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흑번무적(黑番無敵)… 신포석시대 활짝

흉내바둑은 오청원의 탐구심과 승부기질이란 두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먼저 탐구심은 '이렇게 흉내바둑을 두면 그 끝은 어떻게 될까' 라는 식의 궁금증을 직접 실행한 뒤 확인하는 절차이고, 기질은 바로 기다니라는 거장에게 이길 도리가 없으니 이런 '변칙'으로 판을 좁혀간 다음 좁혀진 전장에서 싸우겠다는 심사이니 승부사다운 면모라 하겠다.

기다니와의 흉내바둑은 62수까지 이어졌고 그 이후 기다니의 완착을 등에 업고 앞서가는 바둑을 둘 수 있었다. 그러나 후반 들어 오청원 역시 실수를 범해 결국은 3집을 지게 된다.

대국이 끝났을 때는 전차도 끊어진 심야였고 기다니와 오청원은 기원에서 밤을 새며 바둑 이야기로 동트는 새벽을 맞이한다. 그때 기다니와 오청원은 맘을 터놓는 사이로 발전한다. 어쨌든 오청원이 일본에 건너온 지 2년이 넘도록 기다니에게는 흑을 들고도 좀체 이기질 못했다.

1930년 오청원은 건강이 회복되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춘계 승단시합에 참가한다. 당시 3단의 신분이었으나 춘계승단대회에서 7승1패를 기록하고, 추계대회에서는 7전전승을 기록, 1위로 4단으로 승단한다. 당시 승단시합은 지금으로 치자면 타이틀전에 버금갈 진검승부였으니 오청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자료가 된다.

1931년 승단대회에서는 춘계 6승2패, 추계 8전전승. 다시 1932년에는 춘계 8전전승, 추계 7승1패로 당당히 5단까지 다다른다.

오청원은 훗날 회고록에서 1928~1932년에 가장 열심히 공부한 해였을 것이라고 썼다.

어찌 타고난 재능이라고 해서 수삼년의 노력으로 오늘날의 영광의 궤적을 그릴 수 있으랴. 아마도 그 회고는 열심히 공부한 다음해인 1933년 운명처럼 신포석을 오청원이 창안한 해라는 것과 연관이 있을 듯싶다.

다만 그가 승승장구하던 그즈음엔 기력에 비해 저단인 상황. 따라서 그가 흑을 들고 둘 때가 많았다는 점도 관계가 있다. 오청원은 흑으로 공부할 땐 혼인보 수책(秀策), 백을 들었을 때 공부는 수영(秀榮)의 시합바둑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 즈음엔 아무래도 흑차례일 때가 많았으므로 견실한 수책류를 주체로 하여 흑번무적(黑番無敵)의 시절을 만들기도 한다.

특히 1932년 시사신보에서 주최한 승발전(이기면 계속 두는 연승방식)에서 무려 18연속승을 기록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건 1928~1932년에 오청원은 무려 9할의 승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비교하자면, 한국의 이창호가 프로무대에서 가장 활발히 성적을 올릴 때도 9할은 이르지 못했다. 단 일년의 성적도 9할이 된 적은 없다. 그러나 오청원은 무려 6년간의 통산 성적이 9할이었으니 그 기재에 대해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오청원을 말하면서 빠질 수 없는 신포석은 1933년 싹을 보인다. 오청원과 기다니와의 10번기에서 뚜렷한 징후를 보이는데, 이 10번기는 오청원의 승부바둑 10번기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기다니와의 10번기에서 오청원은 흑차례일 때 당시로는 상상하기 힘든 4연성 포석을 선보인 바 있고, 기다니도 뚜렷하게 귀보다는 중앙의 세력을 중시하는 타법으로 달라지고 있었다.

달라지고 있다는 이 대목이 중요하다. 젊은 두 기사는 그런 혁신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다. 기다니와 오청원의 신포석시대는 두 젊은 청춘기사의 개인의 시대를 넘어 바둑의 청춘시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신포석시대는 청춘의 창조와 모험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바둑계 자체를 선연하고 화려하게 재창조시킨 신풍이었다.<계속>

[뉴스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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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1/01/30 18:56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