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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사면스캔들로 '사면초가'

클린턴, 사면스캔들로 '사면초가'

퇴임당일 무더기 사면조치, 대가성 의혹에 휩싸여

'재임 때는 섹스 스캔들, 퇴임 후에는 사면(赦免) 스캔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20일 퇴임식 1시간 전에 전격적으로 단행한 무더기 사면조치 때문에 의회 청문회가 열리는 등 여론이 들끓고 있다.

미국 헌법상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후임 행정부가 재검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클린턴의 경우 사면권 남용 차원을 넘어 뇌물의 대가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공화당 의원들은 클린턴을 소환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기회에 클린턴 집권시절 이루지 못한 탄핵까지 벼르고 있다.


스위스로 도피중인 마크 리치가 핵심인물

사면 논란의 핵심인물은 탈세 사기 등 50여개 죄목으로 기소된 뒤 1983년 스위스로 도망간 금융재벌 마크 리치(66)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5,000만 달러의 소득세를 탈세한 혐의를 받고 있는 리치는 재판을 받을 경우 30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그러나 리치는 엄청난 재력으로 클린턴을 유인, 면죄부를 사들이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확인된 바에 따르면 리치는 뉴욕에서 작곡가 겸 가수로 활동중인 전처 데니스 리치를 통해 1993년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에 100만 달러 이상을 헌금했다.

또 데니스를 통해 클린턴 도서관 건립기금으로 45만 달러를 기증하고, 클린턴의 뉴욕 차파콰 저택에 7,000 달러를 호가하는 식탁을 선물하기도 했다.

전처 데니스가 정치헌금으로 사면의 길을 닦은데 이어 백악관의 법률고문이었던 잭 퀸 변호사가 1999년부터 리치에게 고용돼 클린턴의 사면을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유태교 랍비들이 대거 동원돼 유태계인 리치의 사면을 청원했고,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의 경우 두 차례나 클린턴에게 전화를 걸어 사면을 요청했다.

클린턴은 고민했다. 당초 19일 오후 5시로 예정됐던 사면령 발표가 이튿날 퇴임식 1시간 전까지 미뤄졌다. 이 과정에서 백악관에 줄을 댄 다른 사면 신청자들도 명단에 추가됐다.

뉴욕타임스는 클린턴이 리치 등 '자기 몫'을 밤새도록 챙기느라 발표가 늦어졌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사면은 보통 연방수사국(FBI)의 조사와 담당 검찰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만, 밤늦게 추가된 20여명은 이런 절차를 밟지 못했다.


칼 빼든 의회, 클린턴 핵심측근에 소환장

연방 검찰과 FBI가 리치의 로비활동과 관련해 본격수사에 나선 가운데 의회가 칼을 빼들었다.

하원 정부개혁위원회(HGRC)는 2월16일 존 포데스타 전 백악관 비서실장을 포함한 3명의 클린턴 핵심 측근에게 소환장을 발부키로 했다.

이에 앞서 13일에는 DNC와 건립중인 아칸소주 클린턴 도서관, 데니스가 거래하는 은행을 상대로도 3월1일 재개되는 청문회 소환장을 발부했다. 공화당의 '클린턴 저격수'를 자처해온 댄 버튼 HGRC 위원장은 국립문서보관소 중앙정보국(CIA) 국방정보국(DIA)에도 리치 사면의 정당성 여부를 밝힐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하원과 별도로 상원 법사위원회도 14일 클린턴이 사면조치의 법적 효력 여부를 따지기 위한 청문회를 개시했다. 상원은 클린턴이 사면한 140명 가운데 동생 로저 클린턴, 화이트워터 부동산 사기사건의 수전 맥두걸 등 47명은 법무부의 정식 검토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공화당의 앨런 스펙터 의원은 "법적으로 클린턴은 여전히 탄핵대상"이라면서 클린턴이 탄핵되면 전직 대통령 예우(연금, 사무실 임대비, 경호 등 기타 행정경비)가 박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마저 비판, 방패막 사라져

연일 사면 스캔들로 난타당하면서도 클린턴에게는 방패막이 없다. 그동안 클린턴을 옹호하는 입장에 섰던 민주당 의원마저 거침없이 비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주당의 찰스 슈머 의원은 상원 청문회에서 "수배자에 대한 사면이 미국 형사사법 제도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고 리처드 더빈 의원 역시 "리치 사면에 대해 클린턴의 완전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화당 의원들은 "1999년 2월 섹스스캔들 탄핵재판 때는 행정부가 흔들릴 우려가 있었지만 이제 클린턴은 현직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클린턴은 14일 사면 의혹을 전면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성명에서 "나는 대통령으로 옳은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리치를 사면했다"며 "사면에 정치적 요인이 연관됐다는 주장은 완전한 허위"라고 반박했다.

15일 CNBC에 출연한 클린턴은 "내가 잘못했다는 한 끄트러기의 증거도 없다"면서 "나는 과거 대통령들이 해왔던 것을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여론은 점점 클린턴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사설에서 지난 1974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전임자 리처드 닉슨을 사면한 뒤 하원 법사위에 자진출두한 선례를 들어 "클린턴은 이 사안이 (사무실이 있는) 맨해튼의 길거리 기자회견으로 처리될 일이 아닌 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클린턴 본인이 의회나 검찰에 참고인 혹은 증인 자격으로 출두, 해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의회 청문회와 검찰 등의 수사로 클린턴의 사면이 정당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클린턴 본인을 처벌할 방법은 없다.

사면권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이 서명한 사면령을 무효화할 수도 있겠지만 정치적 부담이 클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임기말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았던 클린턴은 이번 스캔들로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됐다. 뉴욕포스트가 1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클린턴에 대한 지지도는 43%로, 재임중의 60%대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이동준 국제부 기자 djlee@hk.co.kr

입력시간 2001/02/2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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