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잡힌 신용사회] 한번 파산자는 영원한 파산자?

면책 판결 받아도 재기 '캄캄', 불량거래자 꼬리표 여전

"살려주세요. 하나뿐인 딸아이를 먹여 살려야 합니다."

대구 수성구에 사는 윤창순(53ㆍ여)씨에게 지난 3년은 악몽 그 자체였다. 윤씨에겐 단 한명의 가족 밖에 없다. 21살 된 딸 현정이.

하지만 현정이는 낳을 때부터 장애를 가진 1급 장애인이다. 자기 몸도 제대로 못가누는 어린 피붙이를 데리고 윤씨는 20여년을 홀몸으로 살아왔다. 윤씨는 1984년 900만원으로 2층짜리 여인숙을 전세내 숙박업을 시작했다.

'내가 아니면 딸아이를 누가 보살필까'하는 생각에 윤씨는 안간힘을 썼다. 그 덕에 10년만에 약간의 돈을 모은 윤씨는 보다 안정적 수입을 올리고자 1994년 5층짜리 여관 신축에 들어갔다.

그간 저축한 3억원에 은행과 보험사로부터 6억원의 대출을 받아 1996년 건물을 완공시켰다. 그리고 1년간은 장사가 잘 돼 대출 원금 1억원을 갚았다.

그런데 1997년 말 IMF 위기가 시작되면서 갑자기 매출액이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게다가 연 13%대에 머물렀던 대출 이자가 갑자기 22%로 급등하면서 윤씨는 서서히 빚더미에 몰리기 시작했다. 매달 700만원 수준이던 대출 이자가 1,200만원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그렇게 몇달을 버티던 윤씨는 '더이상 끌고가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을 하고 담보를 채권자에게 넘겼다.


빚잔치도 모자라 할 수 없이 파산신청

한때 10억원을 호가하던 여관 건물은 세번 낙찰 끝에 3억2,000만원에 경매 처리됐다.

또 대출 일부를 친정 어머니 집을 담보로 책정해놓아 친정집마저 경매에 넘어갈 상황에 처했다. 하는 수 없이 친정 어머니가 6,000만원을 대위 변제해주었다. 이렇게 빚잔치를 벌이고 나서도 남은 변제액은 대출 원금과 이자를 합쳐 약 2억8,000만원 정도.

하지만 모든 재산을 날린 윤씨에게 이것은 너무도 벅찬 돈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1999년 7월 창원 지방법원에 소비자 파산 신청을 냈다.

지난해 초 파산 1차 판결이 나왔고 윤씨는 곧 바로 채무면책 신청에 들어가 지난해 5월19일 최종 면책판결까지 받았다.

비록 직접 갚지는 못했지만 이제 은행이나 금융권으로부터 더이상 채무 이행 독촉을 받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윤씨는 이날의 기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면책판결을 받은 뒤 은행에 가서 자신의 신용 상태를 알아 봤더니 여전히 신용 불량거래자로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예전에 채무를 진 금융기관에 항의도 해보고 언론에 호소도 해봤지만 신용불량자라는 기록을 없앨 방법은 없었다.

윤씨는 하는 수 없이 동사무소에 영세민 자격을 신청해 매달 나오는 10만2,000원으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장애인 딸은 경기도 문산에 있는 장애인 학교에서 생활하고 있다.

"은행 거래는 물론 휴대폰을 가입하려고 해도 불량거래자라서 할 수가 없습니다. 제 몸도 못 가누는 장애인 딸아이를 먹여 살릴 수 있도록 최소한의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윤씨는 울면서 호소했다.

IMF 위기 이후 개인 파산자들이 늘고 있다. 소비자 파산이라고도 하는 개인 파산은 과도한 채무로 더이상 변제능력이 없는 개인이 모든 잔여 재산을 법원의 판결에 따라 채권자에게 공평하게 분배해 채권ㆍ채무 관계를 청산하는 것을 말한다.

채권자에 대한 공평한 분배가 주목적인 사업자 파산과 달리, 소비자 파산은 채무를 면책받는 것이 파산신청의 주목적이다.

