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백악관과 오두막집

적어도 한국에서는 권력을 잡으면 판도라상자 같은 언론이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오길 바라서일까. 김영삼 전 대통령은 2월9일 도쿄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대통령 재임시절(1994년) 언론사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 것은 시기적으로 문제가 있다. 지금 언론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다소 바른 말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언론탄압을 목적으로 공정거래위까지 한꺼번에 조사를 하는 것이 문제다.

김대중씨는 돌이킬 수 없는 무덤을 팠다. 이것이 바로 정치보복이다. 이럴 때일수록 언론의 용기가 중요하다. 정부는 협박용이기 때문에 조사결과를 공개못할 것이다.

김대중씨는 하산해서 이제 자기 집으로 가기 직전이다. 공개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다만 언론이 아첨하면 김대중씨가 기고만장할 수 있다."

YS는 이 발언으로 이미 김대중 대통령과 협력ㆍ경쟁관계를 지나 적대관계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언론의 세무사찰이 압력이냐, 건전언론으로 가기 위한 해부냐의 논쟁을 배경으로 깔았지만 그것은 현 대통령과 바로 직전 대통령의 정치현실에 대한 의견대립이요, 싸움이다.

무릇 정치에 있어 전ㆍ현직 대통령의 다툼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가 위기 혹은 위기의 근처에 있을 때 현직이 전직의 이런 도전을 어떻게 막아내는가는 그 나라 민주주의의 깊이에 달렸다.

미국은 새 세기의 2월 들어 이런 깊이를 느끼게 하며 전진하고 있다. 백악관을 떠난 클린턴이 이사 1년전에 이미 백악관 기물을 옮긴 '도둑대통령'으로, 기부금받고 사기꾼을 사면시킨 '월권대통령'으로 급락하고 있는 와중인 2월6일 미국 대통령중 90세 생일을 맞아 가장 오래 살고 있는 로널드 레이건이 100세까지 살기를 바라는 모두의 염원 속에 다시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부시 신임 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 당신을 미국민에게 확신과 강함이 무엇인지를 바로 가르쳐주었다. 당신은 국민에게 신임을 얻으려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당신을 믿고 있다"고 치사했다. 그의 신념이 부시 자신의 정치신념이 되었음을 비친 것이다.

아버지인 부시 전 대통령도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 부시 가문에게 준 친절을 잊지못할 것이다. 당신은 어느 대통령보다 우아하게 미국을 다스렸다."

클린턴 전 대통령도 긴 찬사를 보냈다. "당신은 대통령으로써 미국에 위대한 기여를 했다.

미국과 세계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을 갖게 했고 위대한 정신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다. 당신이 90년 인생에서 나에게 미국의 꿈이 살아있음을 가르쳐준 것에 감사한다." 다만 그에게 대통령직을 빼앗긴 카터는 의례적인 인사에 덧붙여 "캘리포니아 주지사로서의 업적, 냉전시기의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성과에 찬사를 보낸다"고 했다.

레이건이 백악관을 떠난 후 1989년부터 변호사이며 통계분석가인 윌리엄 라이딤('위대한 대통령, 끔찍한 대통령'의 저자)은 719명의 미국ㆍ캐나다 역사학자, 학생, 정치인들로 하여금 대통령의 능력평가를 순위별로 조사케 했다.

그 결과는 레이건은 26위(카터 19위)였다. "모든 것이 뒤범벅되어있는 가방 같은 대통령"이라는 평까지 받았다. 새 천년에 들어 2월에 정치전문 케이블 TV인 C-SPAN이 조사한 바로는 역사가들은 그를 11위, 시청자들은 6위에 올려놓았다.

그를 25년간 취재했던 루 캐런('레이건 대통령 - 천성적 직업'의 저자)은 "그는 자신이 듣고 읽은 것을 믿고 또 믿는 것을 실천하는, 배우가 아니라 행동인이다. 그에게는 정적이 없다. 반대자는 있어도 언젠가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평했다.

그의 아내 낸시는 1988년 3월20일 백악관을 헬기로 떠나며 레이건이 눈 아래의 백악관을 보며 한 말을 잊지못한다.

"여보, 저 아래 우리의 조그마한 오두막집이 있군." 레이건은 또 그의 사진사에게 집무실에서 뒷모습을 보이며 창밖을 내다보는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했다. 백악관의 주인은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가장 즐거운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청와대를 '적막강산'에 비교한다. 그것은 대통령이 언론 혹은 국민을 적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적을 반대자나 친구로 만들고 포용할 때 '적막강산'에 '오두막집'이 들어선다.

박용배 세종대 겸임교수

입력시간 2001/02/1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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