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가슴 찡한 슬픔과 웃음이 밴 인생사

■ 라이프

코믹 연기에 능한 흑인 스타가 적지 않다. 따발총처럼 쉬지 않고 쏘아대는 엄청난 입심과 분장술로 커버하는 일인다역의 연기로 유명한 에디 머피와 마틴 로렌스를 대표주자로 꼽을 수 있겠다.

에디 머피는 <비버리힐스 캅> 1, 2편으로 인기를 얻어 최근 <닥터 두리틀>과 <너티 프로페서> 1, 2편으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생명이 긴 배우. 마틴 로렌스는 윌 스미스와 공동 주연한 <나쁜 녀석들>과 팀 로빈스와 함께 한 <낫씽 투 루즈>로 인기를 얻어 <경찰서를 털어라> <빅 마마 하우스>에서는 단독 주연으로 우뚝 섰다.

혼자서도 능히 영화를 휘저을 수 있는 재주꾼이 두명이나 출연하고 있으니 얼마나 시끄러울까. 그러나 뜻밖에도 이 두 코미디 스타는 멋모르고 실수를 저지른 경박한 젊은이에서부터 궁시렁거리며 노년을 함께 하는 등 굽은 노인까지, 진지한 연기에 도전했다.

테드 데미 감독의 1999년 작 <에디 머피의 라이프:Life>(15세 이상가, CIC 출시)가 바로 그 영화. 우리말 제목에는 에디 머피를 내세웠지만 극중 두 사람의 비중이나 연기력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의 막상막하.

죄수번호 4316번의 레이 깁슨(에디 머피)과 4317번의 클로드 뱅크스(마틴 로렌스)를 묻기 위해 땅을 파는 흑인죄수들에게 휠체어를 탄 노인이 두 죄수의 인생사를 들려준다.

1932년의 뉴욕 할렘가 스핑키 클럽. 은행에 취직하여 첫 월급을 탄 클로드가 애인에게 한턱을 쓰다 화장실에서 소매치기 레이에게 지갑을 털린다.

이 때문에 소란이 일자 클럽 주인인 갱 두목이 두 사람에게 밀주 배달을 시킨다. 배달을 마치고 바로 돌아왔으면 좋았을텐데 그만 두둑한 현찰을 쥐게 된 레이가 도박판에 끼어들고 기다리다 못한 클로드가 여급과 놀아나면서 이들의 인생은 나락으로 굴러떨어진다.

흑인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친 마을 사람과 보안관의 음모로 살인 누명을 쓰고 미시시피 주립교도소에 수감된 두 사람. "교정 불가능한 자만 수용한다"는 8번 캠프에 들어가 길 닦기, 도랑 치우기, 농사 짓기 등의 노동으로 일생을 보내게 된다.

서로를 원망하고, 의지도 하고, 교도소 환경 개선을 위해 야구를 도입하고, 함께 탈출을 계획하기도 하며 65년을 옥살이하는 두 친구.

그동안 바깥 세상은 태평양 전쟁을 치르고 마틴 루터 킹의 'I Have a Dream'이란 유명한 연설이 있었고, 무하마드 알리의 권투, 엘비스 프레슬리의 인기, 닉슨의 대통령 선서 등으로 빠르게 바뀌어간다.

기력이 쇠한 두 친구가 맘 좋은 소장(네드 비티)을 만나 정원사와 하인으로 일하다 그들을 감옥으로 보낸 보안관과 맞딱뜨리고, 화재로 인한 탈출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는 그 어떤 감옥 영화보다 극적이고 감동적이다.

<쇼생크 탈출>이나 <그린 마일>보다 규모가 작고 덜 유명하기는 하지만 이들 영화보다 더 가슴을 울린다고 장담할 수 있다. 코미디 스타가 출연한 만큼 시종 웃음을 쥐고 있기는 하지만, 슬픔 속에 배어나는 웃음이어서 여간 찡한 게 아니다.

65년을 아우르는 연기를 위한 분장이 만만치 않았을텐데, 릭 베이커의 솜씨는 꾸민 태가 나지 않는다. 릭 베이커는 <킹콩> <스타워즈>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그레이스톡 타잔> <문워커> <그렘린> <혹성탈출> 등에 참여한 특수 분장계의 일인자. 감독 테드 데미는 <레프> <사랑의 금고털이> <뷰티풀 걸>로 우리에게 소개된 바 있다.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1/01/3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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