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43)] DNA지문과 범죄

범죄 드라마를 보면 범인은 한결같이 장갑을 끼고 등장한다. 범행현장에 지문을 남기는 일이 치명적인 실수이기 때문이다.

지문은 태아 4개월부터 형성되고 그 패턴은 평생동안(사고나 나병의 경우를 제외하고) 변함없이 유지된다. 쌍둥이의 경우도 지문은 확연하게 다르다. 1892년 프란시스 갈톤(찰스 다윈의 동생)은 '지문'(Fingerprints)이라는 책에서 지문에 관한 사항을 집대성하기도 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지문은 범죄자를 확인하는 핵심수단이다.

그런데 과학이 발전하면서 법의 집행에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지난 10년 사이에 유전공학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DNA 정보가 법집행의 핵심 도구로 등장하고 있다.

인간의 유전자는 30억 개의 DNA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99.9%는 다른 사람과 동일하지만 나머지(100만 개의 염기)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로 인해 손가락 지문과 비교, 'DNA 지문'이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DNA는 건조하거나 저온일 경우 거의 영구적으로 보존된다. 심지어 상온에서도 수십 년은 보존된다. 물론 열과 습기에 노출되면 녹거나 파괴되기 때문에 DNA의 질이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신체 여러 부위의 DNA정보를 종합분석해서 최종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범행현장에 남은 혈액, 정액, 침 등 어떤 형태의 체액에도 분석에 충분한 DNA가 포함돼있다. 컵, 숟가락, 담배, 우표나 편지봉투에 뭍은 침에서도 DNA지문의 확인이 가능하다. 범행현장에 떨어진 머리카락도 좋은 재료가 된다. 단 하나의 세포가 가진 DNA 정보로도 수십 억명 중에 한 명을 밝혀낼 수 있다.

하지만 비록 DNA지문이 이처럼 혁명적이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범행사실을 증명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 범인의 자백이나 다른 증거에 대한 보강증거로 사용된다.

특히 생체물질이 발견되지 않는 총기살해, 방화, 폭발물, 독극물 등의 범죄에는 전혀 소용없는 기술이기도 하다. 더구나 DNA정보가 똑같은 쌍둥이의 경우에도 손가락 지문은 뚜렷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DNA지문이 손가락 지문보다 덜 유효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DNA검사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혐의자에 대한 무죄를 입증하거나 유죄판결을 뒤집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캐나다의 데이비드 밀가드라는 살인용의자는 무려 23년간의 억울한 수감생활을 하다가 DNA검사를 통해서 무죄로 풀려났다. 2000년 2월 영국에서는 1985년에 에빌 듄이라는 사람을 살해한 혐의로 던캔 잭슨이라는 살인범이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15년 만에 체포되기도 했다.

특히 강간의 경우 DNA검사로 즉각 범인을 색출할 수 있어 범인의 자백을 받아내는데 필수 수단이 되고 있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캐나다 정부는 1998년에 'DNA 신분확인법안'(DNA Identification Act)을 통과시키고 강력범의 DNA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허용했다.

반면 영국 정부는 지난해에 좀도둑에서 살인자까지 모든 범죄인(약 300만 명)의 DNA지문을 2002년까지 등록 완료할 계획이라는 조항을 발표, 단순 범죄자의 유전자 정보까지 등록하는 것은 인권차별과 인권구속의 소지가 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영국 수사과학연구소(FSS)는 범행현장에서 곧바로 DNA지문을 분석하고 국가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할 수 있는 휴대용 분석기까지 개발하고 있어 DNA지문을 통한 범죄와의 전쟁은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입력시간 2001/02/0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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