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없는 그들만의 전쟁

H.O.T.대 god, SES 대 핑클, 극렬 팬들의 인터넷 설전

이건 전쟁이다. 수십명, 때로는 수백명이 편을 갈라 서로 상대를 헐뜯고 심한 욕설을 퍼붓는다. 때로는 무시무시한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주먹이라도 휘두를 것만 같은 살벌한 분위기다. 자칫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이내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고 묵사발이 되고 만다.

길거리에서의 패싸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원폭력도 아니고 훌리건의 난동도 아니다. 인터넷 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극렬한 가요 팬들간의 설전을 두고 하는 얘기다.

지금 인터넷에서는 '팬들의 전쟁'이 한창이다. 전선은 두 곳이다. 'H.O.T 대 god', 그리고 'SES 대 핑클'이다. 전장은 따로 없다. 웬만한 가요 사이트는 물론이고 방송 3사의 홈 페이지, 각 신문사 인터넷 사이트의 음악 코너마다 상대를 비난하는 팬들의 메시지가 넘쳐난다.

일부 게시판에서는 팬들의 메시지가 숫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문제가 돼 삭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립적인 사이트가 이 정도니 수백여개에 달하는 팬 클럽 홈페이지는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나 혹은 상대 가수를 다룬 신문기사나 방송 프로그램을 문제삼아 글을 쓴 기자나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어 욕설과 협박을 퍼붓기도 한다. 이들은 도대체 왜, 무엇을 가지고 승패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H.O.T 대 god

H.O.T와 god의 팬은 가요계에서 수적으로나 활동력 면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터넷 상에서도 마찬가지. 각종 인터넷 게시판의 70- 80% 이상은 이들이 올린 글들로 채워진다.

인터넷에서는 '에쵸티 팬'(부정적인 의미로는 '빠순이'로도 불린다)과 '져디 팬'(역시 경멸적인 뜻으로 '디져'라고 거꾸로 불리기도 한다)으로 통칭되는 H.O.T.와 god의 극렬 팬은 일반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극도로 혐오한다. 상대가 좋아하는 가수에 대해서는 두말 할 것도 없다.

물론 저마다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다.

하지만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있는 글은 논리를 갖추고 상대가 좋아하는 가수의 약점이나 단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기보다는 무조건적인 혐오나 인신공격, 그리고 육두문자의 끝없는 나열이 대부분이다.

H.O.T와 god의 안티 사이트와 각 방송사 홈페이지 등을 통해 H.O.T와 god 팬이 벌이는 설전의 주요 쟁점을 알아보았다.


◇H.O.T는 표절 그룹이다

"(god가 H.O.T한테)상대가 안되나요? (H.O.T)는 맨날 표절만 하고 일본 사람들 따라하고 다니고.. 적어도 god만한 가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H.O.T 은퇴운동본부, ID 컥)

H.O.T는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가 미국 힙합 가수인 사이프레스 힐의 'Locates'와 'I ain't going out like that'을 교묘하게 섞어붙였다는 의혹을 받은 이래 발표하는 앨범마다 표절시비에 휘말려왔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3집 수록곡인 'We are the future'는 대만 MTV의 '아시아 뷰어스 초이스'라는 경선 프로에 나갔다가 독일 그룹 크라프트베르크의 곡을 표절했다는 판정을 받고 예선 탈락한 일도 있다.

비단 god 팬 뿐 아니라 일반 가요 팬 중에서도 H.O.T의 표절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많다.

H.O.T 은퇴운동본부의 홈 페이지 초기화면에는 아예 1집의 '캔디'(일본 애니메이션 '환타스틱 게임'의 오프닝 곡)에서 4집의 '아이야'(고질라 사운드 트랙 중 'Come with me')에 이르는 십여개의 표절 의혹곡과 원곡이 명시되어 있다.

이에 대한 H.O.T 팬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다. 하나는 박진영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god와는 달리 3집부터 멤버들이 작곡 및 작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

"쵸티는 음악성으로 승부한다는 것을 이번 5집 듣고 많이 느꼈어요. 그런데 져디는 3집이 돼도 누가 작사를 하나, 작곡을 하나."(ID 쵸티저아) 다른 하나는 그야말로 맹목적인 부정이다. "오빠들 표절시비 걸린 거, god도 다른 팬들이 표절이라고 들고 일어서면 표절시비 걸리는 거야."(이상 H.O.T 은퇴운동본부, ID 뭐냐)


◇립싱크

립싱크는 양측 모두에게 민감한 사안이다. 물론 H.O.T와 god 두 팀 모두 립싱크를 한다.

