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증시밀어주기, 이번에는 성공할까?

'최민식이 전도연을 찔렀다.' 영화 '해피 엔드'는 결론만 보면 제목과 달리 비극이다. 한 분석가는 "지금 증시가 '해피 엔드'를 촬영중"이라고 했다. 주연은 정부와 개인투자자가 맡고, 시나리오의 결론은 아직 미완성인 상태.

그러나 그는 실제 영화와 같은 장면, 정부(전도연)의 배신과 개인(최민식)의 복수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정말 증시의 해피 엔드는 어려운 것일까.

지난 연말 국내 20여 증권사들은 하나같이 '1~3월 고전'을 예상했다. 경기가 바닥을 찍을 하반기에나 상승을 기대할 수 있고 연초까지는 지난해의 신용경색 악재가 증시를 누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증권시장은 언제나 그렇듯 전망과는 따로 움직였다. 3분기 급등장이 일찍 찾아온 것이다. 서울 테헤란로에서 부티크를 운영하는 전직 증권맨은 "증시는 이유없이 오를 때가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급하게 움직여 알고 지내는 큰손들은 (매수)준비도 못했다"고 전했다.

신년 벽두에 미국의 0.5% 포인트 금리인하와 정부의 부양책이 잇달아 터지면서 분석의 변수가 한꺼번에 바뀌자 당황한 분석가들은 '유동성 장세'란 이름을 붙여 전망을 수정했다.

그렇지 않고 고집스레 증시에 경고장을 흔들던 한 신통력 높은 분석가는 회사측의 강요로 입을 다물어야 했다. 여기까지가 설 전의 상황이다. 설 연휴가 끝나자 증시는 제자리 찾듯 급락했고 전망은 '유동성 장세의 마무리'란 비관으로 돌아왔다.


외국인 순매수가 급등락의 주연

증시가 이처럼 예상에 없던 급등락을 연출할 이유는 어디서 찾아질까. 먼저 주인공은 분석의 사각지대에 있는 외국인이다.

이들은 연초 보름간 2조5,000억원이 넘는 주식을 순매수했다. 돈이 없는 증시에 달러가 흘러들자 종합지수와 코스닥지수는 400과 40이란 '4'자를 눈앞에 두고 있다가 각기 600선과 80선을 넘었다.

그러나 이들이 왜 사고, 자금의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가능성과 이론(異論)만 남아 있다. 매수배경은 한국증시의 저평가, MSCI지수비중 조정에 따른 선취매 따위가 제시됐다.

보다 중요한 자금성격은 장기, 단기가 관건. 의견은 '새 돈(신규펀드의 유입)-헌 돈(기존 펀드내의 투자)', '엔케리 자금(제로금리인 일본에서 돈을 빌려 한국에 투자)- 엔케리의 시간적 불가능(증시가 상승을 알고 미리 돈을 빌린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 '물타기(작년 주식평가손 약30조원을 만회하기 위해 것)-단기차익 추구(낙폭과대 또는 대형 호재를 예상한 선취매)' 등등 분분했다.

일단 금감원 자료에는 '장기 80%, 단기 20%'로 나타났지만 장기자금도 일부는 단기적 성격이 짙어 장ㆍ단기 자금이 혼재돼 있다는 쪽으로 정리되고 있다.

사실 최근 증시에서 외국인보다는 정부가 더 큰 화두다. 1월장에서 '정부정책에 맞서지 말라'는 증시격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외국인과 미국 금리인하가 시동을 걸었다면 정부는 여기에 쉼없이 기름을 부었다. 만기채권의 산업은행 80% 인수, 연기금펀드 추가조성, 벤처지원 등 거의 매주 부양책을 내고 있다. '주당 1건의 호재 발표예정'이란 말까지 돌고 있다.


시중자금 증시로 몰아준 정부정책

정부는 증시 밖에서 시중자금을 증시로 몰아주는 정책을 계속했다. 공공요금과 물가인상은 하반기로 모두 미뤘고 인하를 유도한 예금금리는 5%대에 임박해 있다.

