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44)] 자연의 섭리와 광우병

광우병 공포가 온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한국도 더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문제의 1988~1996년산 영국의 가축사료를 수입한 최소 100여개국이 광우병(BSE)의 위험에 처해있으며 한국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영국에서만 소 17만 마리가 광우병에 걸렸고 광우병으로 죽은 사람은 80여명.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서유럽에서도 점차 그 사태의 심각성이 확인되고 있다.

광우병(소해면뇌상증ㆍUSE)은 소가 스크래피병에 걸린 양의 뇌와 뼈의 분말로 만든 사료를 먹어서 발생한 것으로 잠정결론이 내려져있다.

이 병의 원인물질은 프리온인데 열에 강해서(130도 이상에서 장시간 가열해야 기능상실) 사료의 열처리 과정에서도 살아남는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뇌, 척수 등을 사람이 먹을 경우 vCJD(Variant Creutzfeldt-Jakob diseaseㆍ인간광우병)에 걸리고 뇌가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서 치매증상을 보이다가 뇌기능을 완전 상실하면서 사망한다. 병의 진행기간이 12-15개월로 긴 것이 특징이다. 아직 인간광우병의 정확한 발달과정이 규명되어 있지 않아 현재로선 백신도 치료약도 없다.

불안을 더하는 것은 감염이 미확인된 상태의 소가 이미 식탁에 올랐었고 각종 제품으로 둔갑해 있다는 점이다. 수혈도 문제다.

미국 정부는 혈액을 통한 인간광우병의 확산을 우려, 지난 1980년부터 1996년까지 영국에 6개월 이상 체류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헌혈을 받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워 1999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비슷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도 혈액을 통한 감염주의보가 내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적십자사가 인간광우병의 발병 위험국인 독일로부터 1997년부터 7만1,684ℓ의 혈장을 수입, 시중에 유통시킨 사실이 있어 수혈이 필요한 사람의 염려를 자아내고 있다.

지난 1980년대 영국에서는 수혈로 인한 감염사태가 일어나 4,800명의 혈우병 환자들이 C형 간염에 걸렸고 1,200명은 AIDS(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렸던 적이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불안의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질 수 밖에 없다.

비록 담배를 피워서 폐암으로 죽을 확률보다 광우병으로 죽을 확률이 훨씬 적긴 하지만 담배처럼 자신의 의지에 의한 조절이 불가능하고, 어디에 어떻게 도사리고 있는지조차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소비자가 느껴야 하는 낭패감은 클 수밖에 없다.

심지어 광우병의 위험성이 유럽을 뒤흔들든 시기에 정부 연구소가 동물성 사료 실험을 자랑스럽게 하고 있었다는 점은 정부와 전문가에 대한 불신의 벽을 더욱 높이고 있으며, 실험에 참가한 축산농가에서 이미 그 고기와 뼈를 유통시켰다는 사실은, 국민이 일종의 생체실험 대상이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광우병 사태의 원인을 색다른데서 찾고 싶다. 광우병은 자연의 섭리를 어긴데 대한 응당의 대가라는 말이다.

분명 소는 되새김질을 하는 반추동물, 즉 풀을 먹고사는 초식동물임에도 불구하고 현대화한 사료다, 생산성을 높인다, 저렴하다 등의 이유로 풀만 먹는 소에게 고기를 먹였기 때문에 발생한 사태라는 것이다. 밥과 김치에만 익숙한 사람이 기름진 고기와 빵을 먹으면 이내 탈이 나기 마련이다.

더구나 사촌 격인 양의 고기를 먹인 것이나 쇠고기가 포함된 음식물 찌꺼기 사료를 소에게 먹인 것은 사람이 사람고기를 먹는 것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니 그 대가가 오죽하겠는가? 단지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뿌린 대로 주는 자연이지만 애꿎은 사람이 그 대가를 거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축산의 편리와 생산성 증대, 소위 경제논리라는 깃발은 엉뚱하게도 음식물 오염과 살인이라는 어둠의 골짜기에서 휘날리고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과학기술의 근시성이 여지없이 드러난 이번 사태를 보면서 과학은 결코 홀로 서려해서는 안되며 사회의 모든 측면과 함께 고민하면서 가장 선량한 방향으로 발전해가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한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www.kisco.re.kr

입력시간 2001/02/1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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