H.O.T에게 립 싱크는 표절과 더불어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부분이고, god 역시 얼마전 KBS의 'god쇼'에서 '관찰'을 립싱크하다 박준형의 어설픈 입맞춤이 들통나 네티즌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그러므로 이들의 극렬 팬에게 "기본적으로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진짜"라는 건 구세대의 잔소리에 불과하다. 다만 립싱크를 얼마냐 하는냐와 라이브도 할 줄 아느냐가 문제가 될 뿐이다.

김태우의 가창력에 힘입어 '촛불 하나', '어머님께' 등을 라이브로 부른 god의 팬들은 "H.O.T는 립 싱크만 한다"고 공격한다. 이에 맞서 H.O.T 팬들은 "댄스 가수에게 립싱크는 필요하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SM기획 이수만 이사의 입장을 그대로 따른다. 무대 위에서의 격렬한 춤을 방패 삼는 것.

MBC 게시판의 일례를 보자. 한 god 팬이 '쵸티가 싫은 35가지 이유'라는 제목으로 "데뷔해서 지금까지 라이브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ID **)고 글을 올리자 당장 H.O.T 팬이 이렇게 응수했다.

"우리는 라이브 안하는 대신 춤을 잘 춘다. 지오디는 립싱크해도 춤이 그게 뭔가."(ID **) 이런 식이다.

또 "솔직히 말해서 에쵸티만 립싱크하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나라 가수 대부분이 립싱크하는데, 에쵸티는 라이브도 한답니다. 도대체 왜 에쵸티만 갖고 그러시나요. 인기가 많은 게 부럽나요?"(SBS, ID hyung 58)라며 H.O.T의 립싱크를 두둔하는 사람도 있다.


◇god는 '육아일기' 때문에 컸다 "너네 재민이 아니었으면 못 떴어. 니네가 재민이를 키운 것이 아니라 재민이가 니네를 키운 거야."(야후, ID ohmyapple) "(god 팬들은)재민이 때문에 뜬 것 가지고 유세하고 다니네. 져디가 재민이를 키웠냐? 재민이가 져디를 키웠지? 그게 뭐냐? 한두살 먹은 애가 30살 먹은 아저씨도 키우고."(야후, ID ekfrl102)

god가 지금과 같은 인기를 얻는데 MBC TV의 '목표 달성! 토요일'의 '육아 일기' 코너가 미친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처음 촬영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10대 사이에서 점차 인기를 얻어가고 있던 god는 수개월에 걸쳐 육아일기를 촬영하는 동안 가히 '국민가수'라고 불릴 만큼 폭넓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또 god가 '꾸밈 없는 인간적인 가수', '고생을 아는 노력하는 가수'라는 이미지를 쌓는데도 육아일기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때문에 일부 H.O.T 팬들은 "어린 아기를 상업적으로 이용했다", "아기 키우기로 가요 대상을 탔다"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에 대해 god 팬들은 육아일기의 공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god가 음악적 재능과 노력을 겸비했기 때문에 육아일기도 성공할 수 있었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기가 막히네요. 우리 오빠들이 재민이 때문에 떴다니? 우리 오빠들은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지오디 오빠들이 떠서 그렇게 뒤틀려요? 그래서 우리 재민이까지 갖다 붙여요? 재민이 돈 벌려고 키우는 것 아닙니다."(디져 죽이기 협회, ID god 사랑) 또 노골적으로 다른 가수들을 거명하며 변호하기도 한다. "태진아나 송대관, 설운도가 재민이 키우면 KBS 가요대상이라도 탈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야후, ID gocydh)

이밖에도 양측이 서로를 혐오하는 이유는 많다. 강타의 음주운전 사건, H.O.T 멤버의 군 입대 문제, 토니 안의 국적 문제, 공개방송에서 god 노래만 끝나면 자리를 떠 다른 가수들을 무안하게 만드는 팬들의 무례한 행동 등등.

이 정도는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박준형이 나이를 속인다. 그러면서 나이 든 척은 너무 한다", "옷을 못 입는다", "문희준은 못생긴 얼굴을 머리로 가린다", "김태우는 너무 뚱뚱하다", "강타는 TV에서만 우는 척을 한다"는 등 지극히 사소한 이유, 혹은 주관적인 잣대로 무자비하게 흉을 보는 글이 부지기수다. 아예 컴퓨터로 사진을 조작해 자신이 싫어하는 가수의 얼굴을 흉측하게 일그러뜨려 올려놓기도 한다.

