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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40대 대약진 '돌풍'

은행권, 40대 대약진 '돌풍'

거센 세대교체 바람, 연공서열 파괴 등 파격인사 단행

"이번 은행 인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연임 배제, 선임자 우선 원칙'이 철저하게 관철됐다는 점. 이러한 원칙은 인사 하마평으로 은행들이 술렁이기 시작하던 초기 때부터 금융당국에 의해 천명됐다.

그러나 어느 정도 반영되기야 하겠지만 100% 완전히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던 게 사실. (중략) 그러나 막상 인사 뚜껑을 열고 보니 '철저한 원칙 관철'이어서 모두들 의외라는 반응."

다소 엉뚱한 듯한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1991년 2월21일자 '한국일보' 기사를 인용한 것이다. 인사적체를 해소하고 인사청탁 풍조를 쇄신하기 위해 정부가 '연임 배제, 선임자 우선'이라는 인사 원칙을 천명했고 실제 시중은행 인사에서 대부분 반영됐다는 내용이다.

격세지감이랄까. 대부분의 중앙 일간지와 경제지들은 2월16일자 조간신문을 통해 '은행, 젊은 피 수혈', '40대 임원 대거 발탁' 등의 제목을 단 기사를 일제히 내보냈다.

조흥은행이 15일 정기 이사회에서 단행한 임원인사를 다룬 글이었다.


40대 임원 발탁등 '젊은피'군단 형성

은행권에 세대교체 바람이 강하다. 철칙처럼 여겨졌던 '연공서열'이라는 단어는 은행 인사에서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지나면서 보수적인 은행권도 변화의 대세를 거스를 수 없게 된 것이다.

올해 본격적으로 파격인사의 물꼬를 튼 곳은 조흥은행이었다. 2급인 홍석주(48) 기획부장과 사외이사인 지동현(43)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을 각각 상무로 발탁한 것이 핵심.

IMF 위기 이후 연공서열을 무시한 파격인사는 종종 있어왔지만 2급 부장이나 사외이사가 임원으로 발탁된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변화의 발상지, 조흥은행'이라는 광고는 단순히 광고 카피에 그치지 않고 임원인사에서도 그대로 적용된 셈이다.

때문에 은행권에서는 평소 아이디어가 많고 파격적인 위성복 조흥은행장이 마음먹고 화끈하게 발탁인사를 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1월 한미은행 정기 주총에서도 변화는 감지됐다.

정경득(50) 본부장이 숱한 선배들을 제치고 부행장으로 발탁승진되며 '시중은행 최연소 등기임원'이라는 결코 듣기 싫지 않은 꼬리표를 부여받았다.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쏟아지는 축하인사가 부담스러웠던 눈치였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두 은행의 사례가 결코 예외가 아닐 것으로 내다보는 분위기다. 3월 초순부터 집중돼있는 시중은행 주총에서의 인사 개혁을 가늠케 하는 예고편에 불과할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는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 주도 금융지주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자격요건에 대해 '40대의 참신한 인물'이라고 못박고 있다.

이 기준대로라면 신동혁 한미은행장, 이경재 기업은행장, 박영철 고려대 교수, 류시열 은행연합회 회장, 김정태 주택은행장 등 그동안 하마평에 오르내렸던 숱한 인물은 후보군에서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재경부 관계자는 "40대라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꼭 나이에 연연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적어도 국내 금융기관의 타성에 덜 젖은 참신한 인물이어야 한다는 점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황영기(49) 삼성투신운용 대표, 하영구(48) 씨티은행 한국대표, 조왕하(48) 코오롱그룹 부회장 등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대적 물갈이 불가피, 외부인사 영입에 불만도

만약 정부 공언대로 '40대 CEO'가 탄생할 경우 한빛, 평화, 광주, 제주은행 등 지주회사 편입 은행에서는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불가피하다.

한빛은행의 경우 관악지점 비리사건으로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김진만 행장이나 이수길 부행장, 이촉엽 감사는 자리를 보전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태다. 상무급 임원들 역시 대다수가 5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여서 몇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평화은행 역시 조기사임한 김경우 행장의 후임에 '젊은 피'가 수혈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민-주택 합병은행에서도 임원의 대대적인 물갈이는 불가피하다. 특히 국민은행의 경우 임원진이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기 때문에 인력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이들중 상당수가 자리를 떠나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젊은 피 군단'을 형성한 시중은행 임원도 적지 않다. 지난해 50세의 나이에 행장직에 오른 강정원 서울은행장은 최동수(46) 부행장, 김명옥(45) 상무 등에 이어 은행권 최연소 임원으로 이성규(42)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사무국장을 상무로 영입했다.

제일은행 윌프레드 호리에 행장의 총애를 받고 있는 최원규(47) 상무, 주택은행 박종인(47) 부행장, 하나은행 심희원(48) 상무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은행권의 세대교체 바람에 대해 그동안 연공서열에 익숙해져있던 은행원의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는 은행에서 20년간 근무하고도 이제 겨우 부장직책을 달고 있는데 외국계 금융기관 근무 경력만으로 갑자기 임원으로 영입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은행 내부에서는 외부영입 임원은 '성골'이라는 소리도 팽배하다. 이제는 내부 승진을 통해 임원이 된다는 것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는 하소연이 심심찮게 들린다.

하지만 이들조차도 인사개혁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시중은행의 한 부장은 "능력 여하를 떠나서 참신한 인물들이 대거 영입되면 분위기 자체가 쇄신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며 "기존의 무사안일한 인사 패턴으로는 더이상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낙하산인사 시비 불식 시켜야 진정한 개혁

이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화를 거부하는 인사 행태가 있다. 바로 '낙하산 인사'에 얽힌 시비다.

다시 한번 10년전 기사를 인용해보자. "이번 은행장 인사는 시중은행의 민영화에도 불구, 재무부가 사실상 주도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은행가에서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신임 은행장들은 지난 20일 한국은행에서 재무장관과 은행감독원장으로부터 취임 사실 통보와 함께 후속임원 인사방침을 들은 것으로 확인돼 지나친 관치인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조선일보, 1991년2월22일자)

1998년 말~1999년 초 1차 금융구조조정 당시에 이어 지난해 김상훈 국민은행장 선임 당시에도 은행 노조를 비롯한 금융계 안팎에서는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는 여론이 강하게 일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다. 10년전 바로 이맘 때에는 후속임원 인사방침까지 하달했다지 않는가.

김경림 외환은행장은 최근 전국 부점장회의에서 기존 임원 및 임원 승진을 노리는 주요 부점장을 상대로 경고성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밑에서 움직임이 많은데 그럴수록 나는 좋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불이익을 주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임원인사는 이미 정해졌으니까 더이상 헛수고말고 영업이나 열심히 하라."정부 주도 금융지주회사 CEO 선임이나 국민-주택 합병은행장 선임 등을 두고 벌써부터 낙하산 인사 경계론이 제기되는 지금, 정부나 금융계 관계자들이 귀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이영태 경제부 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2001/02/2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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