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향계] 국정조사 氣싸움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도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의 계속이다. 그러나 내용은 다르다. 지난 주에는 요즘의 세무조사가 주쟁점이었다면 이번에는 과거의 세무조사가 공방의 핵심이다. YS의 1994년 언론사 세무조사 언급이 급기야는 세무조사결과의 폐기의혹으로 비화한 것이다.

민주당은 당시의 세무조사결과 자료가 폐기된 경위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표출하고 있다.

1997년 말 정권인수를 앞두고 YS정권측이 자료를 DJ정권에 넘겨주지 않기 위해 고의로 폐기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당시 정권 인수기간에는 안기부에 대한 인수인계가 늦어지는 바람에 정치공작과 관련된 안기부의 비밀자료도 대거 불태워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민주당은 언론사 세무조사 관련자료가 언제, 누구에 의해서 파기됐는지를 밝히기 위해 국정조사를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김영환 대변인은 "문서가 폐기됐다면 세무조사가 언론탄압을 위한 협박용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당시 정권차원의 조직적 은폐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나라 조건부 국정조사 수용, 민주 시큰둥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처음에는 "검찰수사를 통해 밝힐 일"이라며 국정조사에는 난색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둘러싼 여권의 공세로 수세에 몰릴 수 있다고 판단한 탓인지 이회창 총재는 19일 여권이 '언론분석 문건' 국정조사를 받아들이면 1994년 언론 세무조사 자료 폐기건에 대한 국정조사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언론분석 문건은 국민의 정부출범 이후 언론의 논조를 분석한 내용으로, 특히 조선 동아 중앙 문화일보의 반여(反與)적 카르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 문건이야말로 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언론을 길들이기 위해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들어갔음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해왔었다.

민주당은 그러나 이회창 총재가 실제로 1994년 언론사 세무조사 국정조사 요구를 맞받아치기 위해 언론분석문건 국정조사와의 연계를 들고 나왔을 뿐이라며 시큰둥해하고 있다.

민주당은 언론분석 문건 작성 자체만 국정조사를 한다면 수용할 수 있지만 이를 현재 진행중인 언론사 세무조사와 연결시키려는 의도가 뻔하다며 그런 국정조사는 절대로 받아 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세무조사 자료 폐기의혹 국정조사와 언론분석문건 국정조사가 바터 형식으로 현실화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2월15일 발간된 YS 회고록의 일부 내용을 둘러싼 공방도 달아오르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대목은 DJ 비자금과 이회창 총재 관련 부분. YS는 "김대중씨의 부정축재를 수사하면 구속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며 자신의 선처로 비자금수사가 중단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YS는 집권 5년동안 모든 조사기관을 동원해 김 대통령의 비자금을 조사했으나 불법성을 찾아내지 못했다"며 "결국 사직동팀이 김 대통령의 친인척 계좌를 불법적으로 뒤져 모든 입출금을 합산해 엉터리 비자금 목록을 만들어냈다"고 분개했다.

청와대측은 YS를 명예훼손혐의로 고발하거나 회고록 배포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은 "그동안 김 전 대통령이 DJ비자금 문제에 대해 이러저러한 언급을 해도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만 밝히는데 그쳤지만 회고록을 통해 그런 주장을 한 만큼 그냥 지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측은 "진실만 썼다"면서 청와대가 가처분신청 등을 하면 강경대응으로 맞서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YS회고록 둘러싼 진위 공방

이회창 총재와 관련해 문제가 된 부분은 문민정부 시절 '이회창 국무총리'의 경질 경위. YS는 회고록에서 "이 총리에게 당장 사표를 내라고 호통을 쳤다. 한시간 가까이 혼이 난 이 총재는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한번만 기회를 더 달라고 사정을 했고 집무실을 나가면서 출입문을 찾지못해 허둥댔다. 그러고도 그는 자신이 먼저 사표를 냈다고 언론플레이를 했다"고 썼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한마디로 가당치 않은 얘기"라며 "언젠가는 진실을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한 시대를 맡았던 전직 대통령으로서 경륜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반성하는 빛이 전혀 없다"고 비난했다.

한나라당은 DJ 비자금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YS측이 정면 대결 분위기로 가자 "DJ 비자금에 대해 전ㆍ현직 대통령중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정리되길 바란다"며 한발을 뺐다.

하지만 이 총재 관련 부분이 해명되지않을 경우 대선과정에서 이 총재가 입을 타격이 크기 때문에 이 총재측은 어떤 형태로든 짚고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2월25일은 국민의 정부 출범 3주년이 되는 날이다. DJ의 집권 3년 공과와 남은 임기 2년에 해야할 일 등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도 심심치 않을 것 같다.

이계성 정치부 차장

입력시간 2001/02/2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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