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X파일] 해저의 비밀무기 잠수함

사고를 숙명처럼 안고 항해,
"터지면 대형참사"

미 해군 핵추진 공격용 잠수함 그린빌호(SSN-772)가 2월10일 하와이 근해에서 급부상 훈련중 일본 선박과 충돌하는 사고를 냈다. 급부상은 잠수함이 함내 화재나 침수 등 비상사태에 직면해 가장 빠른 속도로 수면위로 올라오는 행위.

압축공기로 밸런스 탱크 속의 물을 뿜어내면서 그 부력으로 심해에서 급속히 부상하는 것을 말한다. 미 해군 잠수함은 통상 1년에 네차례 급부상 훈련을 실시한다.

급부상하는 잠수함은 관성에 힘입어 선수의 3분의1이 물 밖으로 튀어올라 마치 해면으로 치솟는 고래를 연상시킨다. 표준배수량 6,300톤(잠수배수량 7,147톤), 길이 108m, 폭 9.9m의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그린빌호가 급부상하는 파워는 상상을 초월한다.

여기에 얻어맞은 499톤급 일본 고교 조업실습선 에히메마루호는 선체에 구멍이 나면서 순식간에 침몰했다.


부상중 사고는 100% 잠수함 과실

한국 해군관계자에 따르면 잠수함이 부상중 낸 사고의 책임은 거의 100% 잠수함측에 있다. 이 경우 잠수함 함장은 책임을 물어 곧바로 보직해임된다. 사고를 낸 그린빌호의 스콧 워들 함장 역시 보직해임됐으며 앞으로 어떤 함정도 지휘할 수 없게 된다는 게 미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다. 잠수함에서 함장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그런만큼 책임도 무겁다. 미 당국의 중간발표에 따르면 이번 사고 원인은 그린빌호가 훈련수칙을 지키지 않은 데 있다.

모든 잠수함은 부상에 앞서 잠수함의 탐지능력에 맞는 전술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소나(SONARㆍ음파탐지기)와 잠망경을 이용해 부상할 해역에 대한 장애물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비행기 이착륙시 조종사처럼 잠수함 함장은 부상과 잠수시 가장 긴장한다.

해저에서는 우선 소나를 사용한다. 소나에는 능동형(active)과 수동형(passive) 두가지가 있다. 능동형은 수중에서 음파를 스스로 발사해 되돌아오는 반사파를 수신하는 것이다.

음파 전달속도는 수중이 대기중보다 훨씬 빨라 초당 1,450m에 이른다. 잠수함은 음파 발사에서 수신까지의 시간과 반사파의 방향을 통해 목표물의 위치를 3차원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

반사파는 스크린과 청음장치를 통해 동시에 잡아낸다. 하지만 능동형 소나는 음파를 발사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킨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수동형 소나는 상대방이 내는 각종 음향, 즉 소나와 엔진 등의 음파를 잡아내는 수중 마이크로폰이다. 수동형은 자신을 노출시키지는 않지만 상대방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기는 어렵다는 약점이 있다.

따라서 잠수함은 수동형과 능동형 소나를 동시에 탑재하고 있다. 매질의 밀도가 대기보다 훨씬 높아 소리가 잘 전달되는 바닷속은 해류와 물고기의 소리 등으로 무척 시끄럽다. 고래의 울음소리는 수백 km까지 전달되기도 한다. 때문에 소나 담당자는 고도의 기술과 숙련을 요한다.


소나와 잠맘경 탐색 뒤 떠올라야

소나를 이용해 해역을 탐색한 잠수함은 2단계로 해면 가까이 떠올라 잠망경을 올린 뒤 360도로 해상을 살핀다. 잠망경 높이의 한계와 파도 등으로 탐색거리에 한계가 있긴 하지만 부상지점의 위험 여부를 판단하는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잠수함의 부상은 소나와 잠망경 탐색을 거친 뒤 비로소 실시된다.

하지만 함내 사고 등으로 급부상해야 할 경우에는 이같은 통상절차가 지켜지기 어렵다.

따라서 급부상 훈련 때는 사전에 해상을 광대역으로 탐색, 장애물이 없음을 확인한 뒤 잠수했다 떠오르는 방식을 취한다.

그린빌호와 충돌할 당시 에히메마루호는 11노트의 저속으로 항해중이었다. 이것은 그린빌호가 잠수전 해상탐색을 소홀히 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선박통행이 빈번한 해상로를 훈련장소로 택한 것도 의문이다.

미 잠수함의 훈련형태로 볼 때 이번 사고는 그린빌호가 부상이 아닌 잠수전 탐색ㆍ안전조치를 태만히 했다는 쪽으로 결론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그린빌호에 민간인 참관단이 승선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예정에 없던 급부상 훈련을 했을 공산도 있다.

잠수함 충돌사고는 비록 부상 상태이긴 하지만 부산 앞바다에서도 발생한 적이 있었다.

1998년 2월11일 그린빌호와 같은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 공격용 잠수함 라졸라호가 가덕도 인근 해상에서 부상 상태로 항해하던 중 27톤급 오징어잡이 어선을 들이받았다.

침몰한 어선의 선원 5명은 모두 구조됐지만 라졸라호 함장(중령)은 진해군항 입항 후 즉시 보직해임됐다. 7함대 소속 후임 함장이 곧바로 일본에서 날아와 함장업무를 인계받았다.

