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박정희와 린든 존슨

새 세기 입춘의 2월에도 날씨는 춥다. 국세청의 중앙언론에 대한 세무사찰에 대해 주류 언론의 시각은 차갑다. 다만 언론단체, 시민단체만이 환영하고 있다.

몇 개의 중앙지는 'YS가 밝혀야 한다'의 사설을 통해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의 총선자금 떠넘기 입싸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YS는 "인간이 의리가 있어야 한다"고 이 총재와의 사이에 틈새가 있음을 비쳤다.

이런 때에 새삼 미국 제36대 대통령 린든 존슨(1963~1969년 집권)과 그와 4번이나 정상회담을 가진 박정희 전대통령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에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해준 1968년 1.21 사태와 1.23 푸에불로호 납치사건을 그 때 두 대통령은 함께 겪었기 때문이다.

LA타임스가 1월 28일자에서 보도한 '68년 1월의 한.미 관계'는 긴장감이 있고 충격적이다.

이 기사는 워싱턴에서 국제문제를 다루는 짓 만 컬럼니스트가 서울특파원인 마크 버그니어의 협조를 받아 쓴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에게 3선 개헌을 앞둔 박 대통령이 어떻게 비쳤느냐는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미국의 역사가들을 위해 공개된 서울-워싱턴 비밀 보고 문서들은 1937년 나이 서른살에 하원의원이 되어 40여년간을 정치인 생활을 한 존슨 대통령이 얼마나 세심하고 신중한 지도자였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존슨을 그때 박대통령이 청와대 80여m까지 침투한 북한 무장게릴라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을 공격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래서 국방차관을 지냈던 사이러스 밴스를 특사로 서울에 보냈다. 그는 "박 대통령을 우울한 성격이며 순간적으로 흥분하며 지독한 술꾼이다"고 보고했다.

"그렇게 무작정 마셔대는 게 새로운 사실인가?"라고 존슨이 묻자 "좀 오래 된 것 같다. 부인을 재떨이로 때렸고 그의 보좌관들에게 재떨이를 던지기도 했다"고 대답했다.

박 대통령의 음주벽에 대해 그때 미CIA 한국 책임자였던 도널드 그레그는 "그는 잘 알려진 술꾼이다"고 했고 또다른 주재 미국관리는 "그의 술 버릇은 1.21사태와 푸에불로호 사건이후 더 심해졌다"고 보고했다.

특사 임무를 마치고 밴스는 존슨에게 구두로 보고했다. "박 대통령은 위험스럽고 불안정하다.

박 대통령은 술자리를 시작 하자 마자 장군들에게 전화로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이 명령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는 벌써 전날 내린 명령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주한 미대사관도 3월에 "한국이 재통일을 위해 군사적 행동이나 사전 폭격을 할 가능성은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존슨은 한국에 M-16 소총의 생산, 주한 미군 불철수 등을 약속하고 베트남과 한국에서 두개의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는 매파를 억제하며 소련을 통해 푸에블로호 승무원을 귀환시키는 외교의 길을 택했다.

지난해 12월 말 미국 대선이 개표문제로 질척거릴 때 월스트리트저널은 연방주의자 협회와 공동으로 78명의 미 역사학자, 정치학자, 공법학자들을 상대로 역대 대통령의 순위를 정했다.

이때 존슨은 위대, 근접 위대, 평균이상, 평균, 평균이하, 실패의 6단계중 평균이상인 17위를 차지했다. 그가 추구했던 프론티어 정신의 케네디는 바로 18위로 평균이상에 턱걸이 했다.

미국의 정치 케이블 채널인 C-Span에 따르면 58명의 역사학자가 뽑은 역대 대통령 순위에서 존슨은 10위였다. 미국과 캐나다 전문집단과 역사학자 719명이 뽑은 윌리엄 라이딩스 조사에서는 12위였다.

박 대통령은 미국의 대통령중 링컨 다음으로 키가 큰 193cm의 존슨이, 월남전의 수렁에 빠졌다가 재선 출마 포기를 선언한 3월 31일 이후 그를 정치가의 이름에서 제외시켰다고 한다.

왜 그런 그가 역사에서 부활하는 것일까. 한가지만 들겠다. 그는 대통령이 되자 그의 장기인 몸의 정치, 즉 스스로 찾아다니고 전화하고, 사정하고, 협박하는 정치의 섬세성과 기록을 위해 모든 그의 대화를 녹취토록 했다. 테아프만 9,500개, 녹취시간은 643시간이나 되었다.

그중 하나가 후보로 나선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과의 면담기록. 그는 케네디 의원과의 대담을 모두 기록토록 했다. 40여분 회담에서 케네디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당신은 용감하고 헌신적인 분입니다"라고 말하자 존슨은 꾸짖듯이 말했다. "잘 안들려.

분명히 말하시오." 캐네디는 "당신은 용감하고."의 최고의 헌사를 다시 바쳐야 했다.

YS는 이회창 총재의 의리를 말하기 전 이 총재의 테이프를 가지는 섬세성이 있어야 했다. 김 대통령은 건전언론을 말하기 전에 언론계를 포용할 '몸소정책'이 필요했다.

박용배 세종대 겸임교수

입력시간 2001/02/0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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