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잡힌 신용사회] "기회를 줘야 빚을 갚죠"

한 신용불량자의 하소연

"빚은 꼭 갚습니다. 제발 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지 말아주십시오."

견실한 중견기업의 전산팀 대리인 고성욱(42ㆍ가명)씨는 신용 불량거래자다. 한때 모 그룹 본사의 잘 나가는 전산팀장이었던 고씨는 IMF 위기가 닥치기 몇 달 전인 1997년 여름 친구와 맞보증해 대출한 돈으로 산본에 23평 짜리 아파트를 장만했다.

그런데 맞보증선 친구가 IMF 위기로 파산하면서 급여와 아파트를 가압류당해야 했고, 결국에는 집까지 날리고 30만원짜리 월세로 고등학교 2학년인 딸과 아내를 데리고 옮기는 신세가 됐다.

"보증 한번 잘못 선 죄로 가정이 파탄났습니다. 채권추심사는 지금도 저는 물론이고 아내 직장까지 전화를 걸어 협박하며 급여를 압류합니다. 그들의(채권자)의 압력으로 저는 승진에서도 누락됐습니다."

최근 고씨는 이산가족이 됐다. 며칠 전 집행관이 아무도 없는 월세 집에 열쇠를 따고들어와 압류 딱지를 붙인 뒤 가재도구를 모두 처분해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직장과 임시 거처를 가리지 않고 강제 압류나 형사고발, 신용불량 등 최고장을 보내고 있다.

고씨는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하소연한다.

"저도 알고 보면 친구한테는 채무자입니다. 아무리 채무 신용불량자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인권과 사생활이 있는 것 아닙니까. 현재는 상환능력이 안돼 한꺼번에 다 갚지는 못하지만 반드시 빚은 상환할 겁니다. 단지 최소한 일을 하면서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는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고씨는 얼마 전에는 자살을 심각히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딸아이가 눈에 들어와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지금 고씨는 파산신청을 준비중에 있다.

입력시간 2001/02/2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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