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이벤트성 정책 "이젠 그만"

로마의 3대 황제 칼리굴라는 후세 역사가로부터 악명높은 황제로 평가받고 있다. 칼리굴라는 2대 황제로 로마인에게 인기가 없었던 티베리우스가 취한 정책과는 정반대로 갔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대규모 공공사업과 시민에게 나누어주는 황제 하사금 등으로 재정을 위기에 몰아넣자 티베리우스는 재정확충을 위해 사회간접자본 공사와 검투사 시합 등 모든 이벤트성 행사를 중단시켜버렸다.

황제의 하사금을 받지 못하고 볼거리도 박탈당한 채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원로원과 시민은 자연히 반발했다.

티베리우스의 사후 24세에 제1인자 자리(프린켑스)에 오른 칼리굴라는 검투사 시합과 불후의 명화 '벤허'에 나오는 전차경주를 부활하는 등 매일 축제와 스포츠 등으로 로마 시민의 환심을 샀다.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원로원은 20대 중반의 그에게 신격(神格) 칭호를 부여했다.


인기주의에 연연하면 결국 국민 등 돌릴 것

칼리굴라의 흥청망청 행태는 바다와 바다를 사이에 둔 항구를 말을 타고 건너간 데서 절정에 달했다.

본국 이탈리아 남부의 무역항 포추올리에서 바다 건너 5.4km 떨어진 바이아항까지 시민들로부터 징발한 수많은 선박을 옆으로 잇대어 늘어놓은 다음 그 위를 흙으로 포장해 평탄한 도로를 깔고 두필의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왕복하는, 전무후무한 사치행각을 벌였다.

시민이 지르는 환호성에 도취한 칼리굴라는 재임 3년동안 볼거리와 오락 등에 몰입하느라 전임 황제 티베리우스가 시민의 비판을 감수하면서 탄탄하게 비축했던 재정을 탕진했다.

칼리굴라는 파탄난 재정을 만회하기위해 종전과는 달리 세수증대 방안을 마련하는데 혈안이 돼 시민의 주머니를 털어내려 했다.

그러나 시민은 자신의 주머니를 짜내려는 칼리굴라에 싸늘하게 등을 돌렸다. 그는 마침내 자신을 지키는 근위대 장교로부터 살해당하는 것으로 짧은 일생을 마쳤다.

정치지도자가 국부 증진과 재정의 건전화보다는 인기주의 정책에 연연할 때 칼리굴라처럼 심각한 후유증을 낳게 됨을 동서고금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해야 할 본질은 소홀히 한 채 거품성 행사나 이벤트에 치중할 때 국민이나 시장은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요즘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면 이벤트성이 많다. 지난 주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나서 증권사 사장단과 간담회를 갖고 진념 경제부총리도 20~30대 젊은 증권 애널리스트들과 만나 증시부양 의지를 천명했다. 대통령과 경제팀장이 증권사 대표와 애널리스트들을 만난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깜짝쇼'였다.

물론 정부의 증시부양 의지는 지난해 이후 주가 대폭락으로 피멍 들어 있는 투자자에게 희망을 주는 것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재벌 및 금융개혁은 여전히 게걸음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벤트성 행사를 해봤자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은 개선되지 않는다. 오히려 답보상태인 대우차 및 한보철강 등 경제쓰레기(부실기업)를 청소하는데 진력해야 한다. 신용경색 심화로 돈이 돌지 않는 자금시장의 혈로를 뚫는 데도 땀을 쏟아야 한다.

이번 주도 고단한 한주일이 될 것 같다. 한국 경제의 암적 존재인 대우차 처리가 오리무중이다. 대우차는 판매부진에 못이겨 지난 12일부터 가동중단에 들어가면서 대규모 감원을 추진하자 노조측은 파업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돈먹는 블랙홀'격인 대우차의 노사 모두는 국민과 시장의 싸늘한 시각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지난주 부도처리된 한국부동산신탁의 처리방향도 청산이냐, 워크아웃을 통한 회생이냐를 둘러싸고 채권단간 이견이 팽팽히 맞서 진통을 겪고 있다.


안팎 악재에 휩싸인 증시

증시는 정부의 증시부양 의지에 힘입어 지난주 다소 회복세를 보였지만 이번주는 600고지를 놓고 일진일퇴하는 공방전을 벌일 전망이다. 정부의 연기금 주식투자 확대, 한은의 콜금리 인하 등은 600선을 탈환하는 데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증시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주는 미국의 경기 둔화와 시스코 등 주요 기업의 실적 악화 등으로 나스닥지수가 지난주에 폭락한 것은 부담이다. 일본 경제의 3월 위기설과 유럽 경기의 둔화, 반도체 가격의 추락 등도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재계총수'인 전경련의 새 회장 추대도 관심거리. 그동안 새 회장을 추대하지 못해 진통을 거듭해온 전경련은 15일 회장단회의를 열어 새 회장을 선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건희 삼성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천거되는 인물이 모두 고사하고 김각중 현회장도 "더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가 국민의 경제불안 심리를 해소하기위해 13일 전경련과 함께 대국민 경제설명회를 가졌다. 정부의 대국민 설득과 해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핵심 경제현안을 풀어가려는 치열한 정책의지가 시장의 신뢰를 얻는 첩경임을 알아야 한다.

이의춘 경제부 차장

입력시간 2001/02/1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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