따라서 파산신청과 동시에 예외없이 채무면책 절차를 밟는 게 통례다. IMF 위기 이전인 1997년 이전까지도 소비자 파산 신청자는 1995년 3명, 1996년 5명, 1997년 7명 등 극소수에 불과했고 실제 판결을 받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러다 1997년 5월29일 서울지방법원에서 1962년 파산법 제정 이래 최초로 소비자 파산 선고가 나면서 파산 신청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1998년 170건, 1999년 249건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가 지난해에는 경기회복으로 인해 148명으로 다소 줄었다.

하지만 지난해 연초 월 7~8명이던 파산신청자가 중순부터 12~14명 수준으로 늘었고, 올해 1월에도 13명으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막다른 상태의 불가피한 선택

소비자 파산은 신용 사회에서는 '무덤을 파는 행위'로 여겨질 만큼 막다른 상태에서나 취하는 법적 절차다.

법원으로부터 개인 파산이 받아들여지더라도 추가로 면책판결을 받지 못하면 파산자는 재산이 생길 때마다 잔존 채무에 대해 계속 변제해야 한다.

또 파산자는 각종 국가고시 자격증이 상실됨은 물론이고 후견인 유언집행자 공무원 변호사 변리사 공인회계사 공증인 등이 될 수 없다. 상법상으로도 합명회사, 합자회사 퇴사의 원인이 되고 주식회사 이사직에서도 퇴직해야 한다.

또 법원의 허가없이 거주지를 떠날 수 없을 뿐 아니라 우편물 전보 등이 파산자가 아닌 파산관재인에게 배달돼 파산관재인이 그 내용을 조사할 수 있게 되는 등 각종 제약이 따른다. 단, 법원으로부터 채무면책 판결을 받으면 파산선고로 상실된 법적 자격과 권리가 복권된다.

이런 연유로 대부분의 파산신청자들은 예외없이 채무 면책 절차를 밟지만 면책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지난해 면책을 신청한 파산자는 총 174명인데 이중 27%(일부 면책 판결자 포함)인 47명만 면책판결을 받았다.

윤씨의 예처럼 면책판결을 받은 파산선고자라 하더라도 예전처럼 자유로운 금융거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면책판결 자체가 금융기관이 갖고 있는 신용불량의 이력까지 없애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면책판결을 받은 파산자 대다수가 아직도 금융거래에서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법원판결도 금융기관엔 효력 없어

교보생명의 연체관리담당자는 "법원으로부터 채무 면책판결을 받았다 하더라도 피해 금융기관 입장에서 예전의 불량거래 기록을 삭제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은행연합회에서도 면책 판결자의 거래실적을 삭제하라는 지침을 받은 전례가 없다"라고 말했다.

은행연합회측은 "면책허가를 받은 파산자라 하더라도 해당 금융기관에 피해를 입힌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데 기존의 신용불량 기록을 삭제하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사항"이라며 "예전의 불량거래 기록을 삭제하고 안하고는 해당 금융기관의 고유 권한"이라고 해당 금융기관쪽으로 책임을 돌렸다.

서울지법 파산부의 한 판사는 "일반적으로 파산에 이어 면책판결만 받으면 모든 채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며 "파산자의 면책판결은 민사상의 채무만 면책된 것이지 자연채무는 소멸하지 않는다.

만약 기록을 삭제하고 싶다면 해당 금융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길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면책판결을 받은 한 파산자는 "채무에 대한 법적 면책과 권리 회복을 인정하는 법원의 면책판결이 금융기관에게는 실질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해 파산자들이 재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어렵게 면책판결을 받은 사람이나 빚을 안갚고 도주하는 사람이나 은행에서 신용불량자로 구분하기는 매한가지인데 이 사실을 안다면 누가 재산을 모두 버리고 파산을 신청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채무에 대한 법적인 완전 면책이란 있을 수 없다. 한번 신용불량자나 파산ㆍ면책 판결의 허울을 진 사람은 10년간은 그 족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자신의 신용을 지키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2/20 18:08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