양측은 최근 god의 독극물 사건과 H.O.T의 해체설을 계기로 또하나의 새로운 전투를 치르고 있다. 서로가 상대와 관련된 좋지 않은 소식을 노골적으로 고소해 하고, 그에 대해 당하는 입장에서는 발끈해 더욱 심한 욕설로 맞대응을 하는 중이다.

해체설을 들은 god 팬 중에는 "빨리 빨리 쵸티 해체당하면 좋겠다"(MBC, ID 호이 ?)이라며 쾌재를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H.O.T 팬 중에는 "고소하다. 독극물이나 받고. 너희는 쵸티한테는 이길 수 없다. 너희는 해체되어야 해"(야후, ID wijdus20000)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당연히 god 팬 가운데는 독극물 사건의 범인이 H.O.T 팬 중 하나일 거라고 의심하는 글을 올리는 사람이 있고 또 H.O.T 팬들은 "말도 안된다"며 "혹시 자작극이 아니냐"며 펄쩍 뛰고 있다.

이 전쟁은 아마 어느 한쪽이 가요계를 떠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SES 대 핑클

H.O.T.와 god의 팬 만큼 격렬하지는 않지만 가요계를 대표하는 여성 그룹 SES와 핑클의 팬도 자주 치고받고 한다. 각자의 안티사이트 게시판에는 상대편이 올렸거나 상대편에서 보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글이 자주 눈에 띈다.

두 팀이 데뷔 시기도 비슷하고 팀 컬러도 흡사해 라이벌로 자주 다루어지다 보니 자연히 팬 사이에도 경쟁의식이 생긴 것.

SES 대 핑클의 전쟁에서는 가창력과 외모가 접점이다. 가창력에 있어서는 SES 팬이 핑클 팬보다 공세적이다. "바다는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창법과 가창력이 있다.

그러나 핑클에는 그럴 만한 사람이 없다. 옥주현은 가창력은 있지만 끼도 없고 느낌을 담은 목소리도 없다. 이효리는 그 다음이고 이진과 특히 성유리는 가수를 할만한 목소리가 아니다."(핑클 안티, ID 핑클보다 SES 훨 낫다)

반면 외모는 주관적이라 막상막하다. 하지만 근거가 없으므로 대개는 막연히 못생겼다 라거나 원색적인 욕설, 또는 성형수술에 관한 것이다. "핑클은 춤도 못추고 얼굴도 거지 같다. 어디서 그렇게 고쳤나.

오로지 우리 예쁜 언니들 SES, 파이팅."(ID 가요계의 영원한 요정 SES) "SES, 인기도 없는 게, 바다는 쌍꺼풀 수술! 눈도 제대로 못 뜨더라."(핑클 안티, ID 바다 쌍꺼풀 수술) 이런 식이다.

둘 사이의 전쟁은 얼마전 일본 진출 등으로 자리를 비웠던 SES가 1년여 만에 컴백하며 가열되고 있다. 그동안 핑클은 'NOW', 'Feel your love'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국내 여가수 중에서는 독보적으로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때문에 이들은 서로가 1위라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난달 역대 최다인 1만1,000여명의 관객을 불러 모은 SES의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게릴라 콘서트'와 유진의 고려대 입학 취소 등을 놓고 벌써 작은 국지전이 있었다.

"핑클이 다쳤다. 왜일까. 그건 SES가 컴백했기 때문이다. 원래 개클(핑클을 욕설로 바꿔 부르는 호칭)은 SES의 상대가 못된다. 그러니까 SES 컴백하니까 대결하는 게 무서워서 다치고 활동 중단한단다. XX 개클 라이브도 못하는 새끼들이 가수냐."(MBC. ID SES짱)

"(SES는)핑클이 두번째 노래를 하면 꼭 컴백합니다. 1년전 핑클이 화이트 하니까 와서 러브 하고. 타이틀 곡과 두번째 곡이 점수 매기면 타이틀 곡이 높은 것이 당연! 결론은 SES가 핑클 보다 인기 많은 척 하려는 이수만의 계략이다."(야후, ID ois-2002) 이 역시 쉽게 끝나지 않을 전쟁이 될 듯하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2/06 19:52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