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서더스 코리아] 이민, 아무나 못 간다

까다로운 자격요건, 전문기술·재산 갖춰야

오는 2월 말 캐나다로 이민가는 조석진(45)ㆍ송인도(40) 부부에게 지난 3년여는 악몽과 같았다.

국영기업체 사무직으로 일하던 조씨는 1998년 이민을 결심하고 이민수속을 신청하면서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냈다. 8개월간의 수속기간중 영어도 배우고 기술도 익히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런데 IMF 여파로 아시아계에 대한 캐나다측의 심사가 강화되고 인터뷰 심사도 필리핀에서 한국 영사관으로 이관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조씨의 수속은 자꾸만 미뤄졌다.

그러기를 근 3년. 조씨 부부는 그간 퇴직금을 생활비와 교육비로 소진하며 숱한 좌절감을 맛봤다. 그러다 지난해 말 어렵게 인터뷰를 통과해 가까스로 이민이 성사됐다.

조씨는 캐나다 현지에서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돼 있지만 '만약 이민이 좌절됐다면 지금 가족은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하면 아직도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희망자 폭증으로 엄격한 심사기준 적용

이민 희망자는 폭증하고 있지만 실제 이민 자격을 갖춘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각국이 전과 달리 엄격한 심사기준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민 선호국인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의 영주권을 얻으려면 '전문화된 기술'이나 '상당한 수준의 재산'이라는 조건 중 어느 하나는 반드시 충족시켜야 한다.

이민국 입장에서는 기왕이면 자국에 보탬이 되는 사람을 추려서 받겠다는 것이다. 사회보장이 잘돼 있는 만큼 행려병자를 받아들여 공연한 재원낭비를 막겠다는 정책이다.

현재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를 끄는 이민 국가는 캐나다다. 1980년대 말까지도 캐나다 이민자 수는 미국의 10%에도 못 미쳤으나 1999년부터는 미국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이민자 총 1만5,307명중 무려 61%인 9,295명이 캐나다로 떠났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한국인의 최대 이민국이었으나 투자이민과 취업이민 절차가 까다로워 연고 이민이 아니면 실제 이뤄지는 경우가 거의 없어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 다음으로는 호주, 뉴질랜드, 아시아 국가의 순이다.

선호도 1위인 캐나다의 이민 자격을 살펴보면 이민이 아무나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캐나다 이민은 투자를 조건으로 하는 사업이민(Business Immigration)과 전문화된 기술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독립이민(Independent Immigration)으로 나뉜다.

사업이민은 50만 달러(약 4억원) 이상의 자산 증명이 필요한 기업이민, 80만 달러(약 6억4,000만원)의 자산증명과 40만 달러를 캐나다에 5년간 투자해야 하는 순수이민, 그리고 예술가나 체육인에게만 허용되는 자영이민으로 구분된다. 자산이 최소 4억원은 돼야 이민 신청이라도 할수 있다는 이야기다.

금전 문제 때문에 요즘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이 독립이민이다. 독립이민은 그야말로 자국의 노동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선별적으로 인재를 뽑는 이민 형태다.

독립이민은 학력, 전문기술의 종류, 경력, 나이, 언어 구사 능력, 거주 적합성, 현지 직업 상황 등 여러 요소의 점수를 종합 평가해 영주권 발급 여부를 결정한다. 110점 만점에 70점 이상이 되야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


장기계획 세우고 영어구사능력 키워야

합격을 좌우하는 요소는 전문 직종의 종류와 영어 구사 능력이다. 캐나다 정부는 자국에 필요한 직종 리스트를 만들어 점수를 부여하는데 기계 전자 화학 농업 화학 항공 같은 엔지니어링 부분이 유리하다.

이밖에 음향기술자, 언어치료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같은 직종에 높은 점수가 부여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직종 분류에 의사와 변호사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의사와 변호사는 현재의 점수 체재로는 영주권을 받기 힘들다.

그래서 의사는 치기공사, 변호사는 일반 관리직 등으로 직급을 낮춰 신청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요즘 인기를 끄는 뉴질랜드도 투자 이민의 경우 최소 100만 달러를 2년간 투자하거나 따로 영어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롭다.

(주)하나이주개발공사의 정충호 이사는 "이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문의전화를 하거나 설명회에 많은 분이 오지만 이중 절반 이상이 자격미달이다.

일부 이주공사의 경우 자격이 안되는 사람의 경력을 허위로 신청해 우리나라 이미지에 먹칠을 하기도 한다"며 "이민은 장기간의 계획을 세워놓고 언어와 특화된 기술을 익히는 작업을 먼저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해외이주설명회에 모인 이주희망자들. 이민에 앞서 특화된 기술과 현지언어를 습득하는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김명원/사진부기자>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2/06 17:24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