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령' 딕 체닉

부시 대통령 전폭적 지원아래 막강 영향력 행사

어떤 행정부가 출범하든 초기에는 새 대통령의 일정이 그의 취향, 통치 스타일 등 몇가지 요인에 의해 짜여진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출범이후 백악관 관측자들은 대통령만 추적하지 않는다. 거의 같은 비중으로 딕 체니 부통령도 주시하고 있다.

부시가 한때 정적이었던 조 리버먼과 함께 학교를 방문해 장애인 지원을 위한 새 법안을 발표했을 때, 또 흑인교회의 주일 예배에 참여해 장관직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 뒤에는 체니가 있었다. 크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체니는 항상 새 행정부의 크고 작은 결정 뒤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일정을 살펴보면 '빅타임'으로 불리는 체니의 영향력은 전례없이 크고, 부통령의 역할은 부시 대통령이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인물의 위상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은 '권력 서클'안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이 서클은 가장 민감한 문제가 논의되고 최종 결정이 내려지는 공간이고, 늘 변화하는 권력의 추가 반영되는 곳이다.

체니는 그 공간을 떠나지 않는다. 부시 대통령은 이미 체니를 권력이양의 책임자로 선택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친구나 보좌관을 재무, 국방장관에 지명하도록 인재발탁의 권한까지 허용했다.

부시 행정부 출범 초기의 업적을 홍보하기 위해 '선데이 토크쇼'에 나온 사람도 바로 체니였다. 부시는 또 그의 국정운영에서 첫번째 고비였던 캘리포니아주 전력위기 문제를 체니에게 맡겼다.

대선유세에서 체니는 어떤 때 일주일씩이나 부시 후보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하루중 3분의2를 함께 보낸다. 두 사람은 오전 8시 대통령 집무실에서 함께 정보보고를 받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체니는 부통령 관저의 수리가 끝날 때까지 임시로 거주하는 버지니아주 맥클린 타운하우스에서 백악관으로 출근하는 25분간 중앙정보국(CIA)의 보고서를 검토한 뒤 대통령 집무실에서는 대통령과 그날의 사안을 검토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보고를 받는다.


마음비운 체니, 부시행정부의 핵심으로

체니는 오전 9시 비서실장 루이스 립비와 다른 스태프가 있는 자신의 웨스트윙 사무실로 건너가 이후 일정을 논의한다. 그는 의회 등 3곳에 사무실을 갖고 있지만 전임 앨 고어 부통령과 마찬가지로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무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전임 부통령과 차이는 있다. 고어 등 대부분의 부통령과는 달리 체니는 그의 현지위를 정치적 도약대로 삼지 않는다. 1995년 대선운동에 잠깐 참여한 그는 대통령직 출마를 원치 않는다.

부시 대통령마저 언젠가 의회 방문자들 앞에서 "딕(체니)은 스스로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맡겨진 모든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추켜세웠다. 바로 이게 체니의 지위가 새 대통령을 위협하지 않는 이유다.

부시는 완전히 그를 믿고 있다. 부시는 가끔 친구들에게 "체니를 권력이양의 최고책임자로 앉힌 것은 워싱턴의 의원들에게 새 부통령이 다음 행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리라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했다.

2주일전 백악간 초대에 응했던 한 민주당 인사는 체니가 대통령의 영광을 가린다는 많은 얘기들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1월27일 있었던 한 만찬에서 부시는 '체니 대통령'이라고 농담할 정도였다.

정치적 야망보다는 힘을 갖고 있는 체니에게 큰 규모의 보좌진은 필요하지 않다. 그의 팀 50명은 전임자의 절반 정도다. 토크쇼 진행자 출신으로 고위 보좌관인 메리 마탈린을 제외하면 체니에게는 그의 정치적 미래에 도움을 줄만한 힘있는 정치적 조언자가 거의 없다.

그러나 부통령이 개인적 야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체니는 대통령의 권위를 갖고 있다고 주변에서 이야기한다. 차기 대통령 후보자가 장래를 위해 피하고자 하는 문제들, 예를 들면 캘리포니아 전력문제와 같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기꺼이 맡을 만큼 그는 자유롭다.

