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안면도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그러나 맵지는 않았다. 봄이 섞여 있었다. 섬은 그 봄바람에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동면에 지친 몇 사람만이 밀가루 같이 하얀 백사장에 발자국을 내며 걷고 있었다. 잠자는 섬 안면도(安眠島).

이름처럼 고적한 평화가 있었다. 안면도는 섬이 아니었다. 육지와 연결된 태안곶이었다. 남쪽 들녘의 곡식을 서울로 옮기려면 뱃길이 사나운 바깥 바다로 돌아야 했다.

그러나 안면도와 보령 사이의 천수만은 고인 물처럼 잔잔했다. 그래서 육지와 붙어있던 안면읍 창기리와 남면의 신온리 사이를 절단했다. 조선 인조 때의 일이다. 졸지에 육지와 떨어진 안면도는 330여 년이 지난 1970년에 연육교가 놓이면서 다시 육지 같은 섬이 됐다.

안면도의 해안선은 충청도에서 가장 울퉁불퉁하다. 리아스식 해안의 골마다 모래밭과 갯벌이 펼쳐져 해수욕장만 14개이다. 하나 같이 아름답다. 끝없이 넓은 갯벌이 펼쳐지고 드문드문 기암이 서있다. 빼어난 아름다움 때문에 섬의 서쪽바다는 1978년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안면도의 여행 방법은 남북으로 길게 나 있는 종주도로를 타고 가면서 곳곳의 샛길로 들어가 다양한 모습의 바다를 감상하는 것이다. 종주도로의 길이는 24km. 마음에 드는 곳에서 다소 시간을 보내더라도 하루 정도를 잡으면 섬의 구석구석을 모두 돌아볼 수 있다.

안면대교를 넘어 조금만 진행하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안면송으로 불리는 이 곳 소나무는 육지의 일반 소나무와 사뭇 다르다. 키가 크고 곧으며 잔가지가 없다.

고려시대부터 궁궐과 선박의 목재로 특별 관리된 붉은 소나무이다. 일제시대에는 큰 수난을 당했다. 일본의 한 목재회사로 삼림의 소유가 넘어가면서 마구 베어졌다.

해방 이후에는 정부의 개간정책에 의해서도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아직도 산림 전체 면적의 62%가 소나무이다. 정부는 뒤늦게 안면송의 우수성을 알고, 1988년 수령 80년 이상의 소나무숲 115ha를 유전자 보호림으로 지정했다.

솔숲은 안면읍 바로 아래의 안면도자연휴양림 부근에 들어 절정을 이룬다. 곧은 소나무들이 하늘을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안면송의 푸르름은 모든 수풀이 제 색깔을 완전히 잃은 요즘 더욱 빛난다.

섬의 곳곳을 살피다가 해질녘이면 반드시 서쪽 해안으로 나와야 한다. 안면도의 제1경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서해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이다. 그 중 꽃지해변의 낙조는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갯벌에는 두개의 커다란 바위가 서로 붙든 듯이 따로 서 있다.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이다.

밀물일 때에는 모두 물에 잠겨 헤어지지만, 물이 빠지면 밑둥까지 드러나 다시 손을 잡는다. 해는 그 사이로 진다. 곳곳에서 카메라의 셔터가 터진다.

겨울 진객은 아직 돌아가지 않았다. 섬 동쪽 바다인 천수만은 철새의 천국이다. 반쯤 물이 얼어있는데 그 얼음과 물 사이에 철새들이 거대한 띠를 만들고 쉬고 있다. 천수만은 페유조선으로 급류를 틀어막아 방조제를 완성한 것으로 유명한 곳.

국내에서 가장 큰 철새도래지이기도 하다. A,B 지구 방조제를 이으면서 육지가 된 간월도를 중심으로 수만 마리 새떼의 비상이 펼쳐진다.

권오현 생활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1/02/2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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