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돌아앉은 돌부처'

안기부 비자금 사건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정국이 설 연휴를 지나면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연휴 직후 있은 1월27일의 총무회담에서 여야는 2월5일부터 국회를 가동키로 합의했다.

국회 정상화 합의에는 명절 귀향활동에 나섰던 의원들이 전해온 '싸늘한 민심'이 촉매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연휴기간 중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이야기는 "정치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원성에 가까운 힐난이었다.


정쟁(政爭)에 신물 난 민심

서울의 한 젊은 초선의원은 "지역 어른들을 찾아뵈었는데 덕담이라고 하시는 말씀이 '당신은 다른 정치인들 하는 짓을 배우지말라'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정치인이 욕먹는 직업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민심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낭패스럽다"고 했다.

재래시장을 주로 둘러본 서울 강서을의 민주당 김성호 의원은 "야당하고 싸움을 하더라도 경제나 살려놓고 하라"는 충고를 들어야 했고 송파을의 같은 당 김성순 의원은 "잘하는 정치는 관두고라도 제발 조용하기나 했으면 좋겠다"는 멸시에 가까운 하소연을 들었다.

한나라당 김부겸(경기 군포) 의원 역시 "가계 살림은 어려운데 정치인끼리 싸움만 하고 있다고 질책해 민망했다"고 털어놨고 같은 당 오세훈(서울 강남을) 의원은 "손해를 보더라도 협조할 건 협조하라는 주문이 많았다"고 말했다.


의원이적, 장난하나?

민주당 의원 4인의 자민련 입당에 대해서는 대체로 비판여론이 높았지만 비판 강도와 시각에서 지역별로 다소 차이를 보였다. 한나라당 허태열(부산 북ㆍ강서을) 의원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 정신나간 행태 등 인신공격성 욕설이 쏟아질 정도"라며 영남 지역의 악화된 민심을 전달했다.

민주당 의원이 전하는 여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충남 서산ㆍ태안의 문석호 의원은 "자민련 지지층은 별 말이 없는 반면, 중립적 성향의 사람은 '장난하는 것 아니냐',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 등 비판일색"이라고 말했다.

전남 나주의 배기운 의원 역시 "'꼭 그 방법밖에 없었느냐'고 반문해 오는 사람이 많아 사정을 설명하느라 곤욕을 치렀다"고 했다.

반면 자민련 정우택(충북 진천ㆍ괴산ㆍ음성) 의원은 "야당 성향 유권자들은 '그렇게까지 했어야 하나'라는 비판적 시각을 보인 반면 지지자들은 교섭단체 구성을 위한 불가피성을 이해하려는 상반된 시각이 혼재한 가운데 지지자들이 더 많았다"고 말해 약간의 편차를 보였다.

전남 출신의 한 민주당 당직자 역시 "야당이 오죽 발목을 잡았으면 그렇게 했겠느냐는 동조론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기부 비자금 사건, 여야 큰 편차

여야간에 가장 큰 편차를 보이는 부분이다.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들은 한나라당 강삼재 의원에 대한 불구속기소로 사건이 흐지부지되는데 대한 불만이 높았다고 전한 반면 한나라당 의원들은 '야당 말살음모'라는 비난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박상규 사무총장은 "정치인은 조사하지 않겠다는 검찰 발표로 '또다시 용두사미가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높았다"면서 "'말단 공무원은 30만~40만원만 횡령해도 구속되는데.'라는 비난도 적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배기운 의원은 "이번 사건을 지난 총풍, 세풍 사건 때처럼 흐지부지 끝냈다간 여당이 경을 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다"고 말했다.

영남출신 한나라당 의원들의 얘기는 전혀 딴판이다. 권오을(경북 안동) 의원은 "이번 사건은 '정치적 음해'라는 것이 지역민의 인식"이라며 "지역구에서는 '여당과 대화하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민심이 떠났다"고 했고 주진우(경북 고령ㆍ성주) 의원은 "대통령이 TV에 나오면 꺼버릴 정도로 반DJ 정서가 극에 달했고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강도높은 투쟁을 주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도권 출신 의원은 비판여론을 상당부분 인정했다. 남경필(수원 팔달) 의원은 "일부 주민은 '(강삼재 의원이)검찰에 나가 떳떳하게 조사받은 다음에 여당을 공격하라'는 주문을 했다"고 전했고 안영근(인천 남을) 의원은 "지지자나 당원들 중에도 강 의원이 당당하게 조사받는게 낫다는 주장이 많았다"고 말했다.


"대북정책성과 어느정도 인정"

민주당 김성순 의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며 "'퍼주기만 한다'며 정부의 대북정책에 비판적이던 사람도 이제는 햇볕정책의 성과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취임 초기 호남권의 강력한 반발을 겪었던 민주당 김중권 대표의 인기 상승도 주목할 부분.

호남 출신의 한 민주당 의원은 "김 대표 취임 후 민주당이 여당다운 여당이 돼 가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와 기대가 상당했다"고 전했다. 강창희 전 자민련 부총재의 탈당에 대해 자민련 김학원(충남 부여) 의원은 "소신있는 행동이란 의견과 당의 혜택을 본 사람이 그럴 수 있느냐는 의견이 엇갈렸다"고 전했다.


민심 해석, 총론은 일치 각론은 제각각

여야 공히 '체감 민심'이 매우 좋지 않다는 데는 견해가 일치했지만 지금이 최악의 상태인지, 회복국면인지를 놓고 해석을 달리 했다.

민주당은 새해 들어 주식경기가 활황세로 돌아서는 등 최악은 벗어났다고 주장한 반면 한나라당은 "지금 민심은 폭발지경"이라고 주장, 민심조차 정략적으로 해석하려든다는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민주당 박상규 총장은 "경제에 대한 국민의 심리적 위축상태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주식시장이 반등되는 등 체감경기가 좋아지고 있어 국민의 표정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정 연수원장은 "상당수 국민이 주식시황을 경제활성화의 지표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면서 "최근 주가지수가 올라가면서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성순 의원 역시 "적어도 지난 연말에 비하면 매우 좋아진 상태"라고 했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민생과 경제살리기는 뒷전인 채 야당 때려잡기에만 혈안이 돼 있는 현정권의 무도함을 국민은 꿰뚫고 있었다"며 "한마디로 민심은 폭발직전이었다"고 주장,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노원명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1/01/30 18:24


노원명 정치부 narzi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