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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바둑 인생 건 진검승부

[바둑] 바둑 인생 건 진검승부

오청원(吳淸原)의 치수고치기 10번기⑨

치수고치지 십번기는 무예자의 진검승부와 같은 것이었다. 가혹했다. 진검승부란 한번 무너지면 가면을 빼앗긴 프로레슬러처럼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운명의 치수고치기에서 패하면 대등했을 터인 상대방에게 뚜렷하게 한단의 격차가 생기고 맞수시합을 둘 수 없게 된다.

그간 쌓아온 명예는 상처가 나고 또다시 치수고치기를 하지 않는 한 바둑계의 일인자 자리는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실제로 재승부란 거의 불가능하므로 1회 한도의 필사적인 승부다.

특히 기계 일인자를 다투는 치수고치기 시합은, 승자는 대단한 명예를 얻는 반면 패자는 그것으로 기사생활를 마감하는 경우가 흔하다.

고래로 바둑계의 제1인자의 지위인 명인기소(名人碁所)를 정하는 대국은 단한번만인 치수고치기로 10번기, 20번기를 행하는 일이 많고 대국자는 목숨을 걸고 반상의 사투를 벌여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에도 시대에 있어 혼인보(本因方), 야스이(安井), 이노우에(井上), 햐야시(林) 등 4대 문파에서는 명인기소를 다투는 치수고치기 승수는 언제나 심각하고 피비린내나는 것이었다.

단차(段差)에 의한 치수라든지 치수고치기가 바둑계 관습에서 없어지게 된 것은 혼인보 슈사이가 은퇴하며 세습 명인제도가 폐지되고 그후 모든 타이틀전에서 따르도록 한 다음부터다. 400년의 바둑역사를 본다면 극히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내가 보아도 치수고치기 십번기는 본질적으로 종래의 치수고치기와 다를 바 없다.

기사생명을 건 살과 뼈를 깎는 매치였다. 특히 요미우리라는 단골간판으로서 십번기를 둔 10년은 글자 그대로 배수의 진이었다. 일본 기원의 뒷받침이 없어 십번 승부에서 패한 오청원을 바둑팬들이 알아줄 리 만무했다.

좌우간 치수고치기 10번기는 진검승부의 두려움은 두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것이다. 지금 기사들은 그런 것이 사라져 다행일 것이다. 현재 타이틀전은 한두번 져도 명예에 상처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치수도 달라지지 않고 몇번씩이나 도전할 기회가 있다.

타이틀 수도 많고, 누가 강한지 뚜렷한 순위를 매기는 것도 없다.

오청원은 즐겨 십번기를 둔 것은 아니다. 1939년 카마쿠라 십번기를 효시로 1955년 다가카와까지 당대 최고수를 상대를 해서 실로 10회, 100국 가까이 치수고치기 십번기를 두었다. 이것을 가지고 '오청원의 치수고치기 십번기'라 부르고 있다.

사실 이 치수고치기 십번기 만큼 당시 처절한 맛이 있던 것은 없다. 뭐니뭐니 해도 "일본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므로 세상의 눈은 정상에 있는 두 사람에게 집중된다.

두 사람은 생활을 걸고 명예를 걸고 돈까지 건다. 보는 사람은 손에 땀이 차고 한점 한점에 껑충 뛰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한다. 이토록 스릴 있는 건 없다. 현재의 승부 형태로 정착되어 있는 7번 승부도 이 점에서는 십번기의 발바닥도 미치지 못한다. 그 처절함은 짐작하리라.

1939년 9월. 오청원의 최초의 십번기가 치러졌다. 가다니 7단과의 10번기. 오청원이 활약하던 나이는 아직 20대. 기다니도 갓 스물을 넘은 한창 나이로서 둘 다 신진기사로서 활약하던 시기여서 추억도 새로운 시합이다.

특히 건장사에서 발어진 제1국은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대국으로서 1933년의 홍인보 슈사이 명인에게 신포석으로 대항한 알국과 함께 잊을 수 없는 바둑이다. <계속>



[뉴스화제]



● 이창호, 창하호 제치고 응씨배 우승

이창호가 제4회 응씨배 우승을 차지했다, 이창호는 2월16일 중국에서 벌이진 응씨배 제4국에서 중국의 창하오 9단을 맞아 종합전적 3승1패로 우승컵을 안았다. 이로써 한국은 제 1회 대회 때부터 4회때 까지 우승을 모조리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 루이, 박지은 이가고 여류 최고수에 박지은 3단이 분루를 삼켰다. 박 3단은 제2회 흥창배 여류선수권대회에서 최강 루이9단을 맞아 선전했으나 1:2로 패퇴했다. 두 선수는 1:1인 상태에서 벌어진 제3국에서 시종 난타전을 벌였으나 루이는 마지막 승부수가 빛을 발하면서 역전에 성공했다. 두 사람은 현재 여류 명인전에서도 1:1를 기록하고 있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1/02/2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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