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마음은 콩밭에 있는데

처음 전주에서 영화제를 연다고 했을 때 긍정적인 느낌 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앞섰다. 전주 말고도 울산 등 지방자치단체 여기 저기서 거액을 들여 국제영화제를 열겠다는 의도가 그리 순수해 보이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불식시키기라도 하듯이 전주영화제는 김소영(영상원 교수) 정성일(키노 편집장) 두 프로그래머를 영입했다. 적어도 부산이나 부천의 잡화상식 영화상영 잔치와 같은 '또 하나의 영화제'가 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처럼 21세기의 새로운 영상문화의 키워드가 될 디지털과 아시아 독립영화 중심의 '대안 영화제'로 독특한 색깔을 갖췄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되도록 노력했고, 결과도 괜찮았다.

그래서 지난해 5월,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가 끝난 후 바로 이 칼럼에서 '도시와 영화제' (책 '투덜이의 영화세상' 288페이지) 란 글에서 이렇게 쓴 기억이 난다.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가 끝났다.

또 하나의 영화제가 아닌, 이른바 아시아 인디영화, 디지털영화에 시선을 맞춘 대안영화제를 표방하였다. 소수 마니아와 젊은 층을 겨냥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곳 보다 관객(10만명)도 적었다. 전주에서 이런 성격의 영화제가 열리는 것이 맞는가 라는 논의는 이제 유효기간이 지났다.

이제는 어떻게 테마, 지역영화제로 그 색깔을 유지하느냐가 문제이다. 그러자면 잔치의 거품과 대중성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할 것이다. 전주는 원래 예향(藝鄕)이다"

'칭찬 반, 우려 반' 이었다. 어쩌면 칭찬 보다는 우려 쪽이 더 걱정스러웠는지도 모른다. 전주시가 정말 이 땅에 다양한 영화문화를 위해 거액을 쏟을아 부을만큼 순수할까.

그래서 "거품과 대중성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영화제를 왜 하는데. 뭐 영화를 사랑해서라고? 말은 그렇지.

그러나 다 치적을 위해서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정치인의 모든 행위는 '표'다. 지방지치단체라고 다를까. 그런데 무슨 대안영화제. 도대체 생색이 나야 말이지. 일부 대학생들이나 관심있지.

결국 2회도 못 넘기고 사단은 벌어졌다. 두 프로그래머가 사퇴를 했다. 지난해 영화제가 끝나고 만났을 때 김소영 교수는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지. 또 무슨 책임 떠넘기기에 그렇게 급급한지" 하면서 영화제 일을 하는 어려움과 고충을 토로했다. 그가 그만두자 정성일씨도, 그들과 함께 일하던 10여명의 프로그래밍팀과 홍보요원들도 그만 두었다.

전주영화제 조직위원회측은 자신들과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영화제의 색깔도 그대로 유지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두 프로그래머가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들이 지나치게 영화제를 자신들의 생각대로만 이끌어 가려다 제동이 걸리니까 물러난 것일까.

정성일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는 "하나 하나 양보하다 보니 처음 생각했던 것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홍보팀 역시 불쾌한 기분을 더 이상 감추지 않고 그동안의 심경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열악한 근무조건에도 불구하고 좋은 영화를 관객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일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들은 공채로 채용돼 두 프로그래머와 개인적 친분이 없으며, 1회가 끝나고 2회에도 계속하자는 제의도 최민 조직위원장을 통해서라고 했다. 그런 최민 위원장이 최근 어느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을 두 프로그래머의 사조직이라고 말했다며 분노해 했다.

그들은 사무국 운영자로부터 "서울 사람들에게, 외국 영화계에 어떤 평가를 받던지 프로그래머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제가 이렇게 복잡한 줄 알았으면 차라리 시민들의 호응을 받는 소리축제를 대대적으로 키우거나 전주시의 전통과 관련한 지역문화축제를 열걸 그랬다. 우린 그게 더 중요하다"는 발언까지 들었다고 폭로했다.

영화제에 프로그래머가 바뀌는 것이 흔한 일이다. 문제는 그들의 능력이나 자질 때문이 아니라, 우리 나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영화제가 모두 자기 치적과 홍보용으로 출발했다는데 있다. 마음이 콩(표)밭에 가 있는데 예술과 영화가 보일까.

전주영화제 역시 잔치의 거품과 인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태생적 한계와 추악함을 지니고 있다. 그것을 정성일씨는 한마디로 잘랐다. "지방자치단체가 벌이는 모든 영화제는 영화란 이름을 판 정치쇼이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입력시간 2001/02/1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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