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특집] 영화바람에 무르익는 설 분위기

구정 연휴는 추석과 함께 극장가 최고의 대목이다. 많은 영화사들이 이 때에 맞추기 위해 상영 일정을 조정하기도 하고, 보다 좋은 상영관을 잡기 위해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구정 연휴를 열흘 앞둔 1월 13일 이미 5편의 영화가 개봉되었고 연휴 직전 주말인 20일에는 모두 7편의 새 영화가 선보일 예정. 대목이라 그런지 모두 저마다 흥행요소를 갖춘 작품들이다. 설 연휴 개봉작들을 국산과 외국영화, 어린이 영화로 나누어 소개한다.

▣ 국산 영화

◆하루

오랜만에 다시 보는 국산 멜로 영화. 오래도록 아기를 기다린 끝에 어렵사리 임신에 성공했지만 무(無)뇌아를 갖게 된 부부의 이야기다.

하루 밖에 살지 못하는 아이를 떠나 보낸다는 설정은 최루성 영화임에는 틀림없지만, 쉴 새 없이 줄줄 흐르는 눈물 때문에 화면을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한지승 감독은 '고스트 맘마' 에서처럼 웃음 섞인 눈물을 강조한다.

어느새 한석규 못지 않은 강온의 겸비한 이성재와 되바라진 신세대 여성의 이미지를 벗고 제 때에 눈물을 떨구는 고소영의 연기, 모두 좋다.

단, 장난감 디자이너인 주인공인 갑자기 호화로운 전원주택을 마련하는 등 동화책에서 퍼온 듯한 비현실적인 설정이 자주 감정이입을 방해한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여러 면에서 '하루'와는 정반대다. 눈물 보다 웃음이 앞서는 것도 그렇고,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줄거리와 상황 설정이 그렇다.

소심한 은행원으로 언젠가 만나게 될 지도 모르는 자기 짝을 기다리고, 그러면서 조금씩 외로움에 지쳐가는 한 남자(설경구)와 우연히 알게 된 남자에게서 숨겨진 매력을 발견하고 사랑에 가슴 설레는 보습학원 강사(전도연)의 이야기.

해피 엔딩의 결론이면서도 키스도 없이 막을 내리는 덤덤함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조연출이었던 박흥식의 감독 데뷔작.

◆눈물

'나도 아내가.'나 '하루'와는 전혀 다른, 10대 영화. 기존의 영화문법에서 벗어난 다소 파격적인 작품이다.

술, 폭력, 섹스, 가스 흡입 등을 거침없이 행하는 10대 소년 ㆍ소녀들의 일탈과 분노, 절망을 일체의 가감없이 그대로 그려냈다.

'처녀들의 저녁 식사'로 데뷔한 임상수 감독이 가리봉동에서 안경 장사를 하며 1년 동안 10대를 관찰하고 만든 자신의 두번째 작품이다. 제목은 눈물을 잃어버린 아이들을 바라보며 흘리는 감독의 눈물을 뜻한다고.

▣ 외국 영화

◆버티칼 리미트

'2'의 뒤를 이은 또 하나의 산악 영화. 이번에도 배경은 역시 '살아있는 악마'로 불리는 K2다.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수직한계점(버티칼 리미트)까지 떨어진 등반대원과 이들을 구하기 위한 동료 대원들의 필사적인 노력을 그렸다. 대개의 산악 영화가 그렇듯, 그 뒤에는 가슴 찡한 사람 이야기가 감춰져 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을 찍은 데이비드 태터샐이 보여주는 장대한 K2의 모습과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가 볼만하다. '007 골든 아이'를 만든 마틴 캠벨이 크리스 오도넬과 로빈 튜니, 빌 팩스턴 등 배우들과 만들었다.

◆엑시덴탈 스파이

성룡 주연의 정통 액션물. 상대 여배우로 김민이 나와 더욱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고아로 자란 헬스기구 판매상 벅(성룡)이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아버지를 자처하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자신이 남긴 재산을 찾으라는 유언을 듣게 된다.

잡지 기자 카르멘(김민)으로부터 그 남자가 테러집단으로부터 인류를 위협할 만한 폐암 바이러스를 빼돌렸다는 사실을 듣게 된 벅은 그때부터 테러 집단의 위협을 받게 된다. 테러 집단은 그의 여자친구를 납치, 바이러스와 교환하자고 제의한다. 진덕삼 감독.

