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가짜 추방' 전면전 돌입

WTO 가입 앞두고 지재권 보호 박차

중국은 '가짜 천국'이다. 담배의 예를 보자. 베이징(北京) 시내만 해도 웬만한 가게에는 가짜 국산ㆍ외제담배가 버젓이 진짜와 함께 진열돼 있다. 겉모양만 봐서는 진위를 판별하기 어렵지만 맛은 차이가 있다.

재미있는 점은 가짜의 값이 싸다는 것. 진짜와 가짜를 함께 진열해놓고 가짜를 싸게 파는 것은 왜 그럴까. 간단하다. 파는 사람뿐 아니라 사는 사람도 이미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가짜와 함께 생활하는데 익숙하다. 오죽하면 '핵폭탄과 미사일을 제외하면 모두 가짜가 있다'는 말이 회자할까. 최근 당국에 적발된 가짜의 사례를 보자. 1월 초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서는 라면상자에 위조 인민폐 11만2,500위엔(1,500만원)을 담아 철도편으로 운반하던 범죄조직원이 붙잡혔다.

열차 출발지인 쿤밍(昆明)에 대규모 위폐제조공장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단서는 잡지 못했다.

가짜 군인과 군용차량이 가짜상품의 수송에 이용되는 웃기는 사례도 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안후이(安徽)성 공안은 지난해 12월8일 가짜 담배 395상자를 운반하던 군용차 6대를 적발했다. 수사결과 군용차와 여기에 타고 있던 군인 12명은 모두 가짜였다.

이들은 1997년부터 가짜 군용차 8대와 조직원 20여명을 동원해 전국 각지로 가짜 담배를 수송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통상 공안이 군용차는 검문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세계적인 가짜 원산지 인식

중국의 가짜 상품은 단순히 국내의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중국은 이미 세계적으로 '가짜의 최대 원산지'란 오명을 갖고 있다.

미국 세관에 따르면 1998년 단속된 중국산 위조상품은 636건에 2,892만5,681달러 상당이었다. 세관의 압수품 중 중국산이 차지한 비율은 38%에 달했다.

전년의 중국산 압수품은 1,449만 달러 상당이었고 중국산 비율은 27%였다. 갈수록 중국산 가짜 상품의 덩치와 비율이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 세관은 원산지로 따지면 중국산 가짜가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홍콩이나 제3세계 국가의 명의로 들어오는 가짜 중 상당수가 중국에서 제조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짜는 지적재산권을 침해하고 유명 상표를 도용한, 이른바 모조품을 말한다. 가뜩이나 값싼 중국산 제품이 로열티를 물지 않음에 따라 더욱더 헐값에 내수용, 수출용으로 제조되고 있는 셈이다.

모조품은 거의 모든 공산품을 망라하고 있다. 복제 불가능한 기술을 내재하지 않은 상품이 중국에 수출되면 한달 이내에 모조품이 시장에 나온다는 것은 한국의 제조업자에게도 상식이 돼있다. 미중 무역마찰에서 지적재산권 침해 문제가 단골메뉴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올해부터 전면적인 가짜 추방 전쟁에 돌입했다. 물론 이전에도 가짜 추방운동은 있었다. 중국에서 '가짜와의 전쟁'(打假)이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 1995년 이래 매년 분야별 목표를 정해 가짜 추방을 외쳤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해외의 지적재산권 보호 압력에 장단을 맞추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중앙정부의 의지와 범위가 종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중앙정부 강력한 가짜추방 의지

중국 정부가 이같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은 지난해 말 확정된 제10차 5개년계획(10ㆍ5계획)에서다. 중국 정부는 10ㆍ5계획의 주요 방침 중 하나로 '제품 품질의 우량화 보증'을 내세우고 이를 위해 가짜상품의 제조ㆍ유통을 엄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면서 기술개발 의욕을 떨어뜨려 기업 구조개혁을 방해한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중국 정부는 가짜 추방을 경제질서 정상화를 위한 필수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주룽지(朱鎔基) 총리도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이와 함께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따라 더욱 강화될 외국의 압력에 사전 대응하려는 의도도 갖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유행하는 풍자 중 하나는 '가짜 상품과 중국이 함께 WTO에 가입한다'는 것. 일부에서는 'Made in China'가 세계시장에서 '가짜'와 동일시되고 있는 현실에 크게 우려하고 있다.

1월6일 광둥(廣東)성 심천에서는 공안부 주최로 '가짜 추방, 우량품 보호'(打假保優)에 관한 비밀토론회가 열렸다.

지난해 말에 이어 10일도 안돼 두번째 열린 것이다. 회의 후 리추안칭(李傳卿) 전국가짜추방반 주임 겸 국가품질기술감독국 국장은 "가짜상품 추방을 공안부의 최우선 임무로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가짜와 전면전쟁을 벌이는 것은 중국의 신용을 지키는 것이자 WTO가입의 최후 관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호응해 최고인민검찰원(대검)은 가짜상품 제조 등의 범죄를 묵인하거나 비호하는 공무원을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가짜상품 제조업자가 지방정부 관리와 결탁해 있다는 점을 감안한 방침이다.

중국 최대의 가짜 상품 도매시장이 있는 광둥성 이우(義烏)시는 이같은 상황을 압축하고 있다. 3만여개의 도매상이 10만여종의 각종 상품을 취급하고 있는 이우시는 중국 최대의 물류중심 중 하나다. 매일 20만명 이상이 이곳에서 2,000톤 이상의 제품을 구입해 중국 각지로 내다 판다.

1996년 이우시의 교역량은 22억 달러에 달해 1991년 이래 연평균 83%에 달하는 성장을 거듭했다. 성장세로 볼 때 지난해 교역량은 3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치는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이 실현한 총이익과 비슷한 수준이다.

문제는 여기서 도매되는 샴푸와 비누 등 일용품의 90% 이상이 가짜이거나 상표를 도용한 제품이란 것. 다국적 기업들은 이우시 시장에 물건을 공급하는 제조업자 및 도매업자와 지방당국이 조직적으로 결탁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중 무역협상 과정에서 중국이 누차 위조상품 단속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앙정부에서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지방정부는 시늉만 할 뿐 단속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배경에는 업자의 뇌물과 지방정부의 비정상적 세수확대 욕심이 깔려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도 가짜 단속 자구책을 펴고 있다. 지난해 3월 코카콜라와 아디다스, 마이크로소프트 등 다국적 기업 28개사가 모여 '외국기업 상표보호 위원회'를 출범시킨 것.

현재 57개사로 회원사가 늘어난 이 위원회는 지난해 수백만 달러를 투입해 수백 차례에 걸쳐 가짜상품 단속 활동을 벌였다. 지난해 말에는 일부 도매상인이 위원회의 고발에 따라 구속됐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 정부가 다국적 기업 위원회의 행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영 인민일보는 최근 '외국기업 상표보호 위원회'의 가짜상품 단속 활동이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태도는 가짜 추방이 단순한 국가 자존심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중국 정부의 문제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1/30 19:48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