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스타열전(46)] 미디어링크 하정률 사장(上)

벤처가 뭔지를 안다.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도 실전으로 배웠다. 그리고 치밀한 계획과 전략을 바탕으로 목표를 향해 쉴새 없이 밀어부친다. '준비된 벤처기업가'로 시작해 이제는 "고지가 바로 저기"라며 성공예감 속에 살아가는 미디어링크의 하정률 사장. 그는 벤처에 관한 한 대단한 독설가다.

그는 만나자마자 대뜸 "다들 아우성인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 정도 대비도 없이 어떻게 벤처기업을 하겠다고 나섰는지"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벤처시스템은 전 직원이 리스크(위험)를 같이 안고 열심히 일하되 성공하면 그 과실을 돌려받는 시스템인데 우리 벤처는 무늬만 벤처인지 머니게임에만 몰두하다 보니 조금만 어려워도 위기라고 난리들입니다."

난리는 실은 하 사장의 사무실 밖에서 더 느껴졌다. 첫 인상이 깔끔한 여느 벤처기업과는 달리 미디어링크는 들어서는 순간 하도 소란스러워 "웬 장터?"라는 게 솔직한 느낌. 다른 말로 하면 활기에 넘친다.

가운데쯤 자리한 사장실 안에서도 직원들이 오가는 발자국 소리, 전화벨 소리, 답답하다는 듯 열심히 설명하는 목소리 등 소란스런 바깥 분위기가 눈에 보이는 듯 하다. 사장실도 책상, 컴퓨터, 회의용 탁자 정도만 갖추고 있을 뿐 번듯하다는 말과는 거리가 있다.

특이하다면 회의용 탁자 위에 깔려있는 중국 지도다. 그는 "사무실이 번듯하면 투자를 받기에나 좋지, 일하기는 별로죠. 투자받는 것이라면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으니 굳이 사무실을 거창하게 꾸밀 필요가 뭐 있어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LAN, ATM 스위치 등 네트워크 장비업체

그의 말은 사실이다. 그는 원래 벤처기업의 가능성을 보고 공격적으로 투자하던 벤처캐피탈리스트 출신이다. 한국종합기술금융(KTB)에서 9년간 성미전자, 스탠더드텔레콤, 터보테크 등 30여개의 중견 벤처기업을 일구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네트워크 장비 생산업체의 사장으로 변신해 3년만에 국산 네트워크 업체에서 입지를 확보했으니 큰소리칠만도 하다. "우리의 상대는 세계적인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시스코시스템스"라고 할만큼 미디어링크는 컸다.

미디어링크는 LAN 스위치 개발(1998년 7월)을 시작으로 비동기 전송방식(ATM) 스위치, ATM 교환기를 통한 초고속인터넷서비스 시스템(MPLS), 기가비트 이더넷 백본 스위치, 초고속인터넷접속망 장비인 소용량 DSLAM 등을 차례로 개발했고 2000년 7월에는 청와대와 중앙청사, 대전 정부청사를 잇는 정부 영상회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주력 아이템은 LAN과 ATM 스위치지만 ADSL장비, 케이블모뎀, 스위치 장비를 기존의 ATM스위치 장비군과 종합적으로 구성, 유선은 물론 무선 분야에서도 초고속 인터넷 환경을 지원할 계획이다.

지난해 매출규모는 300억원, 순익 30억원. 그러나 개발비는 아직도 전체 매출액의 20~30% 수준에 달하고 있다. 하 사장은 "국내 ATM스위치 시장은 현재 시스코, 루슨트, 3Com 등 세계적인 통신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으나 새해에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KTB근무로 벤처경영자산 습득

그는 벤처업계의 1세대에 속한다. 연세대 전자공학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공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그가 벤처 자체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87년 말이었다.

벤처의 개념마저 생소할 때였다. 우연한 기회에 이진주 교수(현 테크노 경영대학원장)의 기술개발론 강의를 듣다가 벤처의 마력에 빠져버렸다.

"자본주의의 구태에 빠져있다가 참신한 벤처기업 이론에 충격을 받았죠. 그동안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집단이 발전하는 성장론에 젖어있었는데 개인과 조직, 국가가 모두 '윈윈'하는 이론이니 얼마나 매력적이었겠습니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매력적이어서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결심했지요."

그러나 KAIST에서 나와 한국 벤처캐피털의 효시라 할 수 있는 KTB에 심사관으로 입사하자 "공대를 나온 녀석이 돈 장사를 하느냐"며 집안 전체가 반대했다. 그때의 결정에 대해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눈에 뭐가 씌였다고 할 수 밖에 없다"고 그는 답변했다.

다만 속마음엔 돈도 벌고 경험도 쌓아 벤처다운 벤처기업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오기가 있었다고 했다. 지도교수에게도 "제대로 된 벤처기업을 하나 만들테니 두고보라"고 큰 소리쳤다.

그의 벤처 실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후 9년간 그는 50여개 중소기업을 담당하며 기업의 경영성과에 따라 일희일비했다.

KTB근무로 남은 것은 확고한 벤처 마인드다. "일반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젊은 사람이 하면 무조건 벤처고, 첨단 IT업종이면 벤처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벤처 환경의 정비를 위해 법적으로, 정책적으로 설정한 벤처 개념은 다를 수 있지만 원래 벤처란 함께 노력해서 성공한 뒤 과실을 나눠가질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 기업입니다. 그 방식은 주식을 나누거나 스톡옵션을 주는 거지요."

그는 또 KTB에서 중소기업의 운명이 어디에서 성공과 실패로 갈라지는지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중소기업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파이낸싱의 노하우와 테크닉도 배웠다.

실패 연구도 철저하게 했다. 해외투자를 통해 선진국 벤처의 성공전략을 어깨 너머로 배웠다.

"사업계획서 작성에서부터 파이낸싱, 운영 및 성장 전략 작성, 기업운영, 위기대처 방법 등 모든 것을 마치 내가 경험하듯이 배웠어요. KTB에서 맡은 50여개 업체중에서 6개 업체는 회사설립에서 부도후 청산까지 직접 관여했습니다. 그때는 지지리도 복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엄청난 경영자산이지요."


일하는 방식, 아직 선진국 수준에 못미쳐

그렇게 배운 하 사장의 벤처비즈니스는 이렇다. "벤처비즈니스는 일하는 방법에서 일반 중소기업과 완전히 달라야 합니다. 우리(한국)는 기술 수준이나 사람은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데 일하는 방식에서 아직 아날로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한마디로 방법론의 부재인데 방법론은 시스템과 마케팅, 비즈니스 전략 등을 모두 합친 개념이지요. 그게 경쟁력을 갉아먹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도 7-8년마다 벤처의 호ㆍ불황주기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보다 10여년 앞서 시작한 미국의 벤처산업도 열풍이 식으면 정부 차원에서 제도보완 조치가 나왔고 벤처 부양을 위한 정책이 입안됐다고 한다.

어디에나 벤처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곳에는 황량함만 남기 마련이다. 그 황량함 속에서 굳건히 뿌리를 내리는 기업이 제대로 된 벤처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하 사장은 "100명 규모의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싸워 이기는 전략과 조직을 갖춘 벤처기업을 만들어 보겠다"며 회사를 세웠다. 1997년 초 IMF위기가 몰려오기 직전이었다. <계속>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1/30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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