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흑인과 미국

미국에서 매년 1월 셋째 월요일은 공휴일이다. 흑인 민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추모하기 위하여 연방 공휴일로 제정한 것이다. 직장에 따라서는 연방 공휴일이라도 쉬지 않는 곳도 있으나 아마도 마틴 루터 킹 목사 추모일만은 쉬지 않는 직장이 없을 것이다.

흑인의 영원한 지도자였던 킹 목사를 추모하는 날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직장내 흑인들의 강한 반발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민으로 이룩된 미국 사회는 이민자가 정착한 연도에 따라 경제ㆍ사회적 계층의 피라미드를 이루고 있어 새로 들어온 이민자들은 밑바닥에서부터 험하고 어려운 일을 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한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는 것이다.

19세기 말 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온 아일랜드인은 당시 청소부, 부두 노동자 등 온갖 잡일을 도맡아하다가 100여년 후에는 아일랜드계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그 뒤를 이은 이태리 이민, 나치의 탄압을 피해온 유태인, 또 한국인 이민자도 초기에는 온갖 잡일을 맡아하다가 이제는 히스패닉계 이민자에게 건네주고는 한계단씩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흑인은 예외였다. 그들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아메리카 대륙에 왔다. 어렸을 때 읽었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에서 보듯이 노예로 팔려온 흑인의 초기 정착생활은 짐승보다 못한 것이었다.

흑인 노예들은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만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았으며 상품으로 사고 팔렸기 때문에 가족과는 언제 헤어질지 몰랐다. 주인의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죽도록 채찍질을 당했으며 먹을 것, 입을 것도 변변치 않았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대우를 견디지 못한 흑인 노예들은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는데 주로 노예를 인정하지 않는 펜실베니아, 뉴욕 등 북부로 향했다.

지금이야 잘 뚫린 고속도로를 타면 버지니아에서 뉴욕까지 반나절이면 갈 수 있지만 200년 전에 음식도, 지도도 없이 노예사냥꾼을 피해 밤에만 다녀야 하는 탈출 노예에게는 몇달 아니 몇년이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1619년 노예가 처음 미 대륙에 들어온 이래 수많은 노예들이 ?출했으며 독립전쟁 당시에는 노예해방을 약속하였던 영국군으로 도망쳐 들어가 싸운 노예도 있었다. 일부 흑인은 7월4일이 독립 기념일이 아니라고 한다.

180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 전역의 노예수가 400만 명에 이르고 탈출하는 노예가 늘어나자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라는 별명이 붙은 탈출로까지 생겼다.

탈출한 노예를 숨겨주는 것 역시 처벌받던 당시에도 노예제도가 잘못되었다고 믿었던 많은 백인과 이미 탈출한 흑인들이 운영한 이 철도에서는 은신처를 '역'(Station) 이라고 하였으며 역과 역 사이를 안내해주는 사람을 '차장'(Conductor)이라고 불렀다.

해리엇 터브만이라는 한 흑인 여성은 1850년부터 1860년 사이에 무려 19번이나 남부로 내려가서 수백명의 노예들을 자유의 땅으로 인도하였다.

노예제도는 남북전쟁이 끝나고 1865년에 수정헌법 13조가 통과되면서 불법화되었다. 그렇다고 흑인의 지위가 별로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읽지도 쓰지도 못하며 주인을 위해 노동력만 제공하였던 흑인이 바로 사회에 적응할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더구나 흑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남아있어서 195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흑인은 백인과 함께 영화도 볼 수 없었고 식당에서 음식도 같이 먹을 수 없었다.

소위 '분리하지만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Segregation but equal 정책'이었다. 버스를 탈 때도 백인이 올라왔는데 빈 자리가 없으면 앉아있던 흑인은 일어나서 늦게 탄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여야 했다.

1950년대라면 우리는 전쟁의 참화를 겪고 있을 때인데 어찌 보면 노근리 사건도 당시 미국의 전반적인 인종관이 투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흑인에 대한 차별대우를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평화적 방법으로 타파하려고 하였으며 그 공로로 1964년 35세의 나이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여 최연소 평화상 수상자가 된다. 1968년 4월4일 킹 목사는 인종차별주의자의 흉탄에 쓰러져서 온 세계인의 추모를 받는다.

이처럼 지하철도와 해리엇 터브만에서 킹 목사까지 이어지는, 흑인의 자유를 향한 갈망이 바로 오늘날의 마이클 조던이나 콜린 파월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한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1/02/1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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