◆프루프 오브 라이프

러셀 크로의 전작 '글래디에이터'를 감명 깊게 보았던 사람이라면, 그가 멕 라이언과 공연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질 법하다. 우울한 인상이면서도 묘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그는 이 작품에서 인질범들과 협상을 벌이는 전직 군인으로 나온다.

남미의 반군 집단에게 납치당한 멕 라이언의 남편을 구해내는 것이 그의 임무. 그 와중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사관과 신사'를 만들었던 테일러 핵포드 감독은 액션과 멜로 사이에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해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아무리 명배우라도 감독을 잘못 만나면 전혀 멋있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 주는 작품.

◆왓 위민 원트

멜 깁슨의 호연이 돋보이는 로맨틱 코미디 물. 남성우월주의에 사로잡힌 광고기획자가 어느날 우연한 사고로 여자들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때마침 부임한 여성 상관(헬렌 헌트)의 아이디어를 미리 읽어 자신의 것인 양 악용하던 그는 어느덧 자신의 딸을 포함한 여성들의 심리에 눈을 뜨게 된다.

남자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불만인 여성이라면, 그 남자와 함께 볼기를 권하고 싶다. 신문사에서의 남녀간 경쟁을 비슷한 감각으로 그려냈던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작품이다.

◆미트 페어런츠

원제는 Meet the Parents. 전혀 다른 취향을 지닌 여자친구의 부모를 만나게 된 한 남자 간호사의 좌충우돌식 코미디. 코미디 연기로 명성을 쌓고 있는 벤 스틸러가 전혀 웃길 것 같지 않은 로버트 드 니로와 공연했다.

로버트 드 니로의 명연기 또한 '왓 위민 원트'의 멜 깁슨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스틴 파워'로 관객을 요절복통하게 만들었던 제이 로치 특유의 과장된 장면들은 가족 간의 관계를 그리는데 있어서도 여전하다. 미국에서는 개봉 4주간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던 흥행작이다.

▣ 어린이 영화

◆빅 베어

곰은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곰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심심치 않게 만들어진다. '빅 베어'도 그 중 하나. 로키 산맥을 배경으로 곰이 나오는 장면을 포함, 대부분 실사 촬영되었다.

어머니가 없이 외로이 지내던 해리가 사냥꾼인 아버지를 따라 전설의 곰 그리즐리를 찾아 나선다. 어느날 해리 일행은 새끼 곰을 우리에 가두는데 성공하지만, 해리는 새끼를 구하려던 어미 곰에게 끌려간다.

함께 다니기 시작한 해리와 곰 사이에는 묘한 정이 싹트게 된다. 스튜어트 래필 감독, 다니엘 클락, 브라이언 브라운, 리처드 해리스 주연.

◆쿠스코?쿠스코!

새로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표방한 작품. 선악의 갈등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설정은 확실히 선녀나 모범생 같은 기존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들과 다르다.

또 만화와 뮤지컬의 공식에만 충실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마치 할리우드 액션물을 보는 듯한 영화적 장면을 수시로 삽입,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디즈니 만화 비디오를 달고 살다시피 하는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 관객들도 크게 웃을 수 있는 영화.

하지만, 날카로운 눈을 가진 관객이라면 권선징악의 교훈이나 평면적 인물, 특징이 거세된 지역문화 등 디즈니 만화의 고질적인 결점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2001 용가리

1999년 여름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가 일부 수정을 거쳐 재개봉한다.

제작사에 따르면 30억원을 들여 80% 정도 다시 손을 댔다. 지루했다는 평을 받은 도입부를 대폭 간소화하고 조악하기 짝이 없었던 연합방위사령부의 모습도 그럴싸하게 '업 그레이드' 시켰다.

또 용가리는 전편에 비해 훨씬 움직임이 많아졌고 용가리의 탄생에 얽힌 얘기 등도 보다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다.

어린이 관객을 위해 100% 우리말 더빙까지 했다. 하지만 아무리 바꿨다고는 해도 용가리는 용가리다. 제작진의 의도마큼 달라졌다는 인상은 주지 못한다는 평이 지배적.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1/17 14:27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