잠수함이 어선이나 여객선과 충돌하는 사고는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수상선박도 두눈을 뻔히 뜨고 충돌사고를 내는 판에 잠수함은 오죽하겠느냐는 말은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사고를 낸 함장에 대한 처벌은 엄중하다.

위치와 임무의 은밀성이 생명인 잠수함은 사고와 함께 소재가 노출되기 때문이다. 일단 부상한 잠수함은 국제 해상충돌예방법규에 따라야 한다. 야간에는 마스트의 위치표시등과 측면등도 모두 켠 채 항해해야 한다.


빈번한 사고, 구조율은 낮아

잠수함 사고는 예상외로 많다. 충돌뿐 아니라 침몰, 내부폭발과 화재, 좌초, 침수 등 사고형태도 다양하다. 이중 잠수함이 물에 빠져 끝장나는 침몰은 대형사고로 연결된다.

지난해 10월 바렌츠해에서 침몰해 승무원 118명 전원이 사망한 러시아 핵추진 공격용 잠수함 쿠르스크호(오스카 2급)가 가장 최근의 예다. 핵잠수함의 침몰은 치명적인 해양 방사능 오염 가능성을 남긴다. 쿠르스크를 인양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7,000만 달러가 필요하다.

잠수함 기술은 사고를 겪으면서 발전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세계 최강의 잠수함 전력을 보유한 미국이 처음으로 전투용 잠수함을 취역시킨 것은 1900년 10월12일.

그후 미국은 지금까지 101년간 모두 800척에 가까운 잠수함을 취역시켰다. 그러면 이중 평화시에 사고를 당한 잠수함은 몇척이나 될까.

미 잠수함 승무원의 마스코트는 돌고래. 잠수함은 그러나 바다에서 돌고래만큼 강하지도 똑똑하지도 않다. 미국측 자료에 따르면 6개월 이상 활동불가 상태에 빠질 정도의 대형사고를 낸 잠수함은 지금까지 27척이다.

사고원인은 침몰 9척, 충돌 6척, 함내폭발ㆍ화재 6척, 좌초 4척, 침수 2척이다. 이들 잠수함의 승무원 1,600명 중 540명이 목숨을 잃어 약 40%의 사망률을 기록했다.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경우는 여섯번. 27척 중 4척은 핵추진 잠수함이었고 1척은 핵추진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용 잠수함이었다.

잠수함끼리 충돌한 사고도 있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 공격용 잠수함 베이턴 로저호가 1992년 2월 바렌츠해 해저에서 러시아의 시에라급 핵추진 공격용 잠수함 바라쿠다호와 충돌한 것. 사고 후 잠수함들은 자력으로 귀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베이턴 로저호는 의회의 수리예산 승인 거부로 1년 뒤 퇴역했고, 러시아의 바라쿠다호는 수리창에 들어간 뒤 재취역하지 않고 있다.

미 해군은 지금까지 많은 사고를 거치면서 구조장비와 비상탈출 장비를 연구했다. 과거 잠수함은 사고로 함을 포기해야 할 경우 어떻게 하든 수면 가까이 올라와 해치를 연 뒤 헤엄쳐 빠져나와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성공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사고 잠수함 구조는 시간이 관건이다. 동력이 끊긴 잠수함은 함내 공기가 곧 바닥나게 된다. 곳곳의 함내 공간을 차단하는 격벽도 수압을 견디는데는 한계가 있다.


대부분 참극으로 이어지는 사고

현재 잠수함 전력을 보유한 대부분 국가들은 잠수함 구조함(ARS)을 갖고 있다. 사고함의 위치가 밝혀지면 구조함은 탑재된 심해잠수정(DSRV)을 내려보낸다.

잠수정은 사고함의 해치에 접속한 뒤 해치를 열어 통로를 만들게 된다. 잠수함도 사고에 대비해 잠수복과 긴급 교신장비를 갖추고 있다. 대형 잠수함은 탈출용 잠수정도 탑재하고 있다.

소련과 러시아의 잠수함 사고는 참극의 연속이었다. 미 정보당국이 파악한 대형사고는 총 30척이며 이중 핵추진 및 핵미사일 탑재 잠수함은 18척에 이른다. 충돌사고를 낸 6척 중 2척은 핵잠수함이다.

핵잠수함 18척의 상당수가 원자로 냉각기 계통의 누출사고로 피해를 입었으며 원자로와 탑재 핵미사일이 함께 수장된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다.

영국은 1904년 이후 25척이 사고를 내 400여명이 사망했다. 이중 충돌사고는 9차례.

핵추진 공격용 잠수함 워스파이트호는 1976년 항구에서 함내화재가 발생해 이를 수리하는데 3년간 500만 파운드가 들었다. 프랑스는 8척(충돌 1척)의 사고에서 180여명이 희생됐다.

이스라엘도 한차례 대형사고가 있었다. 승무원 69명을 태운 해군 잠수함 다카르호가 1968년 1월 지중해 동부 해역에서 실종됐다.

이스라엘 정부는 다카르호를 찾기 위해 현상금까지 걸었다. 다카르호는 실종 31년만인 1999년 이스라엘 정부와 수색계약을 맺은 한 회사에 의해 발견됐다. 해저 2,900m 바닥에 크게 두동강 난 채 흩어져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31년간 승무원과 잠수함을 잊지 않았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2/20 17:28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