1억원을 은행에 넣으면 세금 떼고 한달에 33만원 정도의 이자 밖에 받지못하자 은행으로 향하던 시중자금은 멈칫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우량채권에 돈이 몰리고 있지만 이마저 끊기면 돈은 증시 외에는 달리 갈 곳이 없는 상황이다.

부동산으로 돈이 이동할 수도 있다는 예상은 가능성이 적다는 지적이다. 최근 부동산이 주가가 올라야 따라오르는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또 '대중경제학'에서 인플레는 최대의 적이고 보면 현실성은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정부의 증시 밀어주기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윈-윈 게임이 될지에 대해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 주변에선 증시 만능론도 유행하고 있다. 증시만 올라가면 구조조정이나 만기채권 문제 등 경제현안이 한꺼번에 풀린다는 것이다.

실제 증시부양은 기업에 대한 무형의 지원 성격이 짙다. 연말이후 기업들은 정부의 방관에 따른 환율급등, 채권만기연장, 금리인하로 보이지 않는 엄청난 혜택을 입었고 여기에 증시까지 올라 직접금융시장에서 자금까지 조달할 수 있다면 부실을 일거에 털어낼 수 있다.

대우증권 신성호 투자전략부장은 지금의 상황을 1972년, 1998년에 비유했다. 1972년에 박정희 대통령은 사채동결이란 초헌법적 조치와 함께 금리를 대폭 인하해 기업의 부채비율 400%를 200% 밑으로 떨어뜨렸다.

증시도 100% 이상 급등했다. 환란으로 인한 초고금리가 기업의 발목을 잡던 1998년에도 정부는 금리인하로 시중자금을 증시로 유도, 지수는 2배 이상 폭등했다.

기업들은 이를 기회로 증자를 통해 개인의 돈이 대부분인 시중자금 약 35조원을 끌어들여 부채비율을 깎아내렸다. 신 부장은 "결국 지금 정부는 이같은 방법을 '3탕'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개인 반짝장세에 배신 "이젠 안속아"

이런 증시부양은 시중자금을 쥔 개인의 참여를 담보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두번의 경우 정부의 의도는 성공했으나 개인은 증시의 반짝장세 이후에 폭락 속에 배신을 당해야 했다.

1972년의 경우 기업들은 조달한 자금을 기업활동과는 거리가 먼 부동산 등에 투자했고, 1년 뒤 오일파동이 일어나자 정부에 다시 손을 내미는 처지가 됐다. 1998년의 증시폭등도 작년에 폭락, 결국 개인들은 손해만 키웠다.

이런 학습효과 덕분인지, 아니면 작년 증시공황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인지 개인투자자들은 이번에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개인들은 1월에 거래소에서만 1조5,000억원 이상 주식을 팔았다. 여기에 미수금을 포함할 경우 시중자금이 유입되는 창구격인 고객예탁금의 1월 증가분(약 2조원)은 미미한 액수에 그치고 있다.

물론 폭락과 함께 조정에 들어간 현재 주식시장은 짧게 끊어 분석하면 어렵지만 장기적으론 오를 것이란 전망이 대부분이다.

주가의 바닥은 지나왔고, 또 1998년의 유동성 장세와 비교해 큰 그림을 그린다면 장기적인 매수시점이 다가온다고 할 수 있다. 개인들이 이번에도 증시부양을 믿고 돈을 증시로 유입시킬 개연성은 남아 있는 셈이다.

그러나 동원경제연구소의 정동희 책임연구원은 시기나 전략상 정부의 이번 밀어부치기는 무리수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온갖 약을 써도 증시가 뜨지 않을 경우 호재에 굼뜬 주식시장의 내성만 키울 수 있고, 미뤄둔 악재가 쏟아질 6월 이후에 사용할 부양책이 별로 없다는 게 맹점이라고 꼬집었다.

비록 이번에도 개인투자가의 주머니 털기는 가능할지 모르나 큰 휴유증으로 인해 이들이 '최민식'배역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태규 경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1/01/30 18:52


이태규 경제부 t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