체니는 전임 부통령인 고어와 댄 퀘일과 마찬가지로 매주 한차례 대통령과 단독오찬을 갖는다. 그것은 부통령의 특권이지만 무척 가까웠다는 고어 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 사이에도 고어는 늘 오찬시간을 요청했고, 또 그 시간을 클린턴의 일정 속에 끼워넣기 위해 투쟁해야 했다.

그러나 체니와 부시에게 목요일 오찬은 특별한 게 아니다. 늘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특별히 시간을 낼 필요도 없다. 목요일 오찬에선 보좌관의 업무 영역이나 장관의 능력 등이 토의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자리다.


백악관계 의회사이의 통로

체니는 또 매주 화요일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정기 오찬을 갖고 수요일에는 하원을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예전에는 보기 힘든 것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의원들이 그를 백악관과 의회 사이의 중요 통로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대통령에게로 가는 전달 시스템과 능력을 갖고 있다고 의원들은 생각한다. 체니는 또 의원들과의 미팅에서 앞으로 나서기 보다 뒤로 물러앉는다. 질문도 하지만 주로 듣는 편이다.

워싱턴 정가에서 체니의 침묵과 특유의 싱긋이 웃는 웃음은 많은 이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그의 집무실에 걸려 있는 걸프전 사진은 상징적이다. 전임 대통령 부시와 콜린 파월 장군이 앞줄에 서고 체니는 '카키룩'이라 불리는 차림으로 뒷줄에 서 있다.

어깨를 구부리고 특유의 미소를 띤 모습이다. 이 포즈는 그가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에서 물러난 뒤 하원의원으로 일할 때 갖가지 해석을 낳았다.

마찬가지로 최근 백악관 모임에서 돌아온 상ㆍ하원 의원들은 그가 뒷줄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맞추기가 최고의 퍼즐게임이었다. 한 의원은 "체니가 고양이 이빨을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부시는 그 모습을 빗대 "체니의 공격적인 매력을 환영한다"고 언급했다. 의회에선 이미 "부시가 선의를 뿌리는 대신, 체니는 두려움을 심는다"는 얘기가 퍼져있다. 체니는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고집행가다.

상원의원 존 맥케인은 백악관에서 부시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만나 선거자금 개혁방안을 논의했는데, 그 자리에는 체니도 배석했다.

부시 대통령이 맥케인의 정치자금 규제안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체니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맥케인은 누가 그 회의를 주관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느긋한 성격, 대외정책서 큰 역할 발휘

그의 역할은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부시 전대통령 행정부에서 맡았던 국방장관직과 관련된 분야, 즉 대외정책에서 발휘될 것이다. 최근 체니는 포토맥강을 건너 펜타곤(국방부)으로 갔다.

거기서 첫 정기오찬을 가졌는데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콜린 파월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 등이 참석했다.

이들 네 사람은 친구이고, 부시 전 행정부에서 라이스와 파월은 체니와 함께 일했다. 포드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시절 체니의 스승격이었던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파월 국무장관보다는 더 강성이다.

체니의 관측자들은 체니가 럼스펠드를 카리스마적인 파월의 견제역으로 자신처럼 보다 매파인 럼스펠드를 끌어들였다고도 관측한다.

체니와 부시는 전임자들보다 훨씬 일찍 일과를 끝낸다. 클린턴-고어 행정부는 출범 초기에 자주 밤을 세웠지만 부어-체니는 그렇지 않다. 거의 대부분 7시면 체니는 집으로 간다.

체니의 한 보좌관은 "그는 모든 일이 잘 돌아가고 있는데 만족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체니의 스타일이다. 걸프전 첫날에도 체니 당시 국방장관은 중국요리를 시키고 느긋하게 소파에 등을 기댔었다. 수세대에 걸쳐 물려받은 기질이다. 그것은 또 앞으로 그가 부시를 잘 보좌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2/1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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