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윤회·인연에 얽힌 한국적 대서사시

■ 인간인(1, 2)

요즘 같은 영상매체 시대에 소설책은 따돌림받기 십상이다.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것에 익숙한 젊은이에게 잉크 냄새 풍기는 책은 따분하고 고루하게 느껴진다.

특히 센세이셔널리즘에 입각하지 않은 전통적이고 소박한 소재를 다룬 장편의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 요즘 서점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우리의 장편소설을 찾기는 가뭄에 콩 나듯 힘들다.

1965년 '퇴원'으로 등단한 이청준은 1960년대 소설문학의 한축을 형성한 대표적 작가다. 그는 30여년간 창작활동을 통해 소설이 한국 문학사의 주류를 형성하도록 하는데 보이지 않는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토속적 민간신앙 세계에서 산업사회의 인간소외, 지식인의 존재 해명, 그리고 전통적 정서에 이르는 다양한 탐색을 시도해왔다.

그가 동시대 현실을 꿰뚫어보는 작가정신의 치열함을 통해 서구 소설의 장르를 우리 문화계에 정착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장편소설 '인간인 1,2'(열림원 펴냄)는 한국 문학의 정통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진짜 한국적 소설이다.

이 작품은 윤회와 인연의 사슬에 얽혀있는 인간의 비애와 영혼의 자유를 그린 대서사시다.

시대배경은 일제 말기에서 6ㆍ25 전쟁에 이르는 혼란기다. 전남 해남에 있는 대원사라는 한 사찰 속에서 벌어지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들의 드라마틱한 인생유전을 그리고 있다.

한국인을 괴롭히는 악덕 일본인의 처를 강간ㆍ살해하고 대원사에 도피해왔다는 남도섭은 사실은 밀정 노릇을 하는 앞잡이로 '쫓는 자'를 대표한다. 반면 가난과 증오, 그리고 일제와의 사상적, 제도적 이유로 죄를 짓고 대원사에 들어온 범인(凡人)들은 '쫓기는 자'다.

이 두 부류는 서로에 대한 경계만 할 뿐 실제로는 서로의 존재를 숨긴 채 하루하루를 영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대원사 유물관에 보관중인 금서 병풍 도난사건을 계기로 밀정 신분이 드러난 남도섭은 '쫓기는 자'들에 의해 이곳에서 추방당한다. 그러나 6ㆍ25 전쟁을 계기로 남도섭은 '쫓기는 자'로 전락해 대원사로 다시 흘러들어온다.

이런 그를 우봉 스님은 소영각이라는 '쫓기는 자'들의 최후의 보루에 그는 숨겨준다. 그곳에서 남도섭은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서로 윤회의 인간고를 체험하며 자신에 대한 뉘우침과 진리를 깨닫게 된다.

2권 역시 대원사를 배경으로 남도섭 대신 안장손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연의 의미를 되새김질한다. 작가 이청준은 윤회의 덫에 걸린 비극적 운명, 그리고 속임과 속음, 쫓음과 쫓김의 반복 속에 펼쳐지는 어두운 역사의 윤회와 인간적 정한을 이야기하고 있다.

치밀한 묘사와 깊이있는 스토리 전개로 마치 은은한 향내가 흐르는 고즈넉한 사찰을 신비로운 상상을 하며 산책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야릇한 긴장감은 첫장부터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읽는 이의 시선을 붙잡아 둘 정도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2/13 17:02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