주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인절미 계피떡 송편 백설기 호박고지 경단 찹쌀떡 가래떡 이바지떡 등 떡의 종류도 많이 늘어났다. 가장 중요한 것은 쌀 됫박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정직이 맛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 마을 사람의 신조다. 가장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떡은 인절미로 1말에 8만원 선이다. 반 정도는 흰색 인절미로 만들고 나머지 반은 쑥이나 취나물을 섞어 푸른 떡을 만든다. 소문난떡집 (033)673-4316

■ 대관령 황태덕장마을(강원 평창군)

명태만큼 다양한 이름을 가진 물고기도 없을 듯하다. 가장 기본적인 이름은 명태와 동태다. 황태는 눈 속에서 말린 명태를 일컫는다. 양념을 얹어 굽거나 가늘게 찢어 콩나물과 함께 끓이면 술안주와 속풀이국으로 으뜸이다.

황태는 만드는 과정에 따라 이름을 또 가지치기한다. 날이 너무 추워 하얗게 떠버린 것은 백태, 너무 따뜻해서 검게 익어버린 것은 먹태, 몸통이 찢어진 것은 파태, 머리가 없어진 것은 무두태라 한다.

강원 평창군 횡계리는 모두 1리부터 11리까지 있는데 해마다 덕장이 들어서는 마을은 5리와 8리다. 아름다운 계곡 송천을 끼고 있다. 주문진에서 올라온 명태는 이 송천의 물 속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몸을 정갈하게 하고 덕장에 내걸린다.

해마다 이맘 때만 되면 대관령 자락에는 황태 덕장이 펼쳐진다. 어른 다리통만한 굵기의 소나무로 덕장을 만들고 두 마리씩 줄에 매달아 하늘을 보게 하면서 명태를 말린다. 먹거리를 만드는 작업이라지만 보는 맛도 꽤 괜찮다.

권오현 생활과학부 차장

입력시간 2